[외국어에 중독된 한국-12] 한글날 되새기는 퇴계(退溪) 이황의 우리말 사랑

  • 최봉영(한국항공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입력 2009.10.08 22:38 | 수정 2009.10.18 17:34

    퇴계 이황

    조선닷컴은 지난달 10회에 걸친 ‘외국어에 중독된 한국’ 연재를 통해 우리 사회의 외국어 오남용 실태를 파헤쳤다. 한글날이 있는 10월에는 그 해독(解毒)을 위한 각계각층의 전문가들과 일반 시민들의 다양한 제안과 제언을 들어본다./편집자 주

    조선시대 대표적인 성리학자인 퇴계를 한글날에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이황은 중국과 연관돼 한문(漢文), 공자(孔子), 주자(朱子), 성리학(性理學), 이발(理發)과 기발(氣發), 사단(四端)과 칠정(七情)과 같은 것부터 생각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퇴계가 한국말을 쓰는 한국인으로서 살았다는 점에 주목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퇴계는 주자가 주석해 놓은 <논어>를 본문은 물론이고 주석까지 모두 외웠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하였다. 하지만 퇴계가 주자를 넘어설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한국말을 쓰는 한국인으로서 주자를 공부했기 때문이었다. 퇴계가 한국말로써 주자의 생각들을 풀어내는 과정은 한국인의 슬기와 중국인의 슬기를 아우르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자연히 주자의 학설에서 새롭게 더하거나 뺄 것들이 드러나게 되었다. 퇴계는 이를 바탕으로 주자를 넘어서는 주자학자로 커갈 수 있었던 것이다.

    퇴계는 살아 있을 때부터 한국말로써 한문을 풀어내는 일을 가장 잘하는 사람으로서 이름을 떨쳤다. 선조 임금이 신하들에게 경서의 토를 고치는 일에 대해서 묻자 미암 유희춘은 “우리 동방에서 예부터 경전의 뜻을 곱씹어 맛을 보고, 주자의 글과 말을 파고들어 거듭 따지기로는 이황 만한 사람이 있지 않다”고 할 정도로 이황은 한국말로 한문에 토를 붙이고 한문을 풀어내는 일에서 누구보다도 앞섰다.

    이러한 퇴계의 우리말 사랑은 크게 세 가지 업적에서 나타난다. 먼저 퇴계는 공부에 요긴한 한자 낱말을 배우고 익히기 위해서 한국말로 한자 낱말을 풀이하여 <語錄解>라는 낱말집을 만들었다. 이름을 <어록해>라고 붙인 것은 唐宋의 어록에 나오는 낱말이나 구절 가운데 뜻을 알기 어려운 것을 모아서 풀어놓았기 때문이었다.

    퇴계가 <어록해>를 만든 것은 당시로서는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선비들은 언문을 가볍게 여겼기 때문에 고상하게 학문하는 일에 언문을 가져다 쓰는 일을 매우 꺼렸기 때문이다. 언문은 하찮은 아랫것들이 쓰는 글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퇴계는 한문의 뜻을 제대로 묻고 따지고 풀기 위해서 언문을 쓸 수밖에 없다고 봐 한자 낱말에 언문으로 뜻과 소리를 붙인 낱말집을 만들었다. 퇴계가 만든 <어록해>는 이후로 여러 사람의 손길을 거치면서, 더욱 잘 다듬어져 몇 차례에 걸쳐 간행되었다.

    다음으로 퇴계는 한문 경전을 제대로 배우고 익히기 위해서 <사서>와 <삼경>에 나오는 구절 가운데 알기 어려운 것들을 추려서 한국말로 풀이해 <사서석의>와 <삼경석의>를 만들었다.

    예컨대 퇴계는 <大學釋義>에서 格物致知에 나오는 ‘在格物’을 두고서, ‘物을 格함에 있느니라’로 풀이하는 것이 옳다고 말하는 동시에 ‘物에 格함에 있느니라’로 풀이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하였다. 중국인의 경우에는 格物을 ‘物을 格함’과 ‘物에 格함’으로 나누어서 따지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한국말로는 ‘物을 格함’과 ‘物에 格함’으로 나누어 따짐으로써 格物의 뜻을 분명하게 만들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퇴계는 갖가지 토씨로써 문장의 갈래를 촘촘하게 나누어 말하는 한국말로써 묻고 따졌기 때문에 이런 일을 쉽게 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퇴계는 삶에 대한 뜻과 배움에 대한 자세를 언문으로써 <도산십이곡>을 지은 뒤 그렇게 한 까닭을 한문으로써 <陶山十二曲跋>을 써서 자세하게 밝히기도 했다.

    선비들이 한국말로써 시조나 가사를 짓는 일은 많았지만, 퇴계와 같은 뛰어난 학자가 평소에 지니고 있던 삶과 학문에 대한 생각의 핵심을 언문으로 된 시에 담아 놓고, 그 까닭을 한문으로써 발문을 써서 밝히는 일은 없었다. 언문을 매우 가볍게 여기던 분위기 속에서 퇴계가 언문으로써 시를 짓고, 한문으로써 발문을 붙이는 일은 언문으로써 한문의 격을 떨어뜨리는 일로서, 크게 놀랄 일이었다. 퇴계도 이런 점을 걱정하여 “돌아보니 나의 자취가 자못 세속과 어그러짐이 있는데, 또한 이와 같이 한심한 일로 말미암아 혹시라도 시끄럽게 말썽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를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후학들이 간행한 <퇴계선생문집>에는 퇴계가 언문으로 쓴 <도산십이곡>은 실리지 않고, 한문으로 쓴 <도산십이곡발>만 실려 있다. 또한 <퇴계선생문집>에는 퇴계가 언문으로 토를 붙이고 뜻을 풀이한 <사서석의>와 <삼경석의>도 실리지 않았다. 언문으로 쓰인 것을 값지고 빛난 것으로 여기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도산십이곡>은 뒷날 부록으로 수집되어 겨우 문집의 한 귀퉁이를 차지할 수 있었고, <사서석의>와 <삼경석의>는 따로 간행되었으나, 곧 잊혀 갔다. 이러니 퇴계가 한국인으로서 한국말을 밝게 살펴서 한문을 깊이 묻고 따지고 풀던 일은 잘 드러날 수도 없었고, 또한 잘 이어질 수도 없었다.

    퇴계가 묻고 따지고 푸는 일을 통해서 생각하는 힘을 키워나간 바탕은 그가 일상으로 주고받던 한국말에 있었다. 퇴계는 한문을 배우고 쓰는 일에서 세종대왕이 만든 훈민정음을 가장 적극적으로, 그리고 가장 훌륭하게 활용한 사람이었다. 훈민정음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퇴계가 한국말을 밝게 살펴서 한문을 깊이 묻고 따지고 푸는 일을 제대로 이루기 어려웠을 것이고, 따라서 뛰어난 학자로 우뚝 설 수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퇴계가 한 것처럼 한국말을 밝게 살펴서 밖에서 가져온 것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 그래야 말의 바탕이 튼튼해지고, 생각하는 힘이 커질 수 있다. 생각하는 힘을 키워야 말이 사무칠 수 있고, 말의 갈피를 잡을 수 있다. 그러면 자연히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일 또한 즐거워질 것이다.

    아울러 우리는 퇴계가 한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한국말에 담겨진 슬기를 찾아서 널리 살려 쓸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다른 겨레의 슬기를 빌려서 살아가는 사람에서 다른 겨레에게 슬기를 빌려주는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까지 남에게 진 빚을 돌려주는 일이면서 동시에 남과 더불어 보다 나은 앞날을 만들어가는 일이라 하겠다.

    최봉영 교수는 건국대와 한국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주체와 욕망>, <한국사회의 차별과 억압> 등의 저서가 있고, ‘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의 일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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