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1호] 근대식 최초의 서점 회동서관

조선일보
  • 이한우 기자
    입력 2009.10.09 06:22

    지난해 8월 출판전문지 '출판문화'에 의미 있는 사진 2장이 최초로 공개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서점 회동서관(東書館)의 1913년 이전 사진과 1913년 이후 개축된 사옥의 사진이다.

    특히 개축된 사옥의 사진에서는 무장한 일본군이 경계를 서고 있는 모습이 보여 정보와 지식의 자유로운 교류를 막으려 했던 일제의 출판탄압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경성 남부 대광교(大廣橋·전 조흥은행 본점 자리)에 있던 회동서관은 '고유상 서포(書鋪)'라고도 불렸다. 주인이 고유상이었기 때문이다. 1880년대 말부터 아버지 고제흥이 서점을 했고 아들 고유상은 1906년부터 가업을 이으면서 근대식 서점으로 탈바꿈시켰다. 이때부터는 출판도 겸했다. 출판학자들이 회동서관을 근대 최초의 서점으로 보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 이광수의 '무정'도 여기서 출간됐다.

    회동서관이 대한제국기 최대의 서점이 된 것은 물밀듯 밀려드는 근대 문물에 대한 독자들의 갈증이었다. 회동서관은 서점, 출판뿐 아니라 인쇄소도 겸했고 중국에서 책을 수입했으며 대구에 지점까지 냈다. 그러나 식민지하에서 일본 출판사 및 서점과의 경쟁에서 밀려 침체기를 맞았고 우리말과 글이 금지되면서 쇠퇴의 길을 걷다가 1950년대 중반 문을 닫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서점 회동서관(匯東書館)의 1913년 이전 사진<작은 사진>과 1913년 이후 개축된 사옥의 사진<큰 사진>이다.

    1945년 11월 삼중당(三中堂)이 출판에 이어 도매상을 시작하면서부터 서점의 명맥은 되살아났다. 대한민국이 건국된 1948년엔 전국에 52개의 서점이 생겨난다. 그러나 1958년 갑자기 불어닥친 전집물 외판제도로 인해 출판·서점계가 위기를 겪게 된다. 그 여파로 1965년 유길서점, 덕흥서점, 1967년에는 문명당서포, 태양서점, 숭문사, 삼신서적이 연이어 문을 닫았다.

    70년대 들어 경제개발의 성과가 나타나고 국민들의 교육수준도 높아지면서 책 수요는 크게 늘어났고 서점도 대형화되기 시작했다. 큰 도시마다 그 지역을 대표하는 대형서점이 중심가에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서울엔 종로서적, 부산에는 영광도서, 광주에는 삼복서점, 대전에는 대훈서적 등이 있었다.

    그러나 서점의 초대형화 추세와 인터넷서점의 등장으로 중대형 서점들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다. 1998년 5000개에 육박하던 동네서점은 이제 절반 이하로 줄었다. 중대형 서점도 상황이 녹록지 않다. 2002년 95년 역사의 종로서적이 문을 닫았고, 2008년에는 76년 역사를 자랑하던 삼복서점이 폐업했다. 또 지난 5일엔 52년 된 대훈서적이 부도처리됐다. 출판 10대강국을 지향하는 대한민국 출판계의 어두운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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