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초점] '취업 후 학자금 상환'이 초래할 끔찍한 일들

입력 2009.10.05 03:46 | 수정 2013.02.06 16:15

윤영신·경제부장

이번 추석에 고향에 다녀온 대학생들은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을 것이다. 자녀를 맞았던 부모들도 큰 시름을 덜게 됐다. 이젠 부모가 논 팔고 소 팔지 않아도 대학생 자녀가 얼마든지 자기 힘으로 학자금을 마련할 길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대학생들에게 학자금을 빌려주고 졸업 후 취업하면 최장 25년간 천천히 갚도록 하는 제도를 내년 1학기부터 도입한다. C학점 이상이면 등록금 전액을 빌려준다. '취업 후 상환' 조건이라 극단적인 경우 대학 4년 동안 5000여만원의 학자금을 빌려 썼다가 나중에 직업을 구하지 못해 한 푼 갚지 않으면 그걸로 끝이다. 정말로 서민층엔 돈 없이도 대학공부를 할 수 있는 꿈 같은 세상이 열렸다.

이 제도가 시작되면 전체 대학생의 절반가량인 107만명이 학기마다 학자금을 빌릴 것으로 정부는 추산한다. 연간 10조원 안팎의 재원이 필요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때나 후보 때 측근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는 어렵게 커왔기 때문에 두 가지 목적으로 대통령을 하려 한다. 하나는 교육을 통해 가난의 대를 끊는 것이다. 그것은 꼭 하겠다. 두 번째는 서민을 위해 일하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대한민국 지도자가 되려 했던 이유가 이것이라면 '취업 후 학자금 상환 제도'는 그의 분신과도 같은 정책이다.

미국이나 유럽, 호주에도 비슷한 제도가 있다. 하지만 이들 나라는 대학 진학률이 30~50% 정도이고, 어려운 졸업관문을 통과하면 대개 직장을 구해 빚을 갚아나간다. 우리나라는 사정이 다르다. 고등학생 대부분이 대학에 가고, 대학에 들어가면 특별한 전문지식이나 기술을 습득하지 않은 채 쉽게 졸업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대학 진학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84%에 달하는 '대졸자과잉의 나라', 대학을 나와도 변변한 직장을 얻지 못하는 '이태백의 나라'다.

내년부터 '친서민 학자금'까지 생기면 대학 진학률은 더 높아질 것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대학을 나와도 언제 실업자 신세에서 벗어날지 알 수 없고, 파트 타이머나 영세 자영업에 취업해 돈을 벌어도 학자금을 갚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4년간 학자금을 빌린 남녀 대학생이 결혼을 한다면 1억원가량 빚을 안고서 신용불량자 부부로 출발하게 된다.

많은 젊은이들은 나라에 진 빚을 성실하게 갚아나가리라 믿는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빚을 못 갚거나 빚 갚기를 피하는 젊은이도 적지 않을 것이다. 대학생 신용불량자가 1만3000명으로 불어난 상황에서 현행 학자금 대출 프로그램을 보면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현 정부의 대표적 친서민 정책으로 탄생한 '취업 후 학자금 상환 제도'가 가난을 이겨낸 보석 같은 인재를 길러내겠다는 '순수한 열정'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젊은이를 집단으로 '도덕적 해이'의 시험대에 들게 하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이 제도가 결국 수십조원의 빚을 탕감해주는 제2의 농가부채 사태가 될 것이라고 걱정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현재 20대 연령층은 정서적으로 반(反) MB적이다. 이들은 촛불사태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정국 때도 성난 민심의 중심에 있었다. 20대의 지지를 얻는데 '취업 후 학자금 상환 제도'만한 정책은 없다. '취업 후 상환'이니 적어도 현 정부 임기 동안 이들이 빚 독촉에 시달리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부도나는 학자금이 해마다 수조원씩 쌓이면 나라 살림이 축나고 후대의 정권이 그 짐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현 정부에서 탄생한 'MB 학자금 세대'가 더 반정부적으로 변할까 봐 후대의 정권은 빚독촉을 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현 정권이야 "서민을 위한 것"이라며 대중 앞에 던져 버릴 수 있는 정책이지만, 나중에 발생할 후유증을 생각하면 끔찍하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못 미더워서가 아니다. 우리나라 대학교육과 고용시장의 심각한 불일치와 허점 많은 학자금 대출 제도가 그들의 건강한 양심을 병들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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