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박정희와 KIST

조선일보
  • 이준 논설위원
  • 김도원
    입력 2009.10.05 03:46

    1965년 한국이 베트남전 파병을 결정하자 미국은 감사의 표시로 1000만달러를 원조하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밀가루 한 포대가 아쉽던 때였다. 정부 내엔 "부족한 식량을 수입하는 데 원조자금을 우선 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다. 대통령 박정희의 생각은 달랐다. 미국의 1000만달러와 우리 정부 출연금 1000만달러를 합쳐 대한민국 공업 발전에 기여할 종합연구소를 세우자는 거였다. 그렇게 해서 이듬해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가 탄생했다.

    ▶초대 소장이었던 고(故) 최형섭 전 과학기술처 장관은 전국 30여 곳을 둘러본 뒤 대통령에게 서울 홍릉 임업시험장을 연구소 부지 1순위로 보고했다. 농림부는 펄쩍 뛰었다. 박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농림부 장관을 데리고 홍릉으로 가 "임업시험장도 중요하지만 과학기술연구소는 더 중요하다. 38만평을 모두 연구소에 내줘라"고 했다. KIST에 첫 예산 10억원을 배정할 때도 경제기획원이 예산을 깎으려 하자 "원하는 만큼 다 주라"며 KIST 손을 들어줬다(조갑제 '박정희').

    ▶KIST 설립 후 박 대통령은 한달에 한두번씩 꼭 연구소를 찾았다. 연구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연구동 신축현장 인부들에게 금일봉을 돌렸다. 해외에서 뽑아온 박사들에겐 집과 대통령 자신의 몇배 봉급을 제공하고 당시 국내엔 없던 의료보험까지 미국 회사와 계약해 들게 해줬다. 각계에서 반발과 진정이 쏟아졌지만 박 대통령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과학계엔 "조선시대 장영실 뒤에 세종이 있었고 KIST 뒤엔 박정희가 있다"는 말이 퍼졌다.

    ▶ KIST 퇴직 동문 모임 '연우회'가 오는 23일 박 대통령 기념관 건립 사업단을 발족한다. KIST 안에 부지 2100㎡를 확보해 330㎡ 규모 기념관과 해외 석학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를 짓는다. 건립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100억원 모금 운동도 벌일 것이라고 한다.

    ▶"과학기술 발전은 국가 지도자의 관심을 먹고 자란다." 개발도상국의 과학기술 발전사를 연구한 미국 스티븐 데디에 박사의 말이다. 박정희라는 지도자의 관심을 먹고 자란 KIST는 40여년 동안 생명공학연구소·전자통신연구원 등 20개 가까운 전문연구소를 분가 독립시켰고 4000여명의 석·박사급 과학 인재를 키워냈다. 박원훈 연우회장은 "기념관이 완공되면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정확히 인식한 지도자가 국가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산 교육 현장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 말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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