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33세에 죽은 李小龍, 33편 영화에 출연?

조선일보
  • 유석재 기자
    입력 2009.09.26 03:42 | 수정 2009.09.26 15:08

    '정무문' 등 대표작 5편
    생후 3개월부터 아역배우
    美영화와 드라마도 출연 촬영분 짜깁기한 작품도

    이소룡은 영화를 찍지 말았어야 했다. 그냥 대학에서 시간강사(?)나 했으면 오래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타고난 재능을 억누르기란 어려운 일이다. 본지 9월 7일자 '조용헌 살롱'

    33세로 요절한 홍콩미국배우 이소룡(李小龍·브루스 리·1940~1973)은 도대체 몇 편의 영화에 출연한 것일까? '네 편' 혹은 '다섯 편'이라는 답이 나오는 게 보통이다. 과연 그럴까.

    그가 주연한 무술영화 중 생전 상영된 것은 '당산대형(唐山大兄·1971)' '정무문(精武門)' '맹룡과강(猛龍過江·이상 1972)'이다. 미국 워너브러더스가 제작한 '용쟁호투(龍爭虎鬪)'는 이소룡 사후인 1973년 8월 개봉됐다.

    우리나라에선 정무문·당산대형·용쟁호투의 순으로 개봉돼 선후관계에 혼란이 생겼다. 이소룡이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주연한 무술영화는 이 네 편뿐이다. 그런데 사후 5년 뒤인 1978년 '사망유희(死亡遊戱)'가 나왔다.

    이소룡은 1972년 세계의 무술가들과 맞서는 영화 '사망적유희'를 계획했고 일부 장면 촬영을 마쳤다. 한국의 한 탑 꼭대기에 숨겨진 보물을 찾기 위해 이소룡이 층마다 포진한 고수들을 꺾고 올라간다는 내용이었다.

    실제 구조와 다르지만 이 탑으로 설정된 건물은 법주사 팔상전(국보 55호)이었다. 추위에 약한 이소룡이 한국의 겨울을 꺼려 촬영팀을 철수시킨 뒤 '용쟁호투'를 먼저 찍었다는 얘기도 있다.

    원래 줄거리를 완전히 바꿔 완성된 '사망유희'에서 이소룡은 러닝타임 100분 중 80분이 넘어서야 등장한다. 그전까지는 원표(元彪)와 한국 배우 김태정 등이 대역을 맡았고 이소룡의 다른 영화 장면을 짜깁기했다.

    단 10분 동안 출연한 '진짜'는 노란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채 필리핀 무술가 댄 이노산토, 한국 합기도 고수 지한재, 미국 농구선수 카림 압둘 자바와 리얼 액션을 펼친다. 그렇다면 모두 다섯 편일까?

    이소룡은 아역배우 출신이다. 생후 3개월 만에 아버지 이해천(李海泉)의 품에 안긴 채 등장한 '금문녀(金門女·1941)'가 첫 영화다. 배역다운 배역은 6살 때 촬영해 1951년에 개봉된 '인지초(人之初)'에서의 불량소년 역이었다.

    본명이 이진번(李振藩)이던 그는 1950년의 '세로상(細路祥)'에서 '이소룡'이란 예명을 처음 사용했다. 그래서 이 작품이 이소룡의 실질적인 데뷔작이라고 평가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주로 고아나 개구쟁이 역할을 맡은 이 시절 영화에서 이소룡은 이미 손가락으로 상대를 가리키거나 엄지손가락으로 코를 훔치는 것 같은 동작을 선보였다. 이 동작들은 나중에 그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됐다.

    ‘인해고홍’에 출연한 18세의 이소룡.
    1957년 '뇌우(雷雨)'에서의 조연을 거쳐 아역 시절 마지막 영화 '인해고홍(人海孤鴻·1958)'에서 이소룡은 첫 주연을 맡는다. 1997년 영국에서 우연히 컬러 필름이 발견돼 2000년 이소룡 탄생 60주년 기념으로 홍콩에서 공개됐다.

    차차차를 추며 건들거리는 영화 속 이소룡의 역할은 당시 그의 실제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자료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여기까지 이소룡의 출연작은 모두 24편이다.

    1959년 미국 유학을 떠나 시애틀 워싱턴주립대 철학과를 중퇴한 이소룡은 할리우드 관계자의 눈에 띈다. 1966~67년의 TV 시리즈 '그린 호네트(The Green Hornet)'에서 이소룡은 악당과 싸우는 주인공의 조수 '카토'로 나왔다.

    검은색 눈가리개를 쓰고 나온 이 드라마에서 그는 쿵후와 쌍절곤(雙節棍)을 미국 시청자들에게 선보였다. 이후 이소룡은 '배트맨' '아이언사이드' '블론디' '신부들이 온다' 등의 TV 시리즈 중 몇 개의 에피소드에 출연했다.

    '롱스트리트'(1971)의 오프닝 에피소드에선 붉은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시각장애인 주인공에게 무술을 가르치는 배역으로 나왔다. 이 시기 이소룡이 유일하게 출연한 극장용 미국영화가 1969년 작 '말로(Marlowe)'다.

    지금 이 영화를 보는 팬들은 경악한다. 악당으로 나온 이소룡이 주인공인 탐정을 협박하며 올려차기로 천장 전등을 부수는 등 실력을 발휘하다 두 번째 장면에서는 어처구니없게도 옆차기를 너무 세게 하다 난간에서 떨어져 죽는다.

    당시 미국 영화계는 동양 배우를 주인공으로 쓰는 걸 탐탁잖게 여겼다. 그런데 '그린 호네트'가 동남아에 소개돼 이소룡의 이름이 알려지자 홍콩 영화사 골든하베스트가 그에게 출연을 제안했다. '당산대형'이었다.

    문제는 이게 전부가 아니라는 데 있다. 그 이후의 괴작(怪作) 두 편이 더 있다. 1973년에 나온 '기린장(麒麟掌·Fist of Unicorn)'의 많은 포스터와 DVD 표지는 이소룡의 얼굴을 내세우고 있다. 이것은 정말 이소룡의 잊혀진 고전일까?

    이 영화의 주인공은 이소룡의 죽마고우 소기린(小麒麟)이었다. 이소룡은 우정 때문에 무술 지도를 맡았다. 그런데 제작사는 무술 지도하는 이소룡의 모습을 촬영해 뒀다 영화 본편에 마치 그가 출연한 것처럼 끼워넣었다.

    아직도 한 편이 더 남아 있다. 이소룡의 '진짜 유작'으로 소개된 '사망탑(死亡塔·1981)'이다. 편집본에 따라 줄거리가 달라지는 이 영화는 이소룡이 출연한 영화에서 쓰다 남은 자투리 필름들을 끌어모아 곳곳에 심어 뒀다.

    어쨌든 이소룡이 나오긴 나오는 이 두 작품까지 넣는다면 이소룡은 모두 32편의 영화(아역 24, 미국 1, 대표작 5, 괴작 2)와 6종의 미국 드라마에 출연한 셈이 된다.

    이 수치는 집계 기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최후의 이소룡(Bruce Lee, the Legend)' '사망유희지려(A Warrior's Journey)' 등의 다큐멘터리와 짝퉁 이소룡만 등장하는 숱한 아류작을 제외한 것이다. 1996년에 발견된 1972년 '사망적유희'의 미공개 촬영분(90여분) 중 일부가 DVD로 발매된 적이 있는데, 이것까지 친다면 33편이 된다.
    '악당 이소룡'을 보신 적 있습니까? 1969년 할리우드 영화 '말로(Marlowe,귀여운 여인)'에서 주인공인 탐정(제임스 가너 분)을 협박하는 비열한 동양계 악당은... 다름아닌 이소룡이었다. 두 번째 장면에서 갑자기 황당한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도 놓치지 마시길. '당산대형'(1971)을 찍기 전 이소룡의 연예계 행로는 이렇듯 험난했다. /유석재 기자 karm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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