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신비의 묘약이라는 '○○탕' 성분 분석해보니

조선일보
  • 곽수근 기자
    입력 2009.09.26 03:42 | 수정 2009.09.26 09:22

    고혈압 치료제의 일종 의약분업 피하려 한약 대체 무분별 복용 땐 마비 등 일으켜

    서울의 한 약국에서 파는 '○○탕(湯)'
    연주(演奏)나 실기 때 긴장하지 않는다, 떨리던 마음이 가라앉는다…. 서울의 한 약국에서 파는 '○○탕(湯) '은 예체능계 학생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지금은 '신비의 묘약(妙藥)'이라 불리며 직장인들에게도 퍼져가고 있다.

    이 약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도 찾을 수 있다. '○○탕'을 모방한 유사품까지 생겼을 정도로 수십년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신기한 것은 약국이 이 약을 드러내놓고 팔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돈방석에 앉을 수 있는 제품을 그들은 쉬쉬하며 팔고 있을까. 이 약국을 찾았다.

    간판에 '한약조제 전문' 문구가 적혀 있었다. ○○탕을 달라고 하자 서랍에서 한개를 꺼내줬다. 가격이 5000원이었다. '성인은 시험 2시간 전 1포 복용, 약한 체질은 적당히 감량해서 복용하십시오'라는 스탬프가 찍혀 있었다.

    공인 의료기관에 이 약의 성분 분석을 의뢰했다. 이 기관은 도핑테스트도 하는 곳이다. 결과는 '마약(痲藥) 성분은 없지만 프로프라놀롤(propranolol) 성분이 다량 검출됐다'는 것이었다.

    프로프라놀롤은 혈압을 낮추는 일종의 '베타차단제'다. 한마디로 신비의 묘약이 아니라 고혈압(高血壓) 치료제였던 것이다. 심장 박동 수를 늦추고 혈압을 떨어뜨리는 효과가 있어 고혈압·부정맥·갑상선 질환 치료에 사용된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북한 사격선수 김정수가 도핑테스트에 걸려 은메달, 동메달을 박탈당했을 때 나왔던 게 프로프라놀롤이다. 올 2월에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학 연구진이 프로프라놀롤에 대한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연구팀에 따르면 프로프라놀롤은 나쁜 기억을 지워주는 효능이 있다고 했다. 당연히 좋을 것 같지만 학계에서는 "두려움 등의 정신병리적 질환을 약리학적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탕을 많이 찾는 항공기 승무원 지망생들 사이에서는 "필기·면접 시험 때 간단한 것도 기억이 나지 않아 애먹었다"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도 약이 팔리는 것은 표정이 굳거나 볼에 경련이 이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이 약은 90년대 초 예술중·고교생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약사가 무대 공포증이 있는 자녀를 위해 약을 만들었고 결국 대학에 합격했다"는 말도 있었다. 그런데 반드시 약국을 찾아가야 이 약을 구할 수 있는 이유는 뭘까.

    2000년 의약분업(分業) 전 이 약국이 팔던 묘약은 알약이었다. 의약분업으로 의사의 처방전이 있어야 프로프라놀롤이 들어간 약을 팔 수 있게 됐다. 그러자 약국은 한약을 달인 것 같은 ○○탕으로 알약을 대체했다. 전문가들은 이 약을 무분별하게 장기 복용할 경우 근육통이나 신경조절에 이상이 올 수도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교감신경을 인위적으로 순간 억제하는 약 특성상 자율신경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어서다.

    혈압은 신체조건에 따라 민감하게 변하기 때문에 부작용 사례도 꽤 있다. 현악을 전공하는 A씨는 최근 독주회에서 손이 굳어 연주를 포기할 뻔 했다. 연주 직전에 약을 먹었더니 심장박동이 느려지면서 손이 마비된 것이다.

    음대 작곡과 재학생 B씨도 피아노 시험을 앞두고 같은 약을 먹었다가 혼쭐이 났다. 그런데도 이 약이 왜 계속 팔릴까. 의존성 때문이다. 약의 합법성과 안전성이 의심스럽지만 약이 없으면 실기(實技)를 망칠 것 같아 겁이 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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