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에 울린 안중근 의사 종질부(從姪婦·사촌 형제의 며느리)의 애국가

조선일보
  • 오현석 기자
    입력 2009.09.22 03:08 | 수정 2009.09.22 15:40

    97세 안노길씨, 역사탐방 온 한국 대학생들과 함께 불러
    "일본놈들이 우리 당숙을 여기 하얼빈역에서 잡아갔대
    난 절대로 잊지 못해"

    안중근 의사의 종질부인 안노길<사진 앞>씨가 19일 오후 중국 하얼빈 자오린공원에 있는 안 의사 기념비 앞에서 성신여대 학생들이 부르는 애국가를 듣고 있다./뉴시스
    "일본놈들이 우리 당숙(안중근 의사)을 여기서 잡아갔대. 그놈들 앞잡이가 남편도 죽였어. 난 절대로 잊지 못해"

    19일 오후 3시30분 하얼빈(哈爾濱) 역에 나타난 안노길(97)씨는 역사(驛舍)를 보자마자 눈물부터 흘렸다. 안중근 의사의 사촌동생인 홍근(洪根)씨의 3남 무생(武生)씨와 결혼한 안씨는 안중근 의사의 종질부(從姪婦)다.

    일제 강점기 만주에서 힘들게 이주민으로 살던 안씨는 일제가 패망하기 1년 전인 1944년 남편을 잃었다. 일제 앞잡이들이 남편을 몽둥이로 구타해 사망하게 한 것이다. 안씨는 "내가 안중근 가문의 며느리인데 이렇게 물러설 수 없다"며 복수를 다짐했다.

    문제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내세운 안씨의 활동이 공산주의 중국 당국의 방침에 어긋났다는 것이었다. 당시 '적성국' 국기였던 태극기와 안 의사 영정을 들고 일제 앞잡이들에 대한 복수를 외치던 안씨는 1958년 중국 공안 당국에 체포됐다. 종교의 자유가 없었던 중국에서 정부 방침과 달리 로마청 교회를 따른 것도 문제가 됐다. 결국 안씨는 무기형을 선고받고 40여년을 감옥에 갇혀 있었다.

    이날 안씨가 하얼빈 역을 찾은 것은 4년 만이었다. 한국에서 성신여대 학생들이 안중근 의사의 역사현장을 탐방하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이들을 만나기 위해 휠체어를 타고 집을 나섰다.

    대학생들이 "할머니 고생 많으셨죠?"라고 묻자, 안씨는 학생들의 손을 잡고 과거 기억들을 조금씩 되살리기 시작했다. 기억이 희미하고 선후(先後)가 엇갈렸지만, 한국인이 고생하던 기억만큼은 명확했다.

    "우리 동포 다 죽었어. 그냥 죽은 게 아니라 끌려가서 죽었어. 함경도 남자들 20살만 되면 군(軍)으로 다 잡아갔어. 끌려갔는데 소식이 없어."

    학생들이 안 의사의 동북아 평화 정신을 기리자며 손도장을 찍는 퍼포먼스를 하자, 안씨는 "혈서 쓰고 손가락 잘라 손도장 찍는 사람은 일본사람들이 다 잡아서 죽인다"며 "너희들은 그런 거 하지 말라"고 했다. 안씨의 기억 속엔 일제 시대와 현재가 뒤섞여 있었다.

    학생들과 대화하던 안씨는 문득 "애국가가 듣고 싶어"라고 얘기했다. 학생들이 안씨의 주변에 동그랗게 모여 애국가를 부르자, 안씨는 목소리를 쥐어짜며 애국가를 함께 불렀다. "대한사람 대한으로"라는 부분에서 안씨는 "대국(大國)사람 대국(大國)으로"라고 불렀다. 안씨가 일제 강점기부터 사회주의 중국에서까지 목숨을 걸고 불러온 애국가였다.

    이날 역사탐방 행사는 성신여대가 학생들을 글로벌 리더로 양성하려 기획한 프로젝트였다. 행사에 참가한 이상미(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2학년)씨는 "안 할머니를 통해 우리나라가 있기까지 고생한 분들이 있었다는 것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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