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공직 후보의 위법을 지켜보는 국민의 착잡한 심정

조선일보
입력 2009.09.21 21:47 | 수정 2009.09.21 22:59

21일 열린 정운찬 총리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도 각종 위법행위가 지적됐다. 인세(印稅)·고문료·임대수입을 얻고도 종합소득세 신고를 누락한 사실, 실제 살지도 않는 곳으로 주민등록을 옮겼던 사실, 논문의 중복 게재 논란, 해외 나갈 때 지인으로부터 1000만원을 받은 사실 등 여러 가지가 다시 문제가 됐다. 대학교수와 대학 총장 등 비교적 담백한 길을 걸어온 그의 이력도 들춰보니 이런저런 하자(瑕疵)가 드러났다. 소득세법, 주민등록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정 총리 후보 외에도 민일영 대법관은 주민등록법 위반, 최경환 지식경제부장관은 소득세법 위반, 이귀남 법무장관은 주민등록법과 공직자윤리법 위반, 백희영 여성부장관은 소득세법 위반 등 각종 법률 위반 사실이 줄줄이 드러났다. 이들의 법 위반사항 중에는 사소한 문제도 적지 않다. 그러나 총리 이하 각부 장관들은 국민에게 그러한 법률을 지키도록 하고 그것을 솔선수범해야 할 사람들이다. 앞으로 누구에게 법을 지키라고 할 수 있겠는가. 눈뜨고 죽은 법(法)이 돼버린 대한민국 법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다.

국회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이후 고위 공직 후보들이 가장 많이 범한 것으로 드러난 위법행위가 위장 전입(주민등록법 위반)이었다. 과거 정권에선 총리 후보 두 사람이 연이어 주민등록법 위반 사실이 드러났고, 이명박 대통령도 대선 때 같은 지적을 받았다. 부동산 투기를 위해 위장 전입을 한 사람들은 대부분 중도 탈락했지만, 자녀를 더 나은 학교로 보내기 위해 주민등록법을 어긴 사람들은 국회에서도 대충 눈감아주는 분위기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주민등록법 위반으로 처벌받은 국민은 5000여명에 달한다. 같은 주민등록법을 위반했는데 어떤 사람은 처벌받고 어떤 사람들은 장관이 됐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자녀 학교를 위해 위장 전입에 나서면 어떻게 되겠는가. 특히 민 대법관과 이 법무장관 후보와 같이 법을 수호해야 하고 위법을 감시해야 할 사람들의 위법행위는 사회의 기본 질서와 그 정당성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제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 사회 현실이 이런 이상론(理想論)과는 거리가 있는 것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과거 김대중 정권 때 총리 인선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총리 후보 20여명을 검증했는데 문제가 없는 사람이 없었다"고 했었다. 이번 개각에서도 처음에는 교체 대상이었던 사람이 흠 없는 다른 장관 후보를 찾지 못해 유임됐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우리 사회가 압축 성장을 해왔고, 그 와중에 법치주의가 확립되지 못하면서 "털면 먼지 나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법과 현실의 경계가 애매하게 된 것이 사실이다. 야당 의원들이 아무런 도덕성 문제를 찾아내지 못한 김태영 국방장관이 오히려 희귀한 존재로 비치는 세상이다. "모두 김 장관 같은 사람으로만 총리, 장관을 임명하라"는 요구는, 말은 쉽지만 실천은 매우 어려운 것이 지금 우리 사회의 솔직한 현주소다.

그렇다고 현실에 안주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언젠가는 구미(歐美) 선진국처럼 사소한 위법행위로도 공직의 꿈은 접어야 하는 시대가 반드시 와야 하고, 올 수밖에 없다. 지금의 진통은 그런 시대로 가는 과도기여야 한다.

공무원·학자·사회운동가·기업인 등 앞으로 고위 공직을 맡을 가능성이 있는 수많은 사람이 이 청문회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다음 세대의 대학생들도 보고 들었을 것이다. 이들이 자신들의 생활과 자세를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청문회의 의의는 작지 않을 것이다.


[찬반토론] 고위공직자 후보의 위장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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