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소설 안중근 불멸] [192]

조선일보
    입력 2009.09.21 02:57

    제16장 대한독립군 참모중장

    "그런 건 걱정 마시오. 두만강만 건너면 살기 위해서라도 모두 뭉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요. 그보다는 어서 빨리 대한 땅으로 쳐들어가 왜적을 하나라도 더 많이 때려잡을 궁리나 합시다."

    창우회 소속 부대의 한 대장은 그렇게 노골적으로 안중근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게 다시 안중근의 열변을 이끌어 냈다.

    "지금 우리는 기껏 몇백 명의 병력으로 수천, 수만의 적과 싸우려 하니 적은 강하고 우리는 약하므로 적을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됩니다. 더구나 병법에 이르기를 '비록 백 가지 바쁜 가운데도 반드시 만전의 방책을 세운 연후라야만 큰일을 꾀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들의 의거가 한번으로 성공할 수 없음은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단번에 뜻을 이루지 못한다고 기죽어 물러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첫 번에 안 되면 두 번 세 번 되풀이 일어나고, 열 번 백 번이 꺾여도 굴함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금년에 못 이루면 내년에 다시 도모하고, 때에 따라서는 십 년 백 년을 가도 좋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합니다. 만일 우리 대에 뜻을 이루지 못하면, 아들 대 손자 대에 가서라도 반드시 우리 대한의 독립권을 회복한 다음에라야 그만둘 각오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일러스트 김지혁
    그리하여 먼저 할 일과 나중에 할 일, 급히 나갈 것과 더디게 나갈 것을 맞게 정하며, 앞일을 헤아려 미리 준비하고 뒷일에 대비함에도 소홀함이 없으면, 반드시 우리가 목적하는 바를 달성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하면 설령 오늘 나온 군사들이 병약하고 늙었다 하더라도 걱정할 게 없습니다. 우리 뒤에 남은 청년들이 사회를 조직하고 민심을 단합시키며 아이들을 교육하여 앞날을 준비하고 뒷일에 대비하는 한편, 여러 가지 실업에 힘쓰며 실력을 양성해가면 못 이룰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비방과 야유가 쏟아졌다. 함경도 포수 출신의 한 장교는 아예 욕설로 안중근의 입을 틀어막다시피 했다.

    "이보라우. 개소리 집어 치우라야. 박 터지게 생긴 싸움판 앞두고 이거 무스기 사람 맥 빠지게 하는 소리가? 당최 낙태한 고양이 쌍판을 하고스리."

    안중근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으나, 거기 모인 부대장들이나 장교들에게는 아니꼬울 뿐이었다. 모두 의병으로 모이기는 해도, 여러 해 국외를 고생스레 떠돌면서 그들 대부분의 성품은 사납고 거칠어져 있었다. 조국 독립을 바라는 열의를 빼면 비뚤어질 대로 비뚤어진 주먹패거리나 다름없는 이들이 많았다. 그들이 높이 치는 것은 권력이 있거나 재산이 많거나 주먹이 세거나 관직이 높은 사람들과 나이 든 어른이었다. 그런데 그 어디에도 들지 않는 안중근이 그들 앞에 나서 떠드니 그 말이 바로 들릴 리 없었다.

    격렬하게 희비(喜悲)를 드러내는 데는 안중근도 그들 못지않았다. 부당하게 무시당했다 싶자 모든 걸 팽개치고 빠져 나오고 싶었으나 이미 내친걸음이라 그럴 수도 없었다.

    이어 벌어진 그날의 논의에서 연해주 의진은 러시아령 장고봉(張鼓峰)의 서북쪽 방천 나루터에서 두만강을 건너기로 했다. 방천 나루터는 두만강 하류를 따라 좁게 이어진 청나라 땅으로 훈춘현 경신진(京新鎭)에 속했다. 장고봉을 등지고 러시아령인 와봉(臥峰) 마을과 이웃해 있는 그 나루터는 겨울이면 두껍게 얼어붙지만, 여름이면 깊이 대여섯 길에 강폭이 넓은 두만강이 되어 배가 없이는 건널 수 없는 국경이 되었다. 청나라와 러시아, 조선 세 나라의 땅이 맞닿는 국경이었다.

    "알아본 바로, 방천 나루터에는 곡씨(曲氏) 성을 쓰는 한인(漢人)이 제법 큰 목선을 가지고 여름 한철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나른다고 합니다. 거기다가 청나라 관부도 멀고 강 건너에는 일본 수비대도 없어 국경을 건너 오가는 데 별 어려움이 없다 하니 그리로 건너면 좋을 듯합니다."

    두만강 건너 경흥 출신인 장교 하나가 아는 대로 지리를 말하고 그렇게 제안하자 김두성을 비롯한 모든 부대장이 모두 따르기로 했다. 날이 저물자 의병부대는 모두 방천나루로 옮겨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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