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노기남 대주교를 '친일 반민족 행위자'로 규정한 잣대

조선일보
입력 2009.09.17 23:18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한국인 최초의 천주교 주교이자 서울교구장을 지낸 고(故) 노기남(盧基南) 대주교를 '친일 반민족 행위자'로 결정한 데 대해 재평가를 요구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노 대주교가 조선총독부 강요로 어쩔 수 없이 몇몇 단체를 조직해 일제에 협력했던 것은 일제 강압통치 아래 천주교회 수장으로서 교회와 교인을 지키기 위한 자기희생이었다"며 "사적(私的) 이익과 영달을 추구한 친일과는 분명히 구분돼야 한다"고 밝혔다. 서울대교구는 또 "광주와 대구 교구장에 일본인 신부들이 임명되는 등 일제가 한국 천주교회의 교구장을 모두 일본인으로 바꾸려고 획책했던 1940년 전후 상황에서 노 대주교의 주교 서임과 서울교구장 취임은 그 자체가 일제 통치에 대항하는 자주적, 민족적 성격을 띠었다"며 "위원회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나 동기를 고려하지 않은 채 겉으로 드러난 면만 보고 형식적 판단을 한 것 아닌지 걱정된다"고 했다.

서울대교구는 "노 대주교는 1946년 12월 8일 명동성당에서 김구 주석 등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임시정부 귀국 환영대회를 열었고, 안중근 의사 가족들이 국내에 정착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며 "노 대주교가 공공연히 친일협력 행위를 했다면 해방 직후 상황에서 김구 주석 등이 행사에 참석이나 했겠느냐"고 물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2005년 노무현 정권에서 대통령 소속으로 출범해 활동하다 오는 11월 활동 시한이 종료된다. 위원회의 그간 행태와 관련, 일제의 강압(强壓)으로 똑같은 행동을 한 사람들을 놓고 좌파적 인물에 대해선 겉으론 친일 행동을 했지만 뒤로는 독립운동을 하거나 또는 독립운동 인사를 지원했다고 감싸면서, 우파적 인물에 대해서는 강요된 친일 행동만 거론하고 이들의 독립운동 또는 독립운동가 지원 사실에는 고의(故意)로 눈을 감은 채 '친일 반민족' 도장을 찍어왔다는 비판이 계속됐었다.

소설가 김동인은 광복 후 건국준비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몽양 여운형에 대해 "일제 말 방공훈련 때 경찰 지휘를 받으며 완장을 두르고 고함지르며 싸대고 있었다. 저럴 때면 좀 피해서 숨어버리는 편이 좋지 않을까"라고 1949년 잡지 '신천지'에 썼다. 민주화운동에 몸담았던 계훈제씨도 수기 '식민지 야화(野話)'에 "학병 징집을 피해 다니다 여운형씨를 찾아가 상의했더니 '오늘날 우리는 상무정신을 찾아볼 수가 없다. 이 기회에 출정해 현대 전법을 습득하면 유용할 것'이라고 했다"고 썼다. 몽양은 친일 단체인 조선대아세아협회 상담역, 조선교화단체연합회 찬조연사, 조선언론보국회 명예회원으로 이름이 올랐고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그의 이름으로 된 학병 출정 권유문이 여러 차례 실렸다.

문제는 몽양과 같은 좌파적 인물의 강요된 친일을 덮어준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몽양처럼 일제의 강압으로 친일 단체에 이름을 올리고 몽양처럼 일제의 강요로 학병 권유 글을 게재할 수밖에 없었으면서도, 몽양처럼 그 이면(裏面)에서 투옥된 독립지사를 보살피고 독립운동가를 간병(看病)하거나 장례까지 치러주며 독립운동을 물심(物心)양면으로 지원했던 노기남 대주교 같은 우파(右派) 인사에 대해서는 무슨 이유로 그런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느냐 하는 것이다. 식민지 조선의 유지(有志)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보성전문 교장이었던 현상윤(玄相允)처럼 학교를 보호하기 위해 또는 기업의 문을 닫지 않게 하기 위해 '친일'을 강요당했으나, 그들의 상당수는 독립운동가를 체포하고 고문하고 투옥한 일제의 앞잡이 경찰 노덕술(盧德述) 같은 반민족(反民族) 행위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더구나 위원회가 사실적 증거를 제시하지도 않은 채 '적극적 친일'을 했다며 일방적으로 '친일 반민족 행위자' 도장을 찍고선 대상자들에게 친일 반민족 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내놓으라고 하는 것은 법률에 관한 초보적 지식도 갖추지 못한 무지(無知)의 소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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