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 세종기지 내에서 벌어진 폭행사건 내막

입력 2009.09.17 19:04 | 수정 2009.09.18 11:51

지난 7월 21일 밤 남극 세종과학기지에서 야만적인 폭행사건이 발생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고 월간조선 10월호가 보도했다.월간조선에 따르면 이날 밤 11시 35분쯤 세종기지 주방장 A(38)씨가 기지 생활관 1층 식당에서 총무 박모(46)씨로부터 무자비한 폭행을 당했다.

그러나 폭행 장면이 담긴 CCTV 화면이 삭제되는 등 세종기지 측이 사건을 은폐·조작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세종기지 진모(47) 대장은 상급기관인 한국해양연구원 부설 극지연구소에 “식당에서 폭력행위 현장을 유일하게 직접 목격한 김모 대원은 ‘폭력행위가 있었고 자신이 제지하려고 했으며, 직접적인 신체적 타격을 주는 폭행보다는 위협적인 행동 위주였다’고 증언했다”며 “기지 의사가 조리대원을 진찰한 결과 ‘폭력에 의한 신체적 충격 정도는 경미하다’고 한다”고 보고했다.

극지연구소 강천윤 기지지원팀장은 “세종기지에 CCTV 자료 제출을 요구했지만, 삭제돼 남아있지 않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말했다.

◆무자비한 폭행
그러나 사건 당일 식당 내 CCTV 화면에는 박 총무가 A씨를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CCTV 화면의 시각은 한국시각으로 남극보다 12시간 빠르다. A씨는 CCTV에 녹화된 3분 분량의 화면을 자신의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했다.

CCTV 화면에 나타난 폭행 현장은 진 대장의 보고와 판이하게 다르다. 박씨는 A씨를 밀쳐 쓰러뜨린 뒤 의자와 식당 집기를 집어던지고, 주먹과 발로 A씨를 난타한다. 박씨는 옆에서 말리는 김씨를 업어치기로 메다꽂고, 양주를 담는 얼음통으로 A씨의 머리를 내리친다. 반항도 못하고 계속 맞기만 하던 A씨는 박씨가 소화기를 집어들자 식당 밖으로 도망치고, 박씨는 웃통을 벗어던진 채 A씨를 쫓아 식당을 뛰쳐나간다.

지난 12일 귀국한 A씨는 “박씨가 주방까지 쫓아오면서 ‘칼로 찔러 죽여버린다’고 해 추위에 떨면서 새벽 4시까지 창고에 숨어 있었다”며 “박씨가 새벽 3시쯤 방송으로 ‘30분 여유 준다. 빨리 내 앞으로 와라, 안 그러면 죽여버린다’고 했다”고 말했다. 대원들이 극지연구소에 제출한 진술서에도 박씨가 방송하는 것을 들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A씨는 “박 총무는 2년 전에도 폭력을 휘두른 적이 있다고 한다”며 “세종기지에서는 매년 폭행사건이 발생한다고 들었다”고 주장했다. 이런 A씨의 주장은 그가 기지대장과 동료 등과 나눈 대화 녹취록에서도 확인된다. A씨는 “세종기지와 극지연구소 사람들이 똘똘 뭉쳐 내 말이 거짓이라고 하면 아무도 날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아, 동영상을 찍고, 녹취했다”고 말했다.

강천윤 기지지원팀장은 “지난해 세종기지에 갔을 때 대원들로부터 박 총무가 폭행을 했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며 “보고된 적은 없고, 기지 자체적으로 주의 조치했던 듯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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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폐 의혹

세종기지와 극지연구소는 사건 발생 뒤 인사위원회를 열어 계약직인 박씨와 A씨는 계약해지, 진 대장은 가장 경미한 징계인 ‘주의’ 조치했다. 그러나 진 대장은 CCTV 기록을 확인해달라는 A씨의 요구를 묵살할 뿐만 아니라, 사건 발생 6일 뒤인 7월 27일 “CCTV는 모니터링이 목적이기 때문에 3일이면 지워져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앞서 진 대장은 A씨의 동영상 자료 요구에 “만약 주방장이 동영상을 외부로 공개하면 나뿐만 아니라 우리 조직, 극지연구소, 대한민국 전체에 데미지가 있다”며 “내가 보관하고 있다가 이런 사건이 재발하면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극지연구소에 따르면 CCTV 녹화 기록은 대략 4주 정도 보존되며, 녹화 기록을 지울 수 있는 권한은 기지대장에게 있다. 때문에 진 대장이 의도적으로 CCTV 화면을 삭제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인다.

녹취록에 따르면 A씨가 “동영상이 지워졌다면 폭행사건 확인서를 써달라”고 요구하자, 진 대장은 “목격한 사람들한테 (직접) 받아. 왜 대장이 해야 돼?”라고 거절하며 “어떻게 이용하려는데? 증거를 갖고 싶어하는 이유가 뭔데?”라고 말한다.

진 대장은 A씨에게 사직사유서도 허위로 쓸 것을 종용했다고 한다. A씨는 “진 대장이 샘플을 보여주며 ‘아버님이 위독하시다’라고 쓰라는데, 이미 돌아가신 할머님이 위독하시다고 쓰고 나왔다”고 말했다. 또 녹취록에는 진 대장이 A씨에게 이 사건을 누설하지 않을 것을 종용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 재발 방지 대책 전무

올해 세종기지에 파견된 22차 월동연구대 17명 가운데 박씨와 A씨를 제외한 15명 전원은 지난 7일 극지연구소에 박씨에 대한 선처를 부탁하는 탄원서를 냈다.

이들은 탄원서에서 “이번 일은 총무의 개인적인 감정 표출이라기보다 오랜 기간 기지가 안고 있었던 문제에 대한 월동대 전체의 감정 표출을 대신한 것이었다”며 “평소 총무는 강한 책임감과 넓은 이해심으로 대원들의 맏형 역할을 했다”고 했다.

반면 A씨에 대해서는 “새 주방장은 처음부터 대원들과 갈등이 많았다”며 “일반적이지 않은 식단뿐만 아니라 어울리기 힘든 행동과 성격은 적응하기 힘들었다”고 했다.

다른 대원들보다 늦게 월동대에 합류한 A씨는 올초부터 음식과 성격 문제로 대원들과 마찰을 겪었으며, 대원들은 2월과 4월 두 차례에 걸쳐 A씨와 함께 월동을 하기 힘들다는 탄원서를 진 대장에게 제출했다. A씨는 4월 기지차원의 경고 조치를 받았지만, 교체되지는 않았다.

극지연구소는 2013년까지 남극에 세종2기지를 건설할 예정이다. 그러나 사법권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폭행사건 등과 관련해서는 방지 시스템이 전무하다. 이홍금 극지연구소장은 “제17차 월동대 때부터 CCTV를 설치했고, 내년부터 연구소 정직원을 총무로 파견하기로 했다”며 “월동대원 선발 시 인성검사를 추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A씨는 “나라 망신이란 생각에 공개를 망설였지만, 내가 침묵하면 이런 야만적인 폭행이 반복될 것 아니냐”며 “재발방지를 위해 제도적 장치가 반드시 보완돼야 한다는 생각에 공개하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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