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한국 옥션 창립자 오혁이 필리핀 간 까닭은…

조선일보
  • 김성민 기자
    입력 2009.09.12 03:12 | 수정 2009.09.13 14:45

    새 옥션 만들어 이베이와 한판 할 것

    "내가 만든 옥션이 잘나가고 있는데 다시 내가 한국에서 전자상거래 한다면 우습지 않겠습니까?" 수화기 너머로 오혁(吳赫·47) 대표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가 만든 한국 옥션은 국내 최초로 인터넷 경매 서비스를 시작하며 성장한 전자상거래 기업이다. 2001년 옥션이 미국 이베이에 넘어간 후 그는 필리핀에서 새 도전을 시작했다. 무슨 일이었을까.

    오 대표는 1989년 동국대를 졸업하고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공장을 돌아다녔다. 한 손에는 승용차 시트커버 기획안이 들려 있었다. 그가 1주일 내내 하루도 쉬지 않고 발품을 판 결과는 6개월 뒤 나타났다.

    20평짜리 지하공장은 시트커버를 제일 많이 파는 공장이 됐다. 그러나 절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사장이 이익을 높이려 싸구려 물건에 라벨만 달아 판 것이다. 그는 회사를 뛰쳐나왔다.

    “꿈을 꾸어야만 그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습니다.”마흔일곱의 나이에도 오혁 대표는 끊임없이 꿈을 꾼다. 그가 그리는 미래는 불법이 아닌 모든 것이 공정하게 거래되는 세상이다. /오혁 대표 제공

    "너무 창피했습니다. 좋은 물건을 값싸게 공급하겠다는 소비자와의 약속이 깨진 거죠. 이때 '영업만이 전부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직접 좋은 상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기술자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컴퓨터를 손에 대보지도 않았던 그는 컴퓨터 전문가 6개월 과정을 등록했다. 남들이 1시간 걸리는 것을 5시간 만에 했다. "매일 밤늦게까지 남아서 남이 짜놓은 프로그램 소스를 연구했어요. 남의 기술을 빼먹으며 배운 셈이죠."

    그는 1990년 삼도데이타시스템에 입사했다. 용역을 받아 프로그램을 만드는 곳이었다. 그는 사무실 바닥에 박스를 깔고 새우잠을 자며 일했다. 토요일 밤에 집에 들어가 일요일 저녁에 다시 출근하면서 붙은 별명이 '보증수표'다.

    그렇게 5년이 지난 뒤 1996년 만든 회사가 옥션의 전신(前身)인 '일사랑정보'다. 자신감 하나로 회사를 세웠지만 돈이 없었다. 5년 경력의 프로그래머에게 선뜻 투자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는 아버지를 찾아갔다. "컴퓨터 분야에서 한강 다리 하나를 만들려고 합니다. 만들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노점상을 하며 평생 모은 5000만원을 내줬다. 그의 회사는 그해 3억8000만원, 1997년에는 10억 매출을 달성했다. 1998년 다시 시련이 찾아왔다. IMF로 계약금액이 반토막나고 일거리도 줄어들었다.

    "내가 망하면 아버지도 함께 망한다." 그는 필사적으로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찾았다. 그때 찾은 것이 인터넷을 이용한 경매다. 인터넷을 이용한 거래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이었다.

    오 대표는 투자자를 구할 수 없었다. 30명의 직원 가운데 7~8명 정도가 남았다. 우여곡절 끝에 1999년 2월 권성문 KTB투자증권 회장(전 미래와사람 사장)이 투자 제의를 했다. 8억에 74%의 지분을 넘기는 조건이었다.

    1999년 5월에는 판매자와 구매자가 안전한 거래를 할 수 있는 에스크로(escrow) 기술을 개발했다. 10월에는 회사이름을 '옥션'으로 바꿨다. 2000년에 옥션은 주당 4만원에 코스닥에 등재되며 대박을 터트렸다.

    그때 세계 최고의 전자상거래 업체인 이베이가 조만간 한국에 진출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오 대표는 '쾌재'를 불렀다. 이미 일본에서 실패한 이베이를 보면서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옥션의 인수가 결정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대주주 권 회장이 옥션 경영권을 이베이에 넘기기로 한 것이다. 2001년 오 대표는 자리에서 물러났다. "'한국 닷컴 최고 기업 중 하나가 외국기업이 되는구나'라는 생각으로 며칠간 잠도 못 잤어요. 내 손으로 만든 회사라 착잡한 마음이 들더군요."

    퇴임 후에도 그의 피는 식지 않았다. 여러 기업의 CEO로 와 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거절했다. 대신 2004년 12월 31일 노트북과 옷 몇 벌을 들고 필리핀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새 '옥션'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는 2005년 8월 15일 필리핀 옥션을 차렸다. 함께 일했던 7명의 옥션 창립 주역들도 필리핀으로 불렀다. 그를 믿는 직원들은 한국의 좋은 자리를 박차고 그의 무모한 도전에 동참했다.

    2007년 3월에 일본의 히카리 통신과 CSK 캐피탈이 그에게 300만달러를 투자했다. 현재 가입자 200만명을 돌파했고, 작년 1월에는 필리핀 이베이를 누르고 네티즌이 선정한 최고의 전자상거래 기업으로 꼽혔다.

    "미국 이베이 본사는 아직 필리핀 이베이에 큰 관심이 없어요. 아직 이베이와 제대로 붙어본 것이 아니란 거죠. 내년부터 미국과 영국, sp?id=159" name=focus_link>캐나다 등 10개 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이베이와 한판 할 예정입니다."

    그는 "이제 막 카트만두에 도착해 베이스캠프를 치고 에베레스트 정상을 바라보는 입장"이라고 했다. "필리핀으로 온 것도 세계 정상을 정복하기 위해서였죠. 험난하지만 위대한 도전이 더 가치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