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넛지'의 저자 리처드 탈러 시카고大 교수 인터뷰

    입력 : 2009.09.12 03:13 | 수정 : 2009.11.13 16:44

    부드러운 개입… '넛지(nudge·팔꿈치로 슬쩍 찌르다)'의 힘
    "인간은 허점투성이… 그저 살짝 옆구리만 찔러줘도 바꿀 수 있어"

    요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학 교수를 꼽으라면, 이 사람을 꼽는 데 별 이견이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세계 각국의 대통령들이 그를 주목하고 그의 조언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리처드 탈러(Richard H. Thaler) 미국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 교수가 주인공이다. 그가 쓴 책 〈넛지(Nudge)〉를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8월 초 휴가를 떠나기에 앞서 청와대 전 직원에게 선물하는 바람에 한국에서도 유명해졌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탈러 교수가 '넛지'의 개념을 가미해 설계한 '점진적 저축증대 프로그램(Save more tomorrow)'을 미국 중소기업 근로자들을 위한 저축 장려책으로 채택해 발표했다. 〈넛지〉의 공동 저자인 캐스 선스타인(Cass R. Sunstein) 교수는 오바마 행정부로 영입돼 백악관의 요직을 맡았다. 호주의 케빈 러드 총리와 차기 집권을 노리는 영국 보수 야당의 데이비드 카메론 당수도 '넛지' 이론에 큰 관심을 나타내면서 탈러 교수를 만났다.

    그를 인터뷰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하던 중에 선물처럼 그가 한국에 왔다.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 동문회 행사를 위해 호주·싱가포르·홍콩·대만·중국·한국·일본 등 아시아태평양 7개국을 3주간 여행하는 일정 중에 방한한 것. 그를 지난 9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인터뷰했다.

    책〈넛지〉로 세계 정책 결정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리처드 탈러 미국 시카고대 교수가 8일 한국을 첫 방문했다. 그는 사진기자에게“할리우드 스타 조니 뎁처럼 찍어달라”고 조크를 던졌다. / 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원래 '넛지(nudge)'는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 '주의를 환기시키다'라는 뜻의 영어 동사다. 탈러 교수가 행동경제학의 용어로 개념화한 '넛지'란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을 의미한다. 특히 정책 결정자가 공공 정책을 결정할 때 부드럽게 개입해 국민들에게 좋은 결과를 유도하는 '사회적 넛지'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담아, 올해 비즈니스북 가운데 최고의 베스트셀러를 기록 중이다.

    ―왜 '넛지'라는 단어를 선택하게 됐나요? '넛지'는 미국에서 흔히 쓰는 단어인가요?

    "그렇진 않아요. 미국에서도 사람들이 뜻은 알지만 그리 흔히 쓰는 영어 단어는 아닙니다. 우리 철학에 딱 맞는 단어라서 선택한 것이지요. 우리 철학이란, 요약하자면 선택 설계자(choice architect)가 매우 점잖게 슬쩍 미는 정도의 자유주의적 개입주의(libertarian paternalism)인데, 그 의미에 딱 맞는 단어가 바로 넛지입니다."

    "슬쩍만 찔러 남의 행동을 변화시킨다"는 '넛지' 이미지 때문인지, 유튜브에서 본 통통한 이미지 때문이었는지, 만나기 전에는 그가 무척 거구일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은발에, 정장 차림으로 나타난 탈러 교수는 생각보다 작았다. 실례를 무릅쓰고 키를 물었더니 "5피트 6인치(약 167㎝)"라고 했다. 책 〈넛지〉에 나온 것처럼, 역시 인간은 잘못된 편견에 붙들린 오류의 동물인가 보다. 그런 속에서도 매일 무언가를 선택하고, 미래도 결정해야 한다.

    테니스를 즐겨 치다, 5년 전 골프를 시작했다는 탈러 교수는 그런 인생의 수많은 어려운 선택을 "골프 연습장에서 공의 종착지도 모른 채 계속 퍼팅 연습을 하는 것과도 같다"고 비유했다. 가령 과일 고르기 요령 같은 것은 매일 장 보면서 반복에 의해 학습하고 결과도 금방 드러난다. 같은 홀을 향해 10번의 퍼팅 연습을 하면 공 치는 감각, 거리 가늠하는 법 등을 쉽게 배우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하지만 공이 어디로 멈추는지 볼 수 없는 채로 하루 종일 퍼팅 연습을 하는 것 같은 선택도 있다. 어쩌다 한 번 가입하는 까다로운 조건의 대출 상품이나 보험, 10년 만에 한 번 살까 말까 한 집 구입 등이 이런 선택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상황이 넛지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탈러 교수는 말한다.

    그가 말하는 '넛지'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두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1.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스키폴 공항의 남자 화장실. 이곳은 '화장실을 청결하게' 같은 훈계조 캠페인은 붙어 있질 않다. 그런데도 소변기 밖으로 튀어나가는 소변량을 단번에 80%나 줄이는 '쾌거'를 이뤘다. 특이점은 딱 하나. 남성들이 볼일 보는 소변기마다 중앙 부분에 파리 한 마리가 그려져 있다. 그런데 어떻게?

    egkim

    #2. 미국 미네소타주는 납세자를 네 그룹으로 나눈 뒤 각각 이런 안내문을 보냈다. 이 네 가지 중에 가장 효과를 발휘한 것은?

    ①여러분이 내는 세금은 교육, 치안, 화재 예방 같은 좋은 일에 쓰입니다.

    ②조세 정책을 따르지 않으면 처벌을 받게 됩니다.

    ③세금 용지 작성법에 대해 이렇게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④이미 미네소타 주민의 90% 이상이 납세의무를 이행했습니다.

    기존 경제학에서 말하는 대로 인간이 완벽하게 '합리적 동물'이라면 이런 질문도 필요 없다. 누군가의 개입 없이도, 가장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행동을 할 것이기 때문. 하지만 현실의 인간은 딴판이다.

    #1의 경우, 별 생각 없이 화장실에 볼일 보러 들어온 남성들이 시쳇말로 파리 한 마리에 '낚였다'. 소변기의 파리 그림을 발견하고는 그곳을 조준, '집중 발사'를 하는 바람에 소변이 밖으로 튀질 않아 화장실이 청결을 유지하게 된 것이다.

    #2의 답은? ④번이다. "남들 다 냈다는데, 나만 세금 안 냈다니…" 하는 불안감을 자극한 문구가 가장 높은 자진 납세를 이끌어냈다. '집단 동조 심리'가 인간의 기본 속성이라는 데 착안한 접근법이다. 그저 참신한 아이디어 정도로 웃어넘길 수 있는 이런 사례들을, 행동경제학자 탈러 교수는 '넛지'로 개념화해냈다.

    책 〈넛지〉에는 대조적인 두 유형의 인간, '이콘'과 '인간(휴먼)'이 등장한다. '이콘'이란 '극히 합리적이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경제적 인간', 즉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의 줄임말이다. 기존의 경제학은 이콘을 전제로 논리의 뼈대를 세워나간다.

    하지만 현실 속에 사는 인간(휴먼)은 허점투성이다. "살 빼야지" 하면서도 마구 먹고는 숟가락 놓자마자 후회하고, 날로 늘어나는 뱃살에 "운동해야지" 하면서도 하루하루 미루다 한달 가고 1년 가고, "저금해야지" 하면서도 멋진 옷, 멋진 차에 눈이 팔려 예금 잔고를 바닥내고야 만다.

    탈러 교수가 바라보는 것은 바로 이 허점투성이의 인간이다. 이런 속성상 도처에 널린 선택 설계자(choice architect)에 의해 인간의 행동은 좌우되며, 따라서 더 나은 삶을 유도하기 위해 슬쩍 옆구리를 찔러주는 정도의 악의 없이 가벼운 개입, 즉 '넛지'가 필요하다는 '자유주의적 개입주의' 논리를 펼친다.

    ■우리는 매일 '넛지'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정통 경제학의 가설을 비판하는, 행동 경제학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언제부터인가요?

    "대학원 시절부터였어요. 나는 종종 저녁 식사에 손님을 초대하면서 와인과 함께 즐길 만한 안주로 캐슈너트라는 열매를 그릇에 담아서 내놓아요. 식사 전에 캐슈너트를 다 먹어버려 밥맛이 없을까봐 캐슈너트 그릇을 치워버리면 '이콘'에 가깝다고 여겨지는 경제학자 손님들조차 저더러 '고맙다'고 해요. 경제학에서 가정하는 '합리적 인간'과는 달리, 현실의 인간은 얼마나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가를 보여주는 사례지요. 노벨상을 받은 허버트 사이먼 교수는 기존에 경제학과 관련된 가정이 너무 비현실적이라 행동에 관련된 새로운 경제학이 필요하다고 말했었지요."

    ―교수님 스스로는 어떤가요? 이콘과 인간, 어느 쪽에 더 가까우세요?

    "뭐, 경제학 할 때나 이콘처럼 생각 하겠지만, 먹고 마시고 행동하는 건 인간이지요. 언젠가 파리 갔을 때 지하철을 탔는데, 지하철 승차권의 한쪽에만 마그네틱 처리가 되어있었어요. 검표기에서 마그네틱이 위로 가게 했더니 잘 되더군요. 그 다음부터는 파리 갈 때마다 쭉 그렇게 지하철을 탔어요. 한데 알고보니 그 승차권은 어느 쪽으로 넣어도 상관 없었어요. 이콘은 경제학 교과서에나 나오는 상상 속의 생명체입니다. 매우 똑똑해 MBS(주택저당증권)를 보고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기회는 절대 놓치지 않고, 항상 자기 이익(self interest)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움직이지요. 하지만 인간은 어떤 MBS가 위험한지 아닌지도 잘 모르고, 집중도 제대로 못하는 제한된 합리성을 갖고 있어요. 또 이콘보다 훨씬 착하지요."

    ―인간이 불완전하다고 해서, 아무리 사소하다고는 해도 누군가의 개입이 정당화될 수는 없지 않나요?

    "하지만 우리는 매일매일 넛지에 둘러싸여 살아요. 가령 학교 식당에서 음식을 어떤 식으로 배열하는가도 학생들의 음식 선택에 영향을 미치지요. 몸에 좋은 과일을 좀더 눈에 띄는 곳에 두고 살찌는 단 음식을 뒤로 둘 수도 있고, 반대로 살찌는 음식을 앞에 놓을 수도 있고, 그냥 음식을 무작위로 놓는 방법도 있겠지요. 이 가운데 학생들의 건강을 돕는 넛지가 가능한 것이지요.

    만약 당신이 심각한 병에 걸려 의사가 수술을 권한다고 상상해 보세요. 의사가 '이 수술 받은 사람 100명 중에 90명이 5년 후에도 살아 있다'고 한다면 아마 수술 받았을 겁니다. 하지만 '수술을 받은 사람 100명 중에 10명이 5년 내로 죽었다'는 말을 들었다면요? 그 말 듣고도 수술했을까요?

    식당에 음식을 놓는 사람, 수술을 권하는 의사, 정책을 결정하는 대통령 모두 '선택 설계'를 구현하는 '선택 설계자(choice architect)'에 해당됩니다. 건축가가 설계하는 대로 사무실도, 방도, 화장실도 만들어지듯이 선택 설계란 피할 수가 없어요."

    ■인간은 누구나 '귀차니스트', 그래서 초기 설정이 중요하다

    보통 경영 서적이나 처세서를 읽으면 주눅들 때가 많다. 보다 완벽에 가깝게 설정된 사람을 모델로, 자신을 철저히 바꾸라는 주문을 해대기 때문이다. 하지만 〈넛지〉를 읽었을 때는 그 반대였다. 너무 귀찮아 손해 보는 것도 감수하는 인간, 남들 가는 대로 우르르 틀린 답을 좇아가는 인간이 지극히 정상이다. 오히려 그런 속성을 감안해 제도를 만들라고 제안한다.

    "TV에서 보던 프로그램이 끝나도 귀찮아서 그냥 같은 채널의 다음 프로그램을 계속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현상유지 심리 때문에 어떤 제도에 어떻게 '디폴트 옵션(default·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그냥 자동적으로 적용되는 선택조건)'을 설정하느냐가 사실 무척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디폴트 옵션을 바꾸어 정책 효과를 높인 사례가 있나요?

    "미국은 401(k) 같은 연금제도가 있습니다. 세금 공제도 되고, 많은 경우 기업주들이 근로자 기여분만큼 돈을 지원하는 등 근로자들에게 유리한 제도인데도 자격 요건을 갖춘 사람들 중에 30%가 등록을 하지 않았어요. 이럴 경우, 디폴트 규칙을 바꾸는 것도 '넛지'입니다. 그전까지는 신청서를 내야만 가입이 되기 때문에 가입하지 않는 것이 디폴트였습니다. 하지만 자동 가입 방식을 도입해 굳이 가입하지 않겠다는 서류를 내지 않는 한 자격이 되는 사람은 무조건 가입되는 디폴트 규칙을 세워 가입률을 높였죠."

    탈러 교수는 비슷한 예로 장기(臟器) 기증률을 높이기 위한 디폴트 규정에 대해서도 책에서 소개한 적이 있다. 탈러 교수는 "이번에 한국에 오기 전에 호주를 방문해 케빈 러드 총리를 만났는데, 장기 기증을 받은 경험을 가진 러드 총리가 '넛지'를 감안한 장기 기증 제도에 많은 관심을 나타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모든 경우에 정부가 일일이 넛지 정책을 만들어내야 하나요? 어떨 때 넛지가 더 필요한가요?

    "가령 이게 맛있는 사과인지, 맛없는 사과인지는 먹어보면 누구나 알 수 있어요. 굳이 넛지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복잡한 조건의 펀드 상품에 투자할 때는 좋은 사과인지, 썩은 사과인지처럼 한눈에 구별해낼 수가 없어요. 이처럼 어렵고 복잡하며 발생 빈도가 낮은 결정에 대해, 그리고 적절한 피드백이 금방 제공되지 않아 학습 기회도 없을 때 넛지가 필요합니다. 가령 복잡한 모기지의 경우, 전문 지식을 갖춘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넛지를 하는 것이 필요하지요."

    ■경제 위기는 인간의 취약성 때문에 초래된 것

    질문을 글로벌 금융위기로 돌렸다.

    ―기존의 주류 경제학은 '인간은 합리적이고 시장은 효율적'이라는 가정 위에 출발합니다. 하지만, 가장 합리적 집단으로 여겨지던 미국 월가에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됐다는 건 기존 경제학의 실패를 뜻하는 것인가요?

    "기존 경제학의 실패를 꼬집는 글은 많았어요. 하지만 경제학자 입장에서 '나는 옳고 당신은 틀렸다'는 식으로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다만 이번 위기로 시장 체제가 잘 작동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더 이상 힘들게 됐지요. 돌이켜 보면 매 10년마다 위기가 왔습니다. 일본의 거품 붕괴, 1987년의 증시 대폭락, 1997년의 아시아 금융위기, 닷컴 버블, 현재의 글로벌 금융위기…. 모든 경제 주체가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면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없겠지요.

    그린스펀도 지난해 11월 '내가 인간이지 이콘은 아니라서 두가지 실수를 했다'고 말했어요. 첫째는 지나치게 은행을 믿었다는 것. 둘째는 MBS와 같은 파생상품을 구입하는 사람들이 '공짜 점심'을 얻고 있는 것으로 알았는데, 공짜 점심은 없었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행동경제학자의 관점에서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을 어떻게 진단하나요.

    "두 가지 중요한 요인이 있어요. 첫째는 세계가 극도로 복잡해졌다는 점입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모기지가 그렇게 복잡하지 않았어요. 30년 만기에, 고정금리로 대출조건이 간단했지요. 그런데 모기지가 너무 많고 복잡해져서 티저 금리(대출의 첫 1~2년간만 적용되는 낮은 금리) 같은 것도 생기고, 모기지 브로커가 등장해서 재대출해주는 것도 생기고…. 그러니 인간들이 이것을 처리하는 데 더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이지요.

    둘째는 고도로 전문화된 금융의 문제점이에요. 대출의 증권화 기법 등이 발달하면서, 금융회사들도 이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지요. 물론 세계화 덕분에 한국과 같은 나라의 번영도 가능해졌고, 나 역시 세계화에 반대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번 위기를 계기로 세계화의 다운사이징이 불가피하다고 봅니다. 위기의 발단은 미국의 부동산대출에서 시작했지만, 저 멀리 아이슬란드 경제까지 망가졌지요. 불과 20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지요."

    ―각국에서 위기 재발을 위한 금융부문의 규제 개선책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습니다. 어떤 방향으로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할까요.

    "더 나은 공시(公示)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충분한 공시가 이뤄져 대형 금융회사들이 지나친 시스템적 리스크를 떠안고 있지나 않은지, 레버리지(대출)가 얼마나 되는지 등을 투명하게 공개해서 회사 경영진조차 리스크(위험) 정도를 모르는 상황이 되풀이되도록 해서는 안됩니다. 또한 지나치게 많은 임금과 보너스 등 보상 체계를 규제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는데, 제 생각엔 보상 금액의 수준을 규제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대신 보상 구조를 바꾸는 것이 필요해요. 가령 지금은 회사가 오르막길을 달릴 때는 엄청난 보너스를 챙겨가면서, 회사가 내리막길을 달려도 그걸 도로 토해내는 구조는 아닙니다. 그래서 CEO나 금융인들이 엄청난 리스크도 감수하려는 심리가 생기게 되지요. 따라서 위쪽, 아래쪽 다 책임지게 만드는 구조를 만들면 너무 많은 리스크도 감수하려는 심리를 제어할 수 있지요."

    오바마 대통령이 넛지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공동 저자인 캐스 선스타인 교수가 오바마 행정부에 합류했지요? 그렇다면 넛지를 반영한 정책이 더 많이 이뤄지겠네요.

    "캐스는 오바마 대통령이 과거 시카고 대학의 법학대학원에서 강의하던 시절부터 친하게 지낸 오랜 친구 사이입니다. 백악관에서 규제 관련 일을 하게 됐는데 미국 언론에서는 그를 '규제의 차르(전제군주)'라고 부르지만, 나는 그를 '넛지 사령관'이라고 부르지요. 자유방임에 가까운 부시 전 대통령 시절에 비하면 분명히 규제가 많아지는 것은 맞지만, 캐스의 접근법이 그리 심한 규제를 주장하는 건 아닙니다."

    ―왜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 많은 정책 결정자들이 그토록 '넛지'에 관심을 갖나요?

    "넛지는 적은 비용으로 효과를 내는 정책인데 왜 마다하겠어요? 위기의 재발을 막으려면 이젠 이콘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정책을 만들어야 해요. 캐스와 오바마 대통령, 벤 버냉키, 래리 서머스 모두 한 단어를 공유합니다. 바로 '실용주의'지요. 오바마 대통령은 결코 이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효율성을 추구합니다. 벤 버냉키 FRB 의장을 재임용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어요. 버냉키 역시 탈정치적인 인물이지요.

    우리는 이 책을 쓸 때 좌도, 우도 아닌 중도의 공공 정책을 추구했습니다. 이 책에 관심을 가진 이명박 대통령은 보수파, 데이비드 카메론도 보수파지요. 오바마는 민주당입니다. 좌우를 떠나 정책 결정자들이 이 책이 유용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지요. 심지어 중국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어요."

    ―오바마 대통령을 처음 만나게 된 건 언제인가요?

    "5년 전,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에 출마한 후보 시절에요. 우리 아파트에 사는 이웃이 오바마를 위한 기금 모금자였어요. 그 때만 해도 오바마는 3위의 무명 후보였어요. 듣도 보도 못한 사람이었는데, 그를 처음 보고는 그 총명함과 카리스마에 큰 인상을 받았어요."

    ―대통령선거 기간에 오바마 진영을 도우셨지요?

    "오바마 캠프의 경제 참모를 맡은 경제학자 오스턴 굴스비(Goolsbee) 교수에게 이런저런 자문을 했어요. 양당 모두 투표 독려 전화를 하면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는데, 우리는 특히 심리학적 측면을 고려한 조언을 했지요. 유권자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서도 투표율과 지지율이 달라지거든요."

    ―영국 언론들은 교수님을 '데이비드 카메론(영국 보수당 당수)의 구루'라고 부르더군요. 언제, 어떻게 그를 만났고, 넛지가 영국 보수당의 어떤 정책에 반영이 됐나요?

    "카메론 당수가 내게 직접 전화를 걸어 '교수님, 이런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하고 직통 전화를 주고받는 사이는 아니고요. 처음에 카메론 당수의 스태프에게서 연락이 왔고, 지난 3월 영국에 갔을 때 만나게 됐어요. 차기 총선에서 영국 보수당이 승리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렇다면 '넛지'를 응용한 정책들이 반영되겠지요."

    ―정부 개입보다는 시장 기능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의 본산 시카고대학에서 부드럽다고는 하지만 개입주의 아이디어가 나온 건 좀 의외입니다.

    "시카고대학이라고는 하지만, 우리 부스경영대학원은 훨씬 자유롭고 다양한 사고를 하거든요."

    ―법학을 전공한 캐스 선스타인 교수와 함께 책을 쓰셨지요. 〈넛지〉는 법학과 경제학의 공동 작업을 의미하나요?

    "캐스와 나는 시카고대학의 오랜 동료예요. 서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책 쓰자는 데 의견을 모았어요. 캐스는 행동경제학을 공공 정책이나 법에 적용하는 데 관심이 무척 많아요. 우리가 책을 쓸 때의 목표는 크게 두 가지였어요. 첫째는 행동 경제학의 아이디어를 좀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세계 문제에 적용해 보려고 했어요. 두번째 목표는, 공공정책과 관련된 철학을 만들 때 왼쪽도, 오른쪽도 아닌 중간에 있는 철학을 만들자는 것이었지요. 정부가 너무 강해지면 어떤 위험이 있는지를 우리 모두 알고 있어요. 민주주의를 좋아하는 이유는, 정부의 힘이 제한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효율적인 민주주의이고, 이 책의 목적도 바로 강압적이지 않으면서도 부드럽고 효율적인 정부를 만들자는 데 있습니다."

    ―공저인데 그럼 두 분이 어떻게 단락을 나눠 쓰신 건가요?

    "우리는 완벽하게 한목소리를 내길 원했어요. 서로 탁구 치듯 한 사람이 원고를 써서 보내면 다른 사람이 고치고, 그걸 다시 보내오면 또 고치고, 이런 식으로 한 챕터마다 20번씩 고쳐썼어요."

    ■행동경제학은 세 사람의 만남에서 비롯됐다

    ―교수님이 개척자적인 역할을 한 행동경제학 얘기로 넘어가겠습니다. 심리학자로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카너먼 교수는 자신의 학문적 업적에 대해 탈러 교수님의 공헌을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어떤 계기로 그런 학문적 '융합'이 일어난 것인가요?

    "1977년~1978년에 스탠퍼드대에 가 있었어요. 그 때 카너먼 교수와 그의 오랜 동료인 트버스키 교수도 와 있었는데, 우리 셋이 잘 어울렸어요. 나는 그분들에게 경제학을 가르쳐 주었고, 그분들은 내게 심리학을 가르쳐 주었어요. 그렇게 경제학과 심리학이 만나 행동경제학이 시작된 것입니다."

    ―행동경제학은 이제 30년 정도의 짧은 역사를 가진 신생 분야입니다. 기존 경제학의 가정에 비판을 가한 행동경제학이 앞으로 기존 경제학을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네 그리고 아니오. 둘 다요. (웃음) 앞으로 기존 경제학에서도 행동경제학을 점점 더 많이 필요로 하게 될 것입니다. 아직도 신생 분야여서 개척할 분야가 많아요. 역사가 30년밖에 안되는데 계속 발전하고 있어요. 카너먼 교수와 함께 1994년엔가 행동경제학 서머스쿨을 만든 적이 있어요. 2년에 한 번 열리는데 이제 새로운 젊은 세대가 형성됐어요. 그렇다고 우리가 주류 경제학을 파괴하려는 건 아닙니다."

    ―책에서 시종 '좋은 의도의 부드러운 개입'을 강조하지만, 반드시 좋은 넛지만이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가령 인터넷 공간에서 공개적으로 많은 사람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가하려는 넛지를 시도합니다. 잘못된 정보나 소문이 순식간에 퍼져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그로 인해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지 않나요. 그런 나쁜 넛지를 어떻게 최소화할 수 있나요?

    "음, 물론 나쁜 넛지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겠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폐쇄된 사회에서의 사회 검열보다는 비용이 적게 든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은 '넛지'의 성공 사례로 탈러 교수가 늘 첫손가락에 꼽는 암스테르담 스키폴공항 남자 화장실의 파리 그림으로 되돌아갔다.

    ―그런데 처음 파리 그림을 봤을 때는 파리를 정조준하려던 사람들이, 그게 누군가의 의도가 개입된 '넛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다른 심리가 작용하지 않을까요? 인간의 자유 의지를 갈망한다면, 일부러 엉뚱한 곳에 일을 본다든가 해서 '넛지' 효과를 반감시킬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이 질문에 탈러 교수는 깔깔 웃더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파리 그림이 효과를 내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책을 펴 사진 한 장을 가리켰다.

    "넛지를 알린다고 해서 넛지 효과가 떨어진다고 생각지는 않아요. 이 길을 보세요. 시카고의 동쪽 경계선인 미시건 호수를 끼고 펼쳐진 도로인데, 경치는 아름답지만 S자 커브가 계속 있어 위험해요. 시카고 시 당국은 최근에 감속(減速)을 유도하기 위해 커브 구간에 마치 간격이 좁아지는 것처럼 하얀 선을 표시했어요. 나는 매일 이 길로 운전하는데, 넛지라는 걸 알지만 저절로 속력을 줄이게 되거든요.

    파리 그림? 넛지인 걸 알고 일부러 파리 그림을 피해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마도 새로운 목표를 세우지 않을까요? 파리를 더 열심히 맞혀 아예 파리 그림을 싹 지워버리겠다고 작정하고 더더욱 정조준할 것도 같은데…."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