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외국인 모욕' 첫 기소, 부끄러운 편견 바로잡는 계기돼야

조선일보
입력 2009.09.06 23:18

검찰이 최근 인종차별적인 말로 외국인을 모욕한 31세 박모씨에게 형법상 모욕죄를 적용해 약식기소했다. 박씨는 두달 전 경기도 부천의 시내버스 안에서 국내 한 대학 연구교수로 와 있는 28세 인도인 보노짓 후세인씨에게 "냄새나. 더러워. 너 아랍인이지"라고 여러 차례 모욕을 준 혐의를 받고 있다. 박씨는 후세인씨와 동행한 한국 여성에게도 "새까만 ××와 같이 있으니 좋으냐. 조선× 맞느냐"는 말까지 했다. 참다못한 후세인씨는 박씨를 경찰에 신고하고 고소했다.

이 사건은 외국인에 대한 인종차별 언행에 모욕죄를 적용해 기소한 첫 사례다. 미국·영국·독일 등은 인종차별 규제법을 따로 두고 있지만 우리는 그런 법이 없다. 지난 정권에서 법무부가 차별금지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논란 끝에 통과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사례는 기존 형법으로도 인종차별 행위를 처벌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형법 311조 모욕죄 처벌대상은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자'로 내국인이나 외국인의 차별을 두지 않고 있다.

후세인씨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리 사회 안에 인종차별적 고정관념이 얼마나 깊게 박혀있는지 실감하고 부끄러움과 놀라움을 느끼게 된다. 그는 "인종차별을 셀 수 없이 당했다. 버스에서 졸다 종점까지 갔는데 운전사가 발로 툭툭 차면서 내리라고 하더라. 내가 백인이었다면 그랬겠느냐"고 했다. 그는 "경제적으로 못사는 사람들에 대한 한국인의 우월감의 발로"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우리 사회에 백인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친절하면서도 유색 인종은 무시하고 차별하는 이중적 편견이 뿌리깊다. 에티오피아 출신 여교수는 작년 8월 KBS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해 "한국 어느 회사에 이력서를 냈다가 '흑인이야? 흑인은 안 돼'라고 해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이주 여성 15만명이 낳은 2세가 10만7700명에 이르지만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들이 많다.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2007년 "한국 사회가 외국인과 혼혈인이 크게 늘어나 다민족 사회가 된 만큼 교육·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내 체류 외국인이 이미 110만명을 넘어섰다. 2050년엔 국내 거주자 10명 중 한 명이 귀화인이나 외국인이 되리라고 한다. 그러나 사람들의 의식은 그런 사회 변화를 담지 못하고 크게 뒤처져 있다. 인종 편견과 차별이 이대로인 상태에서 다민족화가 진행되면 차별받는 소수 외국인들의 불만이 폭발할 수도 있다.

생김새나 피부색이 다르다고 차별하고 모욕하는 행위는 실정법(實定法) 위반 이전에 부끄럽고 야만적인 행동이라는 의식이 확고하게 자리 잡아야 한다. 인종차별의 무의식적 바탕이 돼온 '단일민족' 개념도 다시 생각해볼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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