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1호] 첫 인공위성 '우리별' 개발자 박성동씨

조선일보
  • 조호진 기자
    입력 2009.08.31 23:09 | 수정 2009.09.24 12:06

    민간 인공위성 제작업체를 창업한 박성동(43·쎄트렉아이 대표)씨
    민간 인공위성 제작업체를 창업한 박성동(43·쎄트렉아이 대표)씨. 그는 한국에서 인공위성과 관련된 최초 기록을 갖고 있다. KAIST 인공위성센터 연구원 시절인 1992년 8월 11일 한국 최초의 위성 '우리별' 1호를 제작, 우주에 태극마크를 심는 데 성공한 주인공이다. 당시 26세였다.

    그는 KAIST 4학년이었던 1989년에 영국 서리(Surrey) 대학으로 '인공위성 제작 유학생'을 뽑는다는 공고에 지원하면서 한국 최초의 인공위성 제작자가 됐다. 대학원생이 2년여 만에 국가 첫 인공위성을 제작해 귀국한다는 것이 지금 보면 무모한 발상이었지만 그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박성동은 "나뿐 아니라 같이 떠났던 4명도 우리의 미래를 두고 복잡한 계산을 하지 않았다"며 "당시만 해도 사회 분위기가 도전을 격려하는 시기였다"고 말했다. 박성동·장현석·최경일·김형신·김성헌 연구원은 서리 대학에서 우리별 1호를 제작, 우주에 안착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는 이어 우리별 2, 3호의 개발에 연거푸 성공했다. 우주과학 영재들은 대한민국을 인공위성 개발 국가로 세계에 알렸다.

    그러나 1999년 박성동은 기쁨과 좌절을 동시에 맛봤다. 우리별 3호 개발에 성공했지만 몸담고 있던 KAIST 인공위성센터가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의 통합 논의로 어수선했다. 통합은 불발에 그쳤지만, 박성동을 비롯한 고참 연구원들이 그 여파로 인공위성센터를 떠나야 했다. 박성동은 수능 시험을 다시 치르고 의사로 직업을 바꾸는 것까지 생각했다. 그는 "위성 제작 기술이 내 것이 아니라 국가 소유라는 생각이 들어 관련 일을 계속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위성 제작을 지속하려면 창업 말고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 국내의 좁은 시장을 생각하면 고객은 국제 사회다. 하지만 우주 후진국인 한국이 대당 200억원에 달하는 인공위성을 만들어 팔겠다는 것은 영국 유학을 떠났던 때보다 더 무모한 도전이었다.

    박성동은 "중·소형 인공위성만큼은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를 비롯한 우리별 개발진은 국내 최초의 민간 인공위성 제작 회사인 '쎄트렉아이'를 설립했다. 2001년에는 말레이시아가, 2006년에는 두바이에서 인공위성 제작을 이 회사에 맡겼다. 지난 7월에는 말레이시아의 '라작샛(RazakSAT)'과 두바이의 '두바이샛(DubaiSat-1)' 모두를 무사히 우주에 안착시켰다. 한국에 인공위성 수출시대가 열린 것이다.

    올해 한국은 최초의 우주발사체 나로호를 발사했다. 비록 불발에 그쳤지만 박성동을 비롯한 어린 영재들을 유학 보냈던 지난 1989년에 이어 20년 만에 대한민국이 우주개발의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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