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원평가제 '외통수'에 걸린 전교조의 선택이 주목받고 있다. 한국교총의 '교원평가제 무조건 수용' 선언으로 선수를 빼앗긴 전교조 평조합원들 사이에서 "교원평가제를 막지 못할 바에야 찬성해서 명분이라도 찾자"는 '수용론'이 물밑에서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올 하반기 국회에서 교원평가 법안이 통과할 가능성이 큰 데다 학부모와 국민 여론이 압도적으로 지지하고 있어 전교조로서도 결국은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게 일반적 분석이다. 그래서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는 욕만 먹고 교원평가는 시행된다"는 위기감이 전교조 평조합원들 사이에서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29일 홍익대 조치원캠퍼스에서 열리는 전교조 임시 대의원대회가 주목받고 있다. 대회를 앞두고 본지가 조합원 10명을 상대로 전화 취재한 결과, 대부분 교원평가제를 수용하는 게 낫다는 반응을 보였다.

경기도의 조합원 A씨는 "지난주 같은 지회 조합원 몇몇과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교원평가제 얘기가 화두였다"며 "다들 '학생·학부모가 참여하는 평가라면 우리가 유리하다. 어차피 시행될 거라면 정면 돌파하자'고 했다"고 전했다.

전남지역 16년 차 고교 교사 B씨는 "평가를 거부하는 교사란 이미지가 너무 부담스럽다"며 "(지도부가) 교원평가의 큰 흐름에서는 찬성하고 구체적인 룰에 대한 투쟁을 별도로 가져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 같은 평조합원들의 수용론이 29일 대의원대회에서 공식 논의되기는 힘들 전망이다. 복수의 전교조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대의원대회의 의제는 교원평가제가 아니라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 과정에서 '조직적 은폐에 가담했다'는 의혹을 받았던 전·현직 간부 3명에 대한 제명을 취소한 재심(再審)위원회의 정당성 여부다.

서울지역 고교 교사 C씨는 "이번 임시대의원대회에서 강경파 조합원들이 '위원장 사퇴권고안'을 현장 발의 형식으로 상정할 것으로 보인다"며 "일부 평조합원들 사이에서 '교원평가제 수용론'을 상정하자는 얘기도 나왔지만 성폭력 이슈에 묻혀버렸다"고 전했다.

전교조 관계자들은 당분간 전교조 지도부가 '교원평가제 수용 여부'를 공론화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와 정면 대결을 벌이고 있는 지도부 입장에서는 '교원평가제 수용'을 논의 테이블에 올리는 게 투쟁력을 약화시킨다는 부담이 있다.

게다가 '수용론'을 논의 테이블에 올리기만 해도 강경파인 '교찾사'(교육노동운동의 전망을 찾는 사람들) 진영으로부터 '투항주의'라는 비판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 처리를 놓고 강경파로부터 지속적으로 비판받아온 현 지도부가 이중(二重) 비난을 감수하며 교원평가제 논의를 적극 추진하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상대적으로 교원평가에 열린 자세를 갖고 있다고 알려진 현 지도부가 교원평가에 대한 논의조차 시작하지 않는 것은 이처럼 "강경파 눈치를 보기 때문"이라고 본지 취재에 응한 전교조 교사 10명은 입을 모았다.

합법화 이전부터 전교조 소속이었다는 중견 교사 D씨는 "전교조에서는 '교원평가 수용'이란 말은 금기어(禁忌語)"라며 "조합 내부에선 토론조차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지역 전교조 교사 E씨는 "전교조 의사 결정에서 중요한 것은 조합원들 의견보다 내부 정치"라며 "교원평가제는 강경파가 강하게 반대하는 사안이라서 사석(私席)에서 '수용하자'고 하던 대의원도 회의 석상에서는 입을 닫는다"고 지적했다.

반면 강경파도 이번에는 별다른 카드가 없다는 분석도 있다. 강경파는 2006년 11월 '교원평가 저지 연가투쟁'을 주도했지만, 참여하는 조합원들이 많지 않았고 오히려 강경파 지도부가 선거에서 패배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당시 강경 투쟁으로 전교조 전체가 여론의 역풍을 맞은 것을 생각할 때, 또다시 강경 투쟁을 주장할 명분이 없다.

E 교사는 "교찾사(강경파) 내부에서도 '교원평가제를 수용하고 일제고사 반대 투쟁에 집중하자'는 의견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