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재(不在)는 민주당 등 야권이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구심점의 상실이다. 야권 관계자는 이를 '진공(眞空)상태'라고 했다.
김 전 대통령 이후 야권의 정통성을 누가 어떻게 계승할 것이냐를 두고 24일부터 탐색전이 시작됐다. 김 전 대통령을 대체할 절대 강자가 없기 때문에, 정통성 계승 경쟁은 더욱 치열할 전망이다.
◆누가 후계자인가
국장(國葬) 기간 중 상주를 자처했던 민주당은 이날 김 전 대통령의 유지(遺志)를 내세우며, 민주당 중심의 야권 통합을 강조했다. 정세균 대표는 "행동하는 양심이 돼라, 민주주의·서민경제·남북평화협력의 3대 위기를 민주당이 앞장서 극복해라, 모든 민주개혁진영이 통합하라는 것이 유지"라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 측근인 박지원 정책위의장도 "김 전 대통령은 일반병실로 옮긴 뒤 최후 말씀에서 '민주당은 정 대표 중심으로 단결하고, 야 4당 등과 단합해 민주주의·서민경제·남북문제 위기를 위해 승리하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야권 통합이 DJ 유지이고 그 중심은 민주당이 될 수밖에 없다는 취지였다.
민주당은 곧 당사(黨舍)에 DJ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을 함께 걸고, 오는 26일까지 자체 분향소를 유지하기로 했다. 정 대표 등 당 지도부는 25일 김 전 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전남 하의도를 방문할 계획이다.
앞서 무소속 정동영 의원은 이날 아침 6시 지지자 100여명과 함께 국립현충원을 찾아 김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했다. 정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을 대한민국 가치의 국부(國父)로 모셔야 한다"며 "저는 97년 김대중 후보, 2002년 노무현 후보에 이어 2007년 민주진영 대선 후보로 나섰다. 내 몸에는 민주당의 피가 짙게 흐르고 있다"고 말했다.
호남 출신인 정 대표와 정 의원이 후계자 여부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는 가운데, 장외에선 손학규 전 대표와 김근태 전 장관, 친노(親盧) 진영의 유시민 전 장관 등이 정통성 경쟁에 가세할 수 있다. 여권에 있을 때도 햇볕정책을 지지했던 손 전 대표는 2008년 1월 당 대표 땐 DJ로부터 "50년 정통야당의 계승자란 자부심을 가지라"는 말을 들었다. 김 전 장관은 재야(在野)와 민주화 투쟁의 상징성을 유지하고 있다.
◆누가 보다는 '어떻게'가 관건
야권에선 10월 재·보궐 선거가 정통성 논쟁에 변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민주당이 수도권에서 승리할 경우, 정 대표의 리더십이 공고해지고 장외의 야권 인사들도 민주당을 중심으로 지방선거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패배할 경우엔 야권은 물론 호남의 지역적 정통성을 놓고 정 대표, 정 의원, 친노 등이 '야권 통합'이라는 이름으로 또 한 번 격랑에 휩쓸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누가 후계자냐"는 문제보다 장기적으론 "어떤 내용으로 정통성을 인정받을 것이냐"가 중요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DJ가 상징했던 '민주화시대' 이후의 야권 좌표를 무슨 내용으로 설정하고 지지를 호소할 것인지가 본질이라는 지적이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이철희 수석애널리스트는 "야권은 설익은 후계자 논쟁보다는 DJ 이후 어떤 신상품을 내놓고 유권자의 마음을 살 수 있는지 궁리해야 한다"며 "야권의 새 비전으로 공감을 얻는 인물이 정통성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