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조선] 요지경 미인대회 新풍속도

입력 2009.08.18 14:39 | 수정 2009.08.22 14:02

왕관 쓸 때까지 무한도전 주소 옮겨가며 지방대회 돌기도
<이 기사는 주간조선 2069호에 게재되었습니다.>

대학생 김화연(가명·23)씨는 아침마다 30분씩 모델처럼 워킹을 한다. 거울 보면서 웃는 연습도 빼놓지 않는다. 스무 살 때부터 미인대회에 출전한 김씨는 미스코리아 대회만 세 번 나갔고, ‘○○아가씨 선발대회’까지 합치면 대회경력이 6회에 이른다. 하지만 그는 최근 출전한 미스코리아 대회에서 또 본선에 오르지 못했다. 그가 번번이 실패하면서도 미인대회를 위해 1년에 수백만원씩 투자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아나운서가 되고 싶은데, 미인대회 경력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도전한다는 것.

“저는 미용실에 등록비만 500만원 냈어요. 미인대회를 준비하는 학원은 따로 없고, 미용실에서 준비해요. 눈이랑 코는 원장님께서 추천한 곳에서 (성형)했고요. 저는 돈 많이 들인 것도 아니에요. 욕심 내면 끝도 없거든요. 대회 때 5만원짜리 귀고리 하고 나가는 사람도 있지만, 5000만원짜리 다이아몬드 하는 사람도 있어요. 쌍꺼풀만 하는 사람도 있지만, 전신 성형하는 애들도 있고요. 서울 예선 나갔다가 떨어지면 이듬해 다른 지역 예선 나가는 건 흔해요. 한 번에 입상하기 쉽지 않으니까 계속 도전하죠.”

5개월만 거주하면 지역대회 도전 가능

지난 7월 24일 2009 미스유니버시티 선발대회가 열렸다. 이날 지(智·1위)에 뽑힌 조은주(26·연세대 대학원)씨는 화제를 낳았다. 2006년 같은 대회에 출전해 ‘평화봉사상’을 수상한 데다가 2007년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서도 선(善·2위)으로 뽑혔고, 이듬해에는 미스월드 선발대회에서 베스트 드레서상까지 받았기 때문. 네티즌들은 “이미 미인대회에서 수상한 사람이 출전하는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비난했지만  주최 측은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2009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 출전한 미스 서울 선(善) 박시원(24·이화여대 대학원 경영학과)씨 역시 2007년 미스코리아 서울 지역예선에서 ‘미(美)’로 선발된 적이 있어 ‘미스코리아 재수생’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지난 2005년 미스코리아 서울 예선 당시 미에 입상했던 강예솔(23)씨는 다른 지역 타이틀을 달고 미스코리아 본선 무대를 두 번이나 밟은 경우. 강씨는 2005년 미스코리아 본선에서 입상하지 못하자 2년 뒤 미스코리아 충북 지역예선에 출전해 진으로 뽑혔다. 미스코리아 대회는 규정상 거주 기간 5개월만 채우면 어떤 지역대회라도 나갈 수 있고, 본선에서 입상하지 못할 경우 2년 후 재출전도 가능하다. 나이제한에만 걸리지 않는다면 지역을 바꿔 2년마다 출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인지도가 높은 미스코리아와 미스유니버시티 외에도 각종 지방 특산물 아가씨 선발대회를 포함하면 국내에서 열리는 미인대회는 100여개에 이른다. 미인대회에 재수, 삼수를 거쳐서 끊임없이 도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취업난 속에 특별한 스펙을 쌓고 싶은 욕심, 그리고 성형의 보편화와 관용으로 ‘왕관 다툼’이 치열해졌다는 게 관계자들의 말이다. 앞선 조은주·박시원·강예솔씨의 경우 수상을 했기 때문에 재출전한 사실이 알려졌지만 이는 극히 일부이다. 실제로는 예선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많아 재출전하더라도 얼굴이 알려지는 경우는 드물다. 

요즘엔 ‘전문직’ 커리어 쌓기 위해 나서는 추세

1957년 시작된 미스코리아 대회는 1972년부터 지상파로 중계되면서 위상이 높아졌고 이와 함께 연예계 등용문으로 인식됐다. 1987년 진 장윤정, 1989년 선 고현정, 1991년 선 염정아, 1994년 진 한성주 등이 이때 배출된 연예계 스타들이다.

2000년대에는 미와 지성을 겸비한 후보들이 대세다. 최근에는 연예계 진출보다는 전문직 여성으로서의 커리어를 쌓기 위해 미스코리아에 도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2002년 진 금나나는 하버드대에 진학했고 SBS 김주희·이윤아 아나운서, MBC 서현진 아나운서 등도 미스코리아 출신이다.

‘대학생 평화사절단’을 뽑는 미스유니버시티 대회는 KBS 조수빈 아나운서 때문에 유명세를 탔다. 현재 KBS 9시 뉴스 앵커를 맡고 있는 조 아나운서가 이 대회 출신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아나운서 지망생들의 관심이 높아진 것. 실제로 2009 미스유니버시티에 뽑힌 지(1위) 조은주, 체(3위) 이지현, 우정상 하나경씨 모두 ‘아나운서가 꿈’이라고 밝혔다.

2008년 미스유니버시티 대회에서 지에 뽑힌 김정은(24)씨는 “대회 현장에서 여러 미인대회를 순회하며 도전하는 ‘미인대회 재수생’들이 쉽게 눈에 띈다”면서도 “미인대회에 재수, 삼수 하는 것은 개인 선택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부에서 미인대회가 아나운서나 승무원과 같은 특정 직업을 위한 등용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자칫 본래 취지에 맞지 않는 대회로 인식될까봐 지수회(미스유니버시티 출신 모임)에서도 걱정의 목소리가 높다”고 했다.

자의적 심사 기준도 반복 출전 부추겨

미인대회 출신이 많다고 소문난 서울 강남의 S 미용실 관계자는 “미인대회 타이틀은 취직과 결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해외 유명 브랜드의 홍보팀 직원은 대부분 미인대회 출신”이라거나, “평범한 집안의 여성이 미인대회에서 입상하고 전문직 남성과 결혼해 서울 강남의 고급빌라에서 살고 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 관계자에게 “모든 사람이 그런 목적으로 미인대회에 출전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미인대회 출신이라는 명예 때문에 나가는 사람도 있지만 취업이나 결혼에서 미인대회 출신이라는 후광을 기대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부정확한 심사 기준도 미인대회 반복 출전을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검찰총장에 내정된 김준규 후보는 2009년 미스코리아 대전·충남지역 예선에 심사위원장으로 활동해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공무원인 검찰총장이 업무시간에 미인대회 심사를 했다는 비판과 함께 미(美)와는 전혀 관련 없는 법조인이 심사위원장으로 임명된 게 적합하냐는 지적이 나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내년 심사위원은 나의 진가를 알아볼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재도전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심사위원을 뽑는 기준이 모호하다 보니 미에 대한 판단 역시 신뢰하기 어려운 것이다.

2006 미스코리아 지역 예선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의사 김모(49)씨는 “미스코리아는 사기업에서 주최하는 미인대회에서 선발되는 것”이라며 “누가 심사위원이 되느냐는 전적으로 위촉하는 사람 마음 아니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김씨는 ‘한국을 대표하는 미인을 선발하는 기준이 지나치게 주관적’이라는 지적에 “당시(2006년) 심사에 참가한 녹원회(미스코리아 출신 모임) 소속 미스코리아도 ‘심사위원에 따라 보는 눈이 달라지기 때문에 해마다 선발 기준이 복불복’이라고 하더라”면서 “심사위원의 구성에 따라 운이 따를 수밖에 없다”고 문제점을 인정했다.

2000년대 초반 안티미스코리아대회를 이끌었던 21세기여성포럼 박옥희 공동대표는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사회적으로 미인대회를 부추긴 경향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재색을 겸비했다는 평가를 듣기 위해 스스로 외모를 ‘비즈니스’ 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여성 스스로 예쁜 얼굴, 멋진 몸매를 자랑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어졌다는 뜻이다. 박 대표는 “예쁜 것도 능력이라는 인식과 함께 성형이 보편화되면서 돈만 있으면 도전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라며 ‘미인대회 재수생’양산을 염려했다. 박 대표는 “미인대회 주최 측에서는 ‘아름다움’으로 국위선양을 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21세기 대한민국에 어울리지 않는 후진국 수준의 사고방식”이라고 지적했다.


‘미스코리아 사관학교’ 강남 S미용실 가보니

메이크업·헤어·스피치·워킹… “최소 2000만원 들고 와라”

‘S미용실’ 홈페이지에는 이곳에서 배출한 미스코리아 출신 L씨가 등장한다.

“아무래도 가슴은 (수술)해야겠다. 쌍꺼풀? 당연히 해야지. 안 하려고 했어?”

지난 8월 1일 오후 1시30분 서울 강남구 압구정역 근처의 붉은색 벽돌 건물. 검은색 양복을 입은 주차요원의 안내를 받아 로비에 들어서자 황금색 장식으로 꾸며진 실내가 눈에 들어온다. 수많은 미스코리아가 거쳐 갔고 특히 최근 3년 연속으로 미스코리아 진을 배출해 유명세를 탄 ‘S 미용실’이었다. 데스크를 지키는 여성에게 “미스코리아 상담 받으러 왔다”고 말하자, 컴퓨터와 의자가 놓여 있는 작은 방으로 안내했다. 잠시 뒤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통통한 체격의 여성이 “반갑습니다” 하며 ‘실장 ○○○’이라고 쓰인 명함을 내밀었다.

기자가 “미인대회에 나가고 싶어해 데리고 왔다”며 같이 온 동생을 소개했다. 실장은 웃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이름, 나이, 학교, 전공, 키와 몸무게를 차례대로 물었다. “무용에 자신이 있거나 잘하는 외국어가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그는 “요즘엔 외국어 한두 가지는 기본”이라면서 “전통무용이나 악기를 익히기보다는 현대무용이 빨리 배울 수 있다”고 팁을 줬다. 간단한 신상조회를 마친 그는 동생을 10초 정도 ‘뚫어져라’ 응시하더니 “가슴(수술)은 해야겠지? 어머, 쌍꺼풀은 안 하려고 했어? 대회 준비하려면 돈 많이 들어요”라면서 다시 빙긋 웃었다.

“결혼 준비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형편이 되는 신부는 욕심 내서 화장이나 마사지, 드레스에 엄청 돈을 들이잖아요. 미스코리아도 그렇죠. 300만원 들여서 나가는 사람도 있고, 3000만원 쓰는 사람도 있고…. 욕심을 얼마나 부리느냐에 따라 돈 드는 건 천차만별이에요.”

실장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준비 비용이 얼마나 드냐”고 묻자 “평균 2000만원”이라고 답했다. 준비 비용 ‘2000만원’은 메이크업·헤어 교육(200만원), 워킹(300만원), 예선 당일 디자이너가 일대일 관리를 해주는 비용(150만원), 스피치 교육(350만원), 대회에 나가기 전까지 받는 피부 마사지나 헤어 트리트먼트 비용(1000만원) 등으로 구성돼 있다. 기자가 당황한 표정을 짓자 실장은 “어떤 엄마들은 ‘S 미용실에서 미스코리아 되려면 2000만원 들고 오라고 했다’고 소문을 낸다”면서 “보통 2000만원이 든다는 거지, 자기 하기 나름 아니냐”고 반문했다.

기자가 “스피치나 워킹은 전문 강사가 와서 강의하느냐”고 묻자, 실장은 손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미인대회만큼은 우리가 전문가”라고 했다. 실장은 “미인대회에서 입상하고 싶은 사람이 아나운서에게 스피치 교육 받고, 모델한테 워킹 교육받는 건 말이 안 된다”면서 “수십 년 동안 익힌 노하우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직접 지도한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는 “추가로 성형이나 치아미백에 드는 비용, 장기자랑을 배우는 강습료는 뺀 금액”이라면서 “미용실에서 쓰는 돈 이외에는 우리도 알 수 없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저는 키가 작거나, 다리가 짧거나, 머리가 크면 미인대회 준비하지 말라고 해요. 고쳐서 되는 게 아니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돈 없으면 (미인대회 나가는 것) 말려요. 예쁜 애들 정말 많아요. 거기서 1등 하려면 수천만원 드는 게 사실이니까. 상담할 때 엄마랑 반드시 같이 오라고 하는 이유도 엄마가 돈이니까 그렇죠. 결혼자금 당겨서 달라고 하세요. 다 투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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