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피해 학생들 떠나고… 가해 교직원들은 남아

입력 2009.08.22 03:44 | 수정 2009.08.22 10:38

공지영 실화소설 '도가니'에서 조직적 성폭행 자행된 장애인학교는 지금…
가해자 6명 중 4명만 처벌그나마 2명은 집행유예재단·이사회도 그대로

장애인학교에서 교직원이 벌이는 어린이 성추행과 폭행을 고발한 공지영의 장편 '도가니'는 작가 특유의 흡인력 만점인 문체가 돋보인다.  본지 8월 17일자 보도

"유리, 진유리던가? 그 애는 교장, 행정실장, 생활지도교사에게 돌아가면서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다고 하네. 초등학교 때부터 말이야." (75쪽)

10대 정신지체 소녀를 교장실에서 성폭행하는 60대 교장, 1000원짜리 한 장을 쥐여주며 같은 처지의 농아인을 유린하는 청각장애인 보육교사….

부패 세력의 비호 아래 가해자들이 재판정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부분에 이르면 소설을 읽던 독자들은 한숨을 쉰다. 더 충격적인 건 작가가 말미에 밝혔듯 이 모든 게 '신문기사 한 줄'로부터 시작된 실제 사건이라는 점이다. 제목 '도가니'는 '광란(狂亂)의 도가니'를 줄인 말이다. 공지영은 울부짖는 여 주인공의 입을 빌려 "이 발정난 나라에서 계속 딸을 키우고 살아가야 하는 거냐"고 세상에 묻는다.

소설 ‘도가니’의 실제 무대였던 광주 인화학교. 2006년 공모를 통해 새로운 교장이 왔지만 마찰을 빚은 학생들이 교장에게 계란을 던져 고소를 당하는 등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았다. / 박국희 기자
이 소설은 포털 사이트에서 1100만회의 누적 조회수를 기록했다. 6월 30일 출간 이래 13일까지 5주 연속 베스트 셀러 1위에 올랐고 한 달 남짓 만에 20만부가 팔려나갔다. 그 소설의 배경인 '광란의 도가니'는 지금 어떻게 됐을까?

사건이 일어난 광주광역시의 '광주 인화학교'를 찾았다. 사회복지법인 '우석'이 운영하고 있는 청각장애인 학교다. '재활의 전당'이라고 쓰인 비석이 한가운데 서 있는 학교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조용했다. 여전히 같은 재단과 이사회 밑에서 학교는 운영되고 있다. 직원들조차 "차 없이는 돌아다니기 힘든 곳"이라고 할 정도로 학교는 시 외곽의 인적 드문 곳에 있었다. 주변에 있는 것이라곤 시립 정신병원이 전부였다. 건물 외부와 복도 곳곳에 설치된 10여개의 CCTV만이 눈에 띄었다.

병원 인부들은 "사건 이후 학생들이 다 나가 1∼2명만 태운 통학버스가 왔다갔다 하더라"고 했다. 기숙사 직원은 "나쁜 이야기를 굳이 꺼내 뭐하겠느냐"며 "소설은 안 읽어봤지만 얼마나 사실과 가까울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2005년 6월 내부 직원이 성폭력 사건을 고발할 때까지 학교는 '말 없는 학생'들로 고요했다. 당시 재단 이사장의 차남인 행정실장 김모(61)씨와 기숙사 '인화원'의 생활지도교사 이모(38)씨가 구속됐다.

이듬해 국가인권위원회의 직권조사 결과 가해자와 피해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앞서 구속됐던 2명을 포함해 재단 이사장의 장남인 교장 김모(63)씨 등 모두 6명의 교직원이 상습 성폭행과 추행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다.

정신지체 장애인이었던 A(18)양은 이들에게 12살 때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A양은 아버지가 청각장애 2급이고 어머니 역시 정신지체 1급의 장애인이라 도와줄 수도 없었다고 한다.

다른 농아 학생들 역시 부모가 없거나 있더라도 장애인인 경우가 많았다.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 무상으로 지원되는 학교 기숙사에서 방학 기간에도 살다시피 하다 교직원들의 성 노리개로 전락했다.

당시 인권위가 100여명의 농인 학생들을 전수조사하는 과정에서 충격적인 증언들이 나왔다. 한 직원은 "소설에 나온 부분은 내가 아는 내용의 3분의 1밖에 안 된다"며 "작가 역시 사회적 파장을 생각해 입에 담지 못할 내용 모두를 그대로 반영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조사가 시작되자 졸업생들의 증언이 있었고 퇴직 교사들의 추문까지 불거졌다. "한 번만 하자"며 청소시간마다 학생을 따라다니던 교사, 숙제를 해오지 않으면 "맞을래? 키스할래?"라고 물어보며 학생들 스스로가 "제발 때려달라"며 울먹이게 만든 교사,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통학버스와 강당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섹스를 한 불륜 교사 커플….

오래돼서 사건화되지도 않았고 소설에도 반영되지 않았지만 청각장애인 학생들이 저마다 공통적으로 증언했던 내용들이다. 어려운 문제를 가르쳐준다며 성추행하는 교사나 씻겨준다며 초등학교 여학생들을 샤워실로 유인하는 교사들은 약과였다. 성폭행 후 양 손목을 묶어놓은 채 다음날 학생들에게 발견되기까지 알몸 상태 그대로 내버려둔 사건도 있었다.

윤민자 인화학교 성폭력대책위원장은 "정말 소설 같은 이야기"라며 "교직원들은 말 못하는 장애 학생들을 인간 취급하지 않았다"고 했다. 한두 번 성폭력이 있은 후에도 별 탈이 없자 분위기가 해이해진 직원들이 조직적으로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그는 "퇴직자들까지 합하면 가해자가 10명이 넘었다"고 했다.

한때 300여명을 넘었던 학생 수는 지금 28명이다. 20년 넘게 근무했다는 행정실 직원은 "전국의 청각장애인 학교를 봐도 마찬가지지만 의학 발달로 인해 학생 숫자가 줄어드는 것이지 그 사건 때문에 학생들이 나간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주장했다.

친고죄의 고소기간이 지났고 피해자들이 처벌을 원치 않는 점 등을 들어 인권위가 고발한 6명의 가해자 중 4명만 처벌을 받았다. 나머지 교사 한 명과 행정실 직원은 여전히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다.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교장과 청각장애인인 기숙사 생활지도교사 등 2명은 지난해 7월 광주고법 항소심에서 모두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전과가 없고 피해자와 합의했다는 이유다. 피해자의 부모들은 "재판을 받으러 왔다갔다하기 귀찮다"거나 "가해자측과 합의를 했다"는 이유로 소송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남학생들까지 성추행했던 기숙사의 생활지도교사와 청각장애인 지도교사는 그 후 학교를 그만뒀다. 윤 위원장은 "이들은 직업을 찾지 못하고 광주 시내에 있는 것으로 안다"며 "성범죄 전과가 있는 이들이 비슷한 일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감시해야 한다"고 했다.

당시 교장은 올 7월 췌장암으로 숨졌다. 행정실장이었던 그의 동생은 만기출소 후 재배 산삼 등의 건강식품을 파는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 형제의 아버지인 재단 이사장은 2007년 숨졌다. 현재는 그의 사위이자 2005년까지 아랍에미리트 대사를 지냈던 강선용(64)씨가 이사장을 맡고 있다.

피해 학생 10여명은 졸업 후 결혼을 하거나 취업을 하면서 뿔뿔이 흩어졌지만 대부분 광주 시내에 있었다. 가장 피해 정도가 컸던 A양만 다른 지역 특수시설로 보내졌다. 지적장애와 언어장애를 가지고 있는 B(24)씨는 여전히 인화학교 기숙사에 머물고 있었다.

일러스트=정인성 기자 1008is@chosun.com
광주지역 18개 시민단체로 이루어진 대책위원회측은 "부모가 없기 때문에 인화원측이 동의해주지 않으면 B씨를 빼내오는 게 불가능하다"며 "구청이 직권으로 옮길 수도 있지만 유야무야 됐다"고 했다.

싸우는 데 지친 대책위원회측의 항의도 잦아들었고, 사건 이후 겉으로 보기에는 잘 돌아가는 인화학교에 무슨 문제가 있느냐는 것이 관공서의 입장이라는 것이다.

"아이들은 이제 그 학교에 다니지 않아… 연두네 집에 여자아이들 여섯 명의 기숙사를 꾸몄고 우리는 그것을 홀더라고 부르기로 했어."(289쪽)

소설 말미에 나오는 '홀더'는 광주시 서구에 실제로 있었다. 홀더는 '홀로 삶을 세우며 더불어 살아가자'는 뜻이다. 2006년 9월 대책위원들이 피해 학생들을 위해 작은 빌라에 마련한 공동생활 공간이다. 거실과 방마다 빨간 사이렌이 붙어 있는 게 특이했다. 듣지 못하는 학생들이 현관 벨소리를 볼 수 있게 해주는 장치였다.

2007년 1월에는 남학생 홀더도 생겼다. 현재 여학생 6명, 남학생 4명이 이곳에서 3년째 같이 살고 있다. 이들은 근처의 일반학교 특수학급에서 같이 공부하며 홀더에서 지도교사와 함께 방과 후 학습을 한다. 장애인탁구협회의 지원으로 구청에서 탁구를 배우기도 하고 캠프를 가거나 텃밭을 함께 가꾸기도 한다. 인화학교에서 제대로 하지 못했던 청능(聽能) 훈련도 시작했다.

초등학생 때 성폭력을 겪었던 학생들이나 친한 친구들이 어른들에게 무방비로 당하는 것을 직접 목격했던 아이들의 충격은 컸다. 김창호 수화통역사는 "충격 때문이었는지 사춘기 고교생이 된 지금 성에 과도한 집착을 보이거나 도벽(盜癖)까지 생긴 경우도 있어 꾸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했다. 그는 사건 당시 학생들의 수화 통역을 맡은 것을 계기로 남 홀더 전담교사를 맡고 있다.

피해 학생들 역시 소설책의 존재를 알고 있다. 하지만 자신들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온 것을 신기해하는 정도일 뿐 포털 사이트에 소설이 연재가 됐을 때도 대부분 읽지는 않았다고 했다. 단어 이해력이나 문장력이 떨어져서 소설책 읽기도 쉽지 않지만 누구 하나 묻기 전에는 그 일에 대해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는 28일에는 홀더 후원의 밤 행사가 열린다. 이들을 직접 인터뷰했던 공지영도 참석한다. 홀더 사무국장 김혜옥씨는 "소설이 인기가 있다 보니까 '책 내용이 정말 사실이냐'고 물어오는 등 후원의 밤 행사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주는 것 같다"고 했다.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지 4년이 지났지만 싸움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대책위는 당시 공소시효 문제로 기소되지 않고 여전히 학교에 다니고 있는 행정실 직원과 민사 소송을 벌이고 있다. 그는 학교 수련회에서 학생을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 4월 1심에서 30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고 현재는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윤민자 대책위원장은 "인화학교가 존재하는 한 대책위도 계속 있을 것"이라고 했다. 수화를 전혀 할 줄 몰랐던 그는 1년 만에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할 정도가 됐다.

학교는 조용하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도 이야기를 하지 않는 분위기다. 한 직원은 "즐겁게 뛰놀아야 할 교내에 학생들은 다 나가 정적이 감돌고 선생들만 기형적으로 남았다"며 "지금도 '광란의 도가니'였던 기숙사를 쳐다보면 그때 일이 생각나 소름이 끼친다"고 했다. "오히려 100% 소설에 까발려지지 않아서 아쉬워요. 그래야 장애 학생들에 대한 이런 일이 더이상 생기지 않을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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