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훈 칼럼] DJ 서거 다음 날의 나로호

조선일보
  • 논설위원
  • 양상훈
    입력 2009.08.18 22:59 | 수정 2009.08.19 02:35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애증은 우리 사회 갈등의 한 근원이다.
    오늘 나로호가 이 해묵은 갈등까지 싣고 날아갔으면 한다"

    논설위원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한 다음 날 한국 최초의 우주로켓 나로호(KSLV-1)가 발사되는 것이 우연으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최근 "대한민국 우주시대 개척의 정치적 결정은 김대중 대통령이 내렸다"고 회고했다. 김 의장은 김 전 대통령 임기 중이던 1999년 당시 야당 소속 국회 예결소위 위원장으로 관련 예산 통과를 주도했었다. 정부가 장차 수조~수십조원의 예산이 투입될 사업에 발을 들여놓는다는 결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김 전 대통령에게 우주 개발이 어느 정도의 우선 순위였는지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그가 나라의 미래를 바꿀 수도 있는 정치적 결정을 내린 것만은 명백한 사실이다.

    김 전 대통령이 우리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결정을 내린 것은 한둘이 아니다. 그 결정들 상당수가 찬성하는 세력과 반대하는 세력 사이에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이 돼 있다. 그러나 나로호 발사는 거의 모든 국민의 지지 속에 진행되고 있다. 지역과 계층에 관계없이 국민이 일치해 성원하는 미래형 국가 사업이 그의 재임 중 시작된 것이라고 기록해두고 싶은 것은 그 상징성 때문이다.

    김 전 대통령 서거로 한 시대가 막을 내렸다. 나로호 발사는 새 시대의 막이 오르고 있다는 한 징표다. 김 전 대통령은 식민지에서 태어났다. 성년이 되던 해 해방을 맞았고 해방 공간에선 좌·우 갈등을, 그 후엔 산업화 대 민주화의 갈등을 몸으로 겪었다. 그는 좌·우 갈등과 산업화·민주화 갈등의 한 상징과도 같았다. 민주주의와 자유시장 경제가 우리의 선택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우리 사회의 갈등은 아직 끝나지 않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로 한 시대가 넘어가는 지금, 우리도 이제는 싸우고 갈등하더라도 조금은 더 성숙해지고 점잖아지자는 자각(自覺)의 파도를 한번이라도 보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나로호가 여는 새 시대가 과학 차원을 넘는 상징성을 갖는 것은 세계적으로 우주 로켓은 국가 전략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들이 아직 초보 수준에 불과하고 그나마 핵심 기술은 전부 외국에 의존하고 있는 나로호를 주목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국가 전략이 하늘로 쏘아 올려지는 오늘, 남북 통일과 우리 사회 내부의 동서(東西) 통일이라는 우리 국가 전략의 핵심 과제를 생각해본다. 김 전 대통령에게 남북 통일은 필생의 사업이었지만, 그는 동시에 우리 내부 동서 갈등의 한 가운데에 있기도 했다. 그런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한 다음 날 남북 통일 문제와 관계가 없다고 할 수 없는 우주 로켓이 동·서 지역 구별 없는 모든 국민의 기대 속에 발사된다. 그 사실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설사 억지라고 해도 그만두고 싶지 않다.

    김 전 대통령 재임 중 우주 개발 사업이 시작됐을 때 첫 예산은 '단돈' 10억원이었다. 그것이 지금 8000억원의 나로호 사업으로 커졌고, 앞으로 진짜 한국 로켓을 발사할 때면 그 몇 배, 몇 십 배의 예산과 인원이 필요한 거대 사업이 된다. 남북 통일과 지역 갈등 해소를 위해서도 미약하지만 중요한 '시작'이 있어야 한다.

    우주 개발은 성공 가능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나로호 발사의 숨은 의미 중 하나는 우리가 가보지 않았던 길로 우리도 한번 가보기로 했다는 사실이다. 우리에겐 없던 DNA다. 우리에겐 생소하지만 강대국 국민들에겐 익숙한 이 DNA는 매사를 부정적으로 보고 지레 포기하는 습성과는 정반대 되는 특성을 갖고 있다.

    나로호를 두고서도 "그게 되겠느냐" "우리가 우주 개발은 무엇 하러 하느냐"는 목소리가 없지 않았다. 남북 통일과 지역 갈등 해소도 "그게 되겠느냐"면서 지금 이대로 그냥 머물러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나로호와 같은 시도를 해야만 한다. 그 시도의 내용이 다 최선일 수는 없다. 그러나 새로 시도한다는 자체에 대해서만은 나로호에 대한 성원과 같은 지지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새로운 시도는 시작도 못하고 좌초한다.

    10년 전 나로호의 첫 예산을 통과시킨 김 국회의장이 지금 우리 사회의 갈등 구조 해체를 위한 개헌을 추진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행정구역과 선거제도 개편을 제안했다. 이런 시도들이 최선의 방안인지는 자신할 수 없다. 그러나 가만히 손 놓고 앉아 있을 수는 없다. 그것이 김 전 대통령의 죽음이 우리에게 촉구하는 것이고, 나로호 발사가 알려주는 교훈이다.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애증은 우리 사회 갈등의 한 근원이다. 오늘 나로호가 이 해묵은 갈등까지 싣고 날아갔으면 한다. 나로호의 성공을 기원하고 또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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