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세미티 캠핑장의 새벽에 곰이 나타났다. 램프에 비친 두 눈이 파랗게 빛났다. '곰통(bear canister)'이라고 불리는 식량통을 노린 것이다. 혼비백산한 일행들이 곰 진압 스프레이를 꺼낸다.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곰은 어슬렁대며 제 소굴로 돌아간다. 오싹하는 공포 속에서 저자는 생각한다. '요세미티란 인디언 말로 곰이란 뜻이었지.'

2008년 7월 중순 세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가 18일간의 도보 여행에 나선다. 여행작가, 사진작가, 재미교포 백만장자, 여류 화가로 구성된 이 팀이 선택한 여행지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시에라네바다 산맥에 위치한 존 뮤어 트레일이다. 존 뮤어 트레일은 요세미티 계곡에서 미국 본토 최고봉인 휘트니봉에 이르는 358㎞의 산길로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 캐나다의 웨스트코스트 트레일과 더불어 세계 3대 트레일로 꼽힌다. 존 뮤어는 60만명을 회원으로 둔 환경단체 시에라 클럽을 만들고 초대 회장을 지낸 환경운동가다.

환경보호를 위해 하루에 입장객을 100명 이상 받지 않는다는 웅장한 대자연에 발을 디디게 된 영광을 누리게 된 기쁨도 잠깐. 작열하는 태양과 해발 3000m를 넘나드는데서 오는 고소증, 배고픔…. 여행작가인 저자는 마음의 평화를 찾아 떠나왔지만 쫓기듯 움직여야 하는 일정에 "산다는 건 자전거를 타는 것처럼 끊임없이 발을 놀려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별다른 굴곡 없이 이어지는 이 책의 이야기들 중 가장 돋보이는 것은 사진작가 이겸이 이 여행에 참가한 이유를 털어놓는 부분이다. 몇 년 전 촬영차 가족과 함께 미국에 왔다가 동승했던 친지 한 명이 숨질 만큼 큰 교통사고를 당했던 이겸은 "과속으로 달리던 내 인생이 속도를 못 이기고 넘어진 것인지도 모른다"면서 "넘어진 곳에서 다시 일어서고 싶어서 여행에 따라나섰다"고 말한다.

아름다운 자연을 찍은 사진들과 여행길에 만난 사람들의 인터뷰까지 맛볼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