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전 10시20분. 쌍용차 평택공장 조립2 최종라인에 쌍용차의 최고급차인 검은색 체어맨W 한 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노조의 점거농성으로 생산이 중단된 지 84일 만에, 농성이 끝난 뒤 라인 복구작업을 시작한 지 1주일 만에 나온 첫 차였다.

조립라인 직원들의 얼굴도 잔뜩 상기돼 있었다. 이날 생산 재개 1호차의 시험운행을 담당한 조립4팀 허남철씨는 "공장에서 다시 차를 만질 수 있게 된 것이 너무 고맙고 기쁘다"면서 "다시는 조업 중단 사태를 겪지 않도록, 온 정성을 다해 좋은 차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공장 재가동으로 희망을 살린 쌍용차 직원들은 떠난 동료에 대한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조립4팀 김태진씨는 "빨리 회사를 정상화시켜 떠난 동료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당초 77일간의 점거농성에 따른 시설 파손으로 정상가동에는 최소 2~3주가 걸릴 것으로 예상됐지만, 직원들은 단 1주일 만에 다시 차를 만들어냈다. 평택공장 본관은 유리창을 아직 교체하지 못해 1층부터 5층까지 수십 군데 구멍이 뚫려 있었지만, 차체·조립라인만큼은 전쟁과도 같았던 점거농성이 언제 있었는지 모를 만큼 말끔히 정리돼 있었다. 최상진 기획재무 담당 상무는 "점거농성이 끝난 직후부터 전 직원이 휴일 밤낮과 비가 쏟아 붓는 악천후를 가리지 않고 복구작업에 뛰어든 덕분"이라고 말했다. 쌍용차는 이번 위기를 잘 극복하면 생산성을 오히려 파업 이전보다 50% 이상 올릴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현수 생산총괄 부장은 "오늘은 74대를 생산했지만 20일부터는 하루 300대 수준으로 정상 가동될 것"이라며 "생산효율도 지속적으로 올려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달 말까지 3000여대, 다음 달부터는 월 4000~5000대를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13일 경기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박영태 공동법정관리인이 파업으로 생산이 중단된 지 84일 만에, 농성을 끝낸 지 7일 만에 나온 첫 차인‘체어맨W’에 입을 맞추고 있다.

쌍용차는 이날 조립·차체 라인을 공개하면서 개발 중인 신차 'C200'의 차체 부품 일부를 시험 생산하는 장면까지 보여줬다. 완성차 회사가 출시 이전인 차량의 차체를 보여주는 것은 보안상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회사 비전을 미리 알려 채권단과 소비자를 안심시키겠다는 뜻이다. 쌍용차가 언론에 공장 생산라인을 개방한 것은 체어맨을 선보였던 지난 1997년 이후 12년 만에 처음이다.

쌍용차 600여개 협력업체 모임인 협동회 소속 업체들도 12일부터 부품 공급을 전면 재개했다. 협력업체 채권단의 최병훈 대표는 "쌍용차 회생을 위해 협력사들이 기존 3000억원 매출채권과 신차개발 비용 2000억원 등 5000억원에 달하는 금전적 부담을 감내하고 있다"며 "회사가 빨리 정상화돼서 개발자금을 확보하지 않으면, 협력업체들이 수개월 내에 줄도산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평택공장 본관 뒤편에서는 임직원 3000여명과 협력업체·판매대리점 대표들이 모여 오전 8시30분부터 '새 출발을 다짐하는 임직원 조회'를 갖고 쌍용차 정상화의 의지를 다졌다. 이낙훈 쌍용차 대리점협의회 회장은 "이번 사태 해결이 헛되지 않도록, 발이 닳도록 고객을 찾아 한 대라도 더 팔겠다"고 말했다. 이날 조회에 참석한 '쌍아모(쌍용차를 사랑하는 아내들의 모임)' 이순열(47) 회장은 "쌍용차 안에서 직원들이 모두 모인 모습을 보니 감격스럽다"며 "직원 아내들끼리 지역별로 조를 짜 쌍용차 홍보에 나설 예정"이라고 말했다.

공장 앞 식당에도 그간 완전히 끊겼던 손님들의 발길이 점점 잦아지고 있다. 지난 두 달간 거의 손님이 없다시피 했던 한식당 '강촌'엔 최근 많을 땐 대여섯 테이블까지 손님이 찬다. 5년째 '강촌'을 운영하고 있는 배증수씨는 "노사가 극적으로 협상 타결하기 전까지 많이 불안했다"며 "쌍용차가 만든 자동차들이 잘 팔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근에서 중식당 '황제'를 운영하는 임선희씨 역시 "지난 두 달간 딱 보름밖에 장사를 하지 못했다"며 "아직 손님이 많진 않지만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송명호 평택시장은 "쌍용차 사태가 파국으로 치달을 때는 쌍용차 재가동이 저와 시민들에게 정말 꿈 같은 바람이었는데, 이게 현실이 되니까 고대하던 꿈이 이뤄진 것 같다"고 했다. 반면 평택참여자치시민연대 이은우 대표는 "아직 쌍용차 회생 가능성에 대한 시장의 신뢰도가 높지 않기 때문에 시민들이 불안해한다"며 "노사 상생 대타협 분위기를 만들어 갈등을 통합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