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초·중·고교 교사의 45%(18만명)가 가입한 한국교총(교원단체총연합회) 이원희 회장이 11일 "(정부가 추진하는) 교원평가제를 조건 없이 받아들이겠다"고 '즉시 수용' 입장을 밝혔다.
그동안 교총은 "원칙적으로 공감하지만 교육여건이 개선되면 (예컨대 교사·학생 비율이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서는 등) 실시하자"는 소극적 자세였으며 현 단계 실시에 대해선 사실상 반대 입장을 취해왔다.
그러나 이 회장은 이날 본지 인터뷰에서 기존 입장을 전격 선회, "국회는 현재 (상임위에) 계류 중인 법안을 빨리 통과시키고 내년 3월부터 교원평가제를 실시하자"며 "당당히 수용하겠다. 우리는 끌려가듯 평가를 받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최대 교원단체인 교총이 즉시 수용 입장을 밝힘에 따라, 교원평가제 법안이 탄력을 받아 올 하반기 정기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반면, 교사의 15%(6만명) 정도가 가입한 전교조와 민주당 일부 의원은 현 교원평가제 법안에 대해 반대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며, 현장 교사들 사이에서도 반대 움직임이 적지 않아 논란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이 회장은 "교원평가제 법안이 (국회에서) 지지부진하면서 교사들이 불신(不信)의 대상으로 비치는 것을 반대한다"며 "우리는 전문성을 신장시키는 교원평가라면 조건 없이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모든 교원이 평가제를 찬성하는 상황은 아니지만, 이제 결단할 시기가 됐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하고, 전교조에 대해서는 "과감히 평가에 동참하자"고 촉구했다.
이 회장은 교원평가제 수용이 자신의 개인적 생각만은 아니며 지난 10일 전국 400여명의 교총 대표들이 모인 '조직대표자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이라고 전했다.
이 회장은 "평가를 둘러싼 소모적인 논쟁은 더 이상 필요 없으며 정부는 교사들이 수업에 전념하고, 사(私)교육을 이기는 '명품수업'을 할 수 있도록 교사 지원 시스템을 마련하라"고 말했다.
―왜 입장을 전격 선회했나.
"지난 5~6년간 교원평가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만 했다. 교사들이 평가를 안 받아들인다는 '교단 이기주의'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불만과, 학부모들 불만이 팽배해졌다. 더 이상 이런 상황을 방치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왜 평가가 필요한가.
"교사로서 교단에 함께 있기 싫은 교사가 있다. 예컨대 친북좌파 교사, 성희롱하는 교사, 성적 조작하는 교사, 아이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무능한 교사들과는 같이하고 싶지 않다. 이들이 우리 교직사회를 희화화시키는 적(敵) 아닌가. (평가를 통해) 거를 사람은 걸러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당장 교원평가제를 받아들인다는 의미인가.
"교원평가제 법안이 국회 교과위 법안심사 소위를 통과한 상태다. 이 법안은 우리가 주장했던 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국회에서 마련한 법안이므로 9월 정기국회 때 통과시켜 제도를 시행하자. 당당히 수용하겠다."
―현장 교사들 반대가 적지 않을 텐데.
"평가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회원들 상대로 조사하니 평가제 찬성이 60%지만, 반대도 40%나 되더라. 하지만 학부모 80%가 이 제도를 지지하고 있다. 어차피 가는 방향이다. 교총이 선도적인 입장을 취하겠다."
작심한 듯 말을 이어갔다. 평교사 출신 첫 교총 회장인 그는 30여년간 중·고교 국어 교사로 재직하며, 명(名) 강의, EBS 수능방송 스타 강사로 이름을 날렸었다.
"교사로서 나는 내 강의가 항상 최고라고 생각했었다"는 그는, 교원평가제가 시행되지 못하는 이유가 교사들의 이기주의 때문이라는 지적이 가슴 아팠다고 했다. 이 회장은 '교사들이 그런 비난을 받는 부도덕한 집단으로 인식되어야 하느냐'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교원평가제 수용을 결단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교총은 교과부가 법 아닌 시·도 조례로 추진하겠다는 '편법적인 교원평가제'에 대해서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안병만 교과부 장관은 법이 통과되지 않아도 내년에 교원평가제를 시행하겠다고 했다. 예를 들어 시·도 조례를 통해 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역별로 또다시 필요 없는 논쟁이 시작되고, 교사들이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될 것이다. 우린 그런 상황 원치 않는다. 지금 법안이 국회에 있지 않나. 정부 여당은 법 통과시켜 제도 정착시키는 데 주력해야 한다."
현재 국회 계류중인 교원평가제 법안은 평가결과를 교원연수에 이용할 수 있지만 인사(人事)에는 연계할 수 없도록 했다. 때문에 교원평가 의미가 퇴색됐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 회장은 이에 대해 "교단에는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평가를 받게 되면, 교사들 처우도 달라지나.
"앞으로 교사들은 평가결과에 따라 교원연수를 차등적으로 받게 된다. 수업 잘하는 교사는 해외연수 기회 갖고, 교원 안식년제 우선권을 받게 될 것이다. 성과급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겠나. 교직사회에 상당한 변화가 올 것이다."
―그러나 평가결과를 인사와 연계할 수는 없지 않나.
"3년 정도 제도를 시행해 보고 평가결과의 인사연계 여부를 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교원평가를 실시하기 위해 전제되어야 할 사항은?
"교사들이 수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해달라. 교사들에게 맞춤형 연수지원을 확대하고, 교사들이 수업 이외에 쓸데없는 잡무에 시달리지 않도록 해달라. 어떤 교사는 가르치는 일보다 잡무가 더 많다고 하소연한다."
―사교육과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교사들이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사교육비가 국방비 규모와 비슷하다는 점에서 책임감을 느낀다. 지금 교단에 서는 교사들은 우리 사회의 최고 엘리트들이다. 이들이 꿈을 잃지 않고 각자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수업을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교원평가제는 교사들에게 기회이기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