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한 두 섬나라(아일랜드·아이슬란드) '얄궂은 운명'

입력 2009.08.12 02:53

아일랜드 국민투표서 EU헌법 부결시키면
아이슬란드 EU가입 막혀 경제회생 희망 사라져

유럽의 작은 섬나라 아일랜드(Ireland)와 아이슬란드(Iceland)가 얄궂은 운명에 처했다.

유럽대륙에서 건너간 켈트족(아일랜드)과 북해(北海) 바이킹의 후예들(아이슬란드)이 건국한 두 섬나라는 1000년 전부터 나라 이름만큼이나 서로 비슷한 발전 경로를 밟아왔다. 두 나라는 인구가 각각 440만명, 32만명밖에 안 되고, 척박한 토양과 빈약한 자원 탓에 잦은 대기근과 외국의 식민지배(아일랜드-영국, 아이슬란드-덴마크)에 시달렸다.

1980년대까지 유럽 국부(國富) 순위에서도 꼴찌였다. 그러나 글로벌 저(低)금리 시대의 도래와 세계적인 유동성 과잉에 힘입어 공격적으로 외자(外資)를 유치해 유례없는 고도성장을 이뤘다. 아일랜드는 '켈틱 타이거(celtic tiger)'라는 별명을 얻었고, 아이슬란드의 은행들은 '북해의 골드만삭스(미국계 투자은행)'를 자처했다.

그러나 강소국(强小國)의 성공 모델로 칭송받던 두 나라는 작년 9월 미국발(發) 글로벌 금융위기에 철퇴를 맞았다. 아이슬란드는 선진국 중 유일하게 국가부도 사태를 맞아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았고, 아일랜드는 유럽 국가 중 가장 먼저 불황(recession)의 늪에 빠졌다.

현재 다른 유럽 국가들이 회복세를 보이지만, 두 나라는 막대한 외채와 은행시스템의 붕괴로 경제 기반이 무너져 여전히 희망의 싹이 보이지 않는다. 올해 GDP 성장률은 아일랜드 -9%, 아이슬란드 -7%, 내년 실업률도 각각 17%, 10%로 전망될 정도로 암울하다.

두 나라는 국가 경제 재건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이 과정에서 두 나라의 운명이 묘하게 꼬이기 시작했다. 아이슬란드는 금융위기 재발(再發) 방지와 국가 경제 재건을 위해 EU 가입이 급선무라고 본다. 그래서 최근 EU 가입 절차에 착수했다. 그런데 아이슬란드의 EU 가입 성공 여부는 10월에 있을 아일랜드의 '리스본 조약' 비준 국민투표에 달렸다. 만약 아일랜드가 리스본 조약 가입을 부결시키면, 아이슬란드의 EU 가입도 무기한 연기될 가능성이 크다.

리스본 조약이란 유럽연합(EU)의 헌법에 해당하는 조약이다. 2004년 EU 헌법이 프랑스와 네덜란드 국민투표에서 부결되자, EU 회원국들은 대안(代案)으로 EU 대통령·외무장관 신설 등을 규정한 이 조약을 마련했다. 또 각국에서 쉽게 비준되도록, 국민투표가 아니라 의회 비준으로 대체가 가능하도록 했다.

그러나 27개 EU 회원국 중 유일하게 아일랜드는 작년 6월 비준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쳤다가 부결됐고, 이번에도 다시 국민투표에 부치지만 통과 여부가 불투명한 상태다. 아일랜드인들은 2008년부터 아일랜드가 EU 보조금을 받는 수혜국에서 지원금을 내야 할 기부국으로 전환되는 것을 놓고, EU의 기능 확대가 자국의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한다. 아일랜드의 '이기적' 행태에 열 받은 프랑스·독일 등 다른 EU 회원국들은 "아일랜드에서 리스본 조약이 통과되지 않으면 EU 회원국 확대는 더는 없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런 배경 탓에, EU 가입을 통해 국가를 재건하려는 아이슬란드의 운명은 아일랜드인의 손에 달리게 됐다. 얄궂게도 1000년 전 아이슬란드의 바이킹들은 북해에서 활개치면서 대표적으로 아일랜드를 약탈했다. 당시 아이슬란드 바이킹들이 아일랜드인들을 워낙 많이 잡아가 노예로 삼는 바람에, 현재 아이슬란드 인구의 30% 이상은 유전학적으로 아일랜드 혈통을 갖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처지가 180도 역전돼 아일랜드가 아이슬란드의 숨통을 틀어쥐게 된 것이다. 최근 리스본 조약을 놓고 실시된 아일랜드 여론조사에서도 찬반이 팽팽히 맞서, 아이슬란드인들을 애태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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