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소설 안중근 불멸] [149]

조선일보
    입력 2009.07.22 03:11

    제13장 망명(亡命)의 아침

    안중근이 김달하의 아들 동억과 함께 서울을 떠난 것은 열흘 전인 6월 하순이었다.

    "북간도로 가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우리는 함경도를 거쳐 두만강을 건너는 게 어떤가? 길은 험하고 고달프지만 일본 헌병의 검문이 드물어 오히려 뱃길이나 철길보다 편하다고 들었네. 또 가는 길에 의암 선생께서 말한 서북의진(西北義陣)을 살펴볼 수도 있고…."

    떠나기 전날 안중근이 그렇게 말하자 김동억이 반갑잖은 얼굴로 받았다.

    "이미 국외로 떠나는 판에 새삼스럽게 의진은 살펴 무엇 하겠는가?"

    "왠지 의암 선생님의 말씀이 맘에 걸려서 그러네. 정말로 서북의진이 건재하다면 멀리 간도까지 갈 까닭이 없지 않은가?"

    "어쩌면 의암 선생께서 이진룡 백규삼이 모두 당신의 문하라고 듣기 좋은 소문만 믿고 그러시는 건지도 모르지. 하지만 정히 그 일이 마음에 걸린다면 이렇게 하세. 평산 부근에 가서 이진룡 부대나 한번 살펴보고, 원산쯤에서 배편을 구해보는 게 좋지 않겠나?"

    결국은 김동억이 그렇게 찬성해 둘은 먼저 기차를 타고 경의선 계정(鷄井)에서 내렸다. 의암 유인석 선생에게서 들은 역 이름이었다. 하지만 계정 역이나 인근 객주 집에서는 이진룡 부대를 아는 사람을 찾기조차 쉽지 않았다.

    "의병이라고요? 몰라요, 뭐 몇십 명 산중에 가정부(假政府) 차려놓고 부잣집 털어먹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 아무개 부대라고는 통 모르겠는데요. 재작년에 여기 몰려와 저쪽 주재소에 총질하고 달아난 그 패거리들인가…."

    일러스트= 김지혁

    안중근의 물음에 객주 집 주모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그렇게 말했고, 입심깨나 있어 뵈는 보부상을 잡고 물어도 의암 선생이 말하던 '치열한 유격전'같은 말은 없었다.

    "이진룡이 그 사람은 선봉장이고, 대장은 박기섭이라고 하지, 아마. 좋을 때 한 2백 명 모아 평산 쪽을 몇 달 휘젓고 다녔다 하더구먼. 하지만 요즘은 소리 소문 없던데. 멀리 구월산으로 달아나 숨었다는 말도 있고…."

    그 말에 찾아간 곳이 이진룡의 고향인 평산이었으나 거기서도 그들 부대의 움직임은 잡아낼 수 없었다.

    "그런 의병부대가 있었지. 맞아. 이진룡이 박기섭이란 사람을 대장으로 세우고 자신은 스스로 선봉장이 되어 싸웠다더구만. 박정빈 조맹선 신정희 한정만 신준빈 등 이 고을에서 한다 하는 선비들은 다 끌어모아 나섰지. 그들도 각기 한 갈래 장정들을 모아 와 합이 다섯 부대나 되었네. 그러나 실력이 의기를 따르지 못해 일본군 일개 소대한테 낭패를 당한 뒤로는 여기서 안 보이데. 예성강을 오르내리며 일본군을 괴롭힌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것도 소문뿐이고, 올해 들어서는 조용하던데."

    한때는 글줄깨나 읽었음 직한 중년의 사내가 그렇게 일러주었으나, 역시 사람 이름이 몇 더 나온 것뿐 거기 가담해 싸울만한 부대의 실체에 접근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다시 따라 내려가 본 게 예성강이었다. 하지만 마찬가지였다. 날짜만 여러 날 허비했을 뿐 서북의진의 터럭 한 올 스쳐보지 못했다. 마침내 길을 북쪽으로 잡으며 안중근이 말했다.

    "좋소이다. 이만 북간도로 가세. 다만 떠나기 전에 삼화항에 들러 식구들에게 작별이나 하고 갔으면 좋겠네. 늙으신 어머니와 어린 처자가 있는데, 이번에 가면 오래 보지 못할 것 같아 꼭 한번 만나보고 가고 싶네그려."

    그러자 김동억이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여 주어 두 사람은 함께 삼화항까지 오게 되었다. 그러구러 서울을 떠난 지 열흘 만이었다.

    "여름 손님은 범이라 하였네. 내가 가면 자당님과 수씨(嫂氏)를 함께 괴롭힐 뿐이니 자네 혼자 가서 가솔들과 못다 푼 소회를 풀고 오게. 나는 여각에서 하룻밤 푹 쉬겠네. 지난 며칠 내게는 실로 고단한 길이었다네. 뿐만 아니라 둘이 함께 몰려다니며 우리 행적을 너무 남의 눈에 띄게 하는 것도 좋지 않네. 일후 자네가 다녀간 게 가솔들에게 무슨 불티를 날릴지 모르니, 자네도 주위를 살펴 혼자 가만히 다녀오는 게 좋을 걸세."

    삼화항에 이르자 김동혁이 눈에 띄는 여관을 찾아들며 하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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