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소설 안중근 불멸] [148]

조선일보
    입력 2009.07.21 03:16

    제13장 망명(亡命)의 아침

    하지가 지난 지 열흘밖에 되지 않아서인지 날은 더디 저물었다. 해 질 녘부터 동구의 정자나무 부근을 서성이며 집 쪽을 살핀 지 이미 오래인데도 아직 대문을 드나드는 사람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한 식경 전에 어머니 조(曺)마리아가 현생(賢生)과 분도(베네딕트)의 손을 갈라 잡고 들어간 뒤로 더는 드나드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안중근은 다시 한 식경이나 기다려 들창마다 불이 밝혀지고 골목에 인적이 사라진 뒤에야 조심조심 집 쪽으로 다가갔다.

    아직 잠기지 않은 대문을 가만히 밀고 집안으로 들어가니 방금 저녁상을 물리는 듯 안방과 부엌을 잇는 문이 열려 있고, 아내 김 아려가 부엌에서 이제 막 부뚜막에 내려진 밥상을 거두고 있었다. 안중근이 그대로 방안으로 들어가려다 말고 어둠 속에 멈춰 서서 그런 아내를 잠시 지켜보았다. 헤어진 지 두 달밖에 안되는데도 아내의 배가 금세 알아볼 만큼 많이 불러 있었다. 떠나는 날 아침에야 셋째의 임신을 알려 새삼스럽게 바라보았을 때만 해도 별로 드러나지 않던 그녀의 아랫배였다. 느닷없이 시큰해오는 콧마루를 손바닥으로 가만히 쓸어내린 안중근은 까닭 모를 비감(悲感)에 지지 않으려고 애쓰며 한참을 말없이 서있었다.

    그때 상을 거둔 아려가 설거지를 하다말고 개숫물을 버리려고 마당을 내다보다가 마당에 서 있는 그림자를 바라보고 흠칫했다. 그러나 이내 남편을 알아본 듯 한참을 마주 쳐다보다가 차분하게 물었다.

    일러스트 김지혁
    "왜 들어오지 않고 거기 계세요?"

    "아녜스를 보고 있었소. 배가 많이 불렀구려."

    안중근이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에 정감을 실어 그렇게 받았다. 다시 한 번 코끝이 시큰하며 집에 들르기를 잘했다 싶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 방안에서 마당의 인기척을 들은 조 마리아가 아이들을 도닥이다 말고 물었다.

    "밖에 누구냐?"

    "저어 - 아비가……왔어요."

    아려가 갑자기 기어드는 목소리로 그렇게 더듬거렸다. 조 마리아가 급하게 방문을 열며 안중근을 맞아들였다.

    "아비가 다 저물어 웬일이냐? 아직 이 땅에 남아 있었다는 게냐?"

    그제야 방안으로 들어간 안중근은 먼저 아버지의 신위 앞에 절을 올려 먼 길 다녀온 인사를 드린 다음 어머니와 마주 앉았다. 할머니 치마꼬리에 매달려 있던 현생과 분도가 여전히 안중근을 흘깃거리기만 하며 할머니 곁을 떠날 줄 몰랐다. 안중근이 전에 없이 팔을 벌려 아이들을 불렀다.

    "얘들아, 이리 온. 아버지다."

    그러자 현생이 머뭇거리며 다가와 안중근에게 안겼다. 그새 여섯 살이 되어 철이 더 든 데다 첫딸이라 아버지의 사랑을 받은 기억이 더 많아서인지 제법 아버지를 마주 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세 살 난 분도는 끝내 할머니 치마꼬리를 놓지 않고 있다가 어머니가 방안으로 들어와서야 그쪽으로 옮겨갔다.

    "국외로 나가기 전에 한번은 다녀갈 줄 알았다만 갑작스럽구나. 그래, 이제 아주 떠나는 거냐?"

    어머니 조마리아가 아무래도 궁금하다는 듯 다시 그렇게 물으며 무엇 때문인지 안중근을 찬찬히 살폈다.

    "예,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관북을 거쳐 북간도로 가게 될 듯합니다."

    안중근이 그렇게 받자 걱정스러운 얼굴이 되어 물었다.

    "길 떠난 지 오래된 행색인데, 어찌 된 일이냐? 간도로 가는 데는 철길도 있고 뱃길도 있다던데, 너는 어째 여러 달 길에서 길로 떠돈 과객 같구나. 서울에서 예까지 오는 길이 그렇게 험하더냐?"

    그 말에 진작부터 안중근의 행색을 뜯어보고 있던 김아려의 눈길에도 걱정과 궁금함이 자옥하게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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