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함께 산 어느 노부부의 '슬픈 이혼'

  • 뉴시스
    입력 2009.07.19 19:25

    결혼 40년만의 슬픈 이혼
    이모 할아버지(96)와 김모 할머니(78)는 인천시 남구 도화동 111번지에 산다. 세워진지 30년은 넘어 보이는 이 단층건물은 바람이라도 불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것처럼 위태롭다. 올해 안에 철거된다는 풍문도 들린다.

    부엌이 딸린 500만원짜리 단칸방은 합쳐도 80kg이 안 될 것 같은 두 사람이 나란히 누우면 빠듯한 공간이다.

    어쩌다 폭우가 쏟아지면 천정의 미세한 구멍으로 빗물이 흘러내린다. 지난 14일 노부부는 빗물이 똑똑 떨어지는 방안에서 밥을 먹었다. 할아버지는 수년 전부터 치매증세를 보이고 있다. 할머니가 자신의 아내인지도 가끔은 깜빡할 정도. 할머니의 처지도 좋지 않다. 젊었을 적 필목장사를 하다 무릎뼈를 다친 이후 상태가 악화돼 역시 수년 전부터는 앉은뱅이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게다가 보청기 없이는 귀도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결혼한 지 40년이 됐다는 이 노부부가 함께 외출할 수 있는 것은 그나마 할머니에게 전동휠체어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6일 노부부는 모처럼 외출을 강행했다. 궂은 날씨 속에서 외출을 강행한 이유는 법원으로부터 협의이혼을 확정받기 위해서였단다.

    비록 서로 초혼은 아니지만 반세기 가까이 동거동락하던 부부가 갈라선 이유는 무엇때문일까?

    김 할머니에 따르면 올해 2월부터 그동안 자식들이 주던 생활비가 뚝 끊겼단다. 자기 배로 낳은 자식은 아니었지만 다섯 아들을 고등학교를 졸업시킬 때까지 안 해본 장사가 없을 정도로 양육에 힘써왔다는 게 할머니의 설명이다.

    비록 직접 부모를 모시지는 않았지만 빠듯한 살림살이에도 매달 20만원 안팎의 생활비를 대준 아들에 대한 노부부의 자랑은 무허가 판자촌이 즐비한 이 동네에서 화제였다는 게 이웃들이 전하는 얘기다.

    노부부와 자식 사이에 금이 간 것은 올봄부터다. 김 할머니에 따르면 농사를 짓는 자신의 동생이 쌀 한 가마니와 함께 350만원을 보내왔다. 그런데 근처에 살고 있던 큰 아들이 "새 돈으로 바꿔 준다"며 돈을 가져간 뒤 도통 되돌려줄 생각을 안 한다는 것이다.

    지근거리에 있으면서도 평소 자신들에게 무관심하던 큰아들에게 섭섭함을 갖고 있던 노부부는 울컥하는 마음에 근처 경찰서에 큰 아들을 신고했다.

    직계가족이기 때문에 법정으로까지 가진 않았지만 이 일을 기화로 다섯자식과 노부부 사이는 크게 틀어졌다.

    김 할머니와 이웃사람들에 따르면 큰 아들은 만취한 날이면 노부부의 집을 찾아와 행패를 부린단다. 직접적인 폭력은 없지만 욕설과 함께 살림살이를 부수는 등 행패가 만만치 않다고 한다.

    몇 만원밖에 안되는 기초노령연금으로 어려운 생활을 해야하던 노부부는 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이마저도 녹록치 않았다.

    도화 2동 사무소 복지 담당자는 "현재 가진 재산으로만 보면 기초생활수급 자격이 충분히 되지만 부양능력이 있는 아들들이 있어서 법적으로 보호해드릴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이왕 틀어진 부모자식간이니 자신들이 당분간 먹고살기 위해 돈이나 되돌려받겠다는 욕심을 부렸단다.

    "돈을 되돌려달라"는 요구에 큰아들이 이혼문제를 들고나온 것은 지난 5월부터다. 김 할머니는 "큰 아들이 이혼만 해주면 돈을 돌려준다고 했다"며 "처음에는 할아버지한테 남겨진 돈이 있어서 그런가 했지만 우리한테는 아무런 돈이 없어 이상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도화 2동 복지담당자는 "현재로서는 전세보증금 500만원과 전북에 있는 할아버지 명의로 된 200만원 상당의 토지, 기타 예금이 100만원 정도 된다"고 설명했다. 1000만원 도 안되는 유산을 노리고 큰아들이 이혼을 종용했다는 것은 다소 무리라는 게 주변인들의 설명이다.

    어쨌든 이혼만 해주면 돈을 주겠다는 큰아들의 설득에 결국 협의이혼을 하고 말았다고 할머니는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막노동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큰아들은 아직 돈을 되돌려주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웃사람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이 황혼이혼에는 노부부의 '어리석지만 안타까운 노림수'도 있었던 것 같다.

    두 사람이 이혼을 할 경우, 할머니가 독거노인으로 등록돼 최저생계비 지원이 가능한 것을 염두에 뒀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혼을 했더라도 현재처럼 할아버지와 동거상태면 독거노인으로 분류되지 않아 지원을 할 수 없다는 것이 도화 동사무소측의 설명이다.

    결국 돈 한푼 받지 못한 채 졸지에 이혼한 처지가 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분한 마음에 아들을 고소하려고 지난 주부터 법원문을 드나들고 있다.

    김 할머니는 이제는 자식이 아닌 타인으로서 과거의 큰아들을 고소하려고 한다. 이웃사람들은 '가족간의 일'이라며 말을 아끼지만 노부부의 황혼이혼의 사연이 "남의 일 같지는 않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저작권자ⓒ '한국언론 뉴스허브'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