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제1조를 차분하게 되새겨 보아야 할 때가 되었다. 민주화를 성취한 지 20여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우리에게는 정치 불신과 정치 불안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국회는 제때에 개원하지 못했고, 우여곡절 끝에 개원했어도 국회 운영이 순탄할 것 같지 않다. 앞으로 국회에서는 사생결단식의 대결주의가 뜨겁게 달아오를 것이다. 전후 세계에서 유례없이 모범적으로 민주화에 성공했는데도, 평화적인 정권 교체를 연이어 경험했는데도, 우리의 민주제도는 왜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까?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순수한 민주국가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민주공화국이란 민주국가인 동시에 공화국가이며, 민주주의와 공화주의가 복합된 정치체제인 것이다.
우리의 헌법은 왜 이렇게 국가의 성격을 복잡하게 만들어 놓았는가? 그 까닭을 밝히려면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핵심적인 내용을 짚어보아야 한다.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사생결단식의 대결주의를 극복할 수 없다. 이러한 사실은 아테네의 경험으로부터 알려졌다.
순수한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다수지배체제이다. 다수지배체제에서는 지지 숫자가 다수냐 소수냐에 따라 정치 의지를 실현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갈린다. 그렇기에 정치적 소수자는 지지 숫자를 확대하고자 모든 수단을 다 쓰게 된다. 물론 정치적 다수자도 지지 숫자를 잃지 않으려고 갖은 수단을 쓸 수밖에 없다. 이처럼 순수한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대결주의 또는 파당주의를 극복하기 어렵다.
최초의 민주국가였던 고대 아테네는 페리클레스처럼 위대한 지도자가 사라지자 곧바로 멸망의 길을 밟았다. 그가 사라지자 경쟁하는 정치세력들이 사생결단식의 대결주의에 온 정치력을 모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100년 남짓 존재하고는 영원히 사라졌다.
현대정치제도를 구상했던 근대의 정치사상가에게는 이러한 대결주의를 극복하는 것이 최고의 과제였다. 그들에게 빌미를 주었던 것은 고대 로마의 정치 경험과 정치 이론이었다.
고대 로마는 아테네와 달리 공화국이었다. 공화국이란 라틴어로 'res publica'인데, 그것은 국민 모두의 소유물이라는 뜻이다. 그렇기에 공화국은 소수의 소유물처럼 운영되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다수의 소유물처럼 운영되어도 안 된다. '파당이 있는 곳에 공화국은 없다'라는 정치 격언은 공화주의의 핵심 내용을 잘 나타내준다.
건국된 지 500년 넘게 존속하고, 지중해의 패자가 되어 다시 500년 넘게 존속한 것은 로마가 공화주의 전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화주의는 권력을 분산시키고 입헌주의로 정치를 운용함으로써 파당적인 대결주의를 극복했다. 권력 집중을 막기 위해 로마는 군주정, 귀족정 및 민주정을 복합한 혼합정체를 운용하였다. 이러한 전통은 근대에 들어와 삼권분립의 모델이 되었다.
입헌주의란 정치 경쟁을 헌법이나 법률로 통제하는 것이다. 아무리 치열한 정치 대결도 정해진 법이나 규정의 범위 내에서 해야 하고, 개정되기 전까지는 법이나 규정들을 절대로 어기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입헌주의의 요체이다.
우리는 삼권분립의 정치체제도 가지고 있고, 위대한 헌법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민주제도가 잘 작동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이겠는가? 그 까닭은 바로 정치세력들이 자기 주장만이 옳다고 여기고는 정해진 법률이나 규정을 무시하는 데에 있을 것이다.
우리는 헌법 제1조가 지시하는 대로 온갖 희생을 무릅쓰고 민주화를 달성하였다. 이제 헌법 제1조는 우리에게 공화주의를 위해 매진하라고 지시하고 있다. 공화주의를 달성해야 민주주의는 완성할 수 있다고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이제 정치가들이 국회에서 법규정을 못 어기도록 국민이 완강하게 요구할 때가 되었다.
입력 2009.07.16. 22:03업데이트 2009.07.16.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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