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월가 11번지. 뉴욕증권거래소(NYSE)가 들어선 이 골목 입구엔 '세계 금융 수도, 뉴욕'이라는 표지가 붙어있다. 뉴욕발 증시 소식이 아시아와 유럽으로 연쇄반응을 일으킬 때 장 마감을 알리는 종소리를 울리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지난달 25일 오전 9시. 주식시장 개장을 30분 앞둔 뉴욕증권거래소는 부산하고 긴장감이 돌았다. 대표적 증권방송인 CNBC의 아침 프로 진행자 마크 헤인스(Haines)는 거래소 건물 앞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꺼내 문 채 원고를 읽었다. 장 개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릴 때쯤이면 이곳에 스튜디오를 차린 세계 28개 방송이 요란하게 다우지수의 등락을 보도한다.

9·11 테러로 사라진 세계무역센터빌딩에서 5분 거리의 이곳은 보안이 매우 강화됐다.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는 식으로 두 번의 까다로운 검사를 거쳐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넓은 공간에 대형 수퍼 컴퓨터를 빽빽하게 쌓아둔 듯한 거래소의 전경이 들어온다.

미국 뉴욕 월가 11번지에 자리 잡은 뉴욕증권거래소(NYSE) 내부 전경. ‘세계 금융의 수도’라 불리는 이곳에서는 과장된 몸짓으로 소리를 지르는 과거 경매방식이 거의 사라지고 지금은 대부 분 전자거래로 이뤄진다.

"예전에는 온통 고함과 비명으로 가득했지만 지금은 훨씬 조용하죠."

기자를 안내한 거래소 직원은 경매인들이 플로어에서 매수자와 매도자를 연결하기 위해 과장된 몸짓으로 소리를 지르는 경매방식이 거의 사라지고, 지금은 대부분 전자거래로 이뤄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간의 목청이 닿는 공간까지만 유효했던 거래의 공간은 이제 정보의 고속도로를 타고 전 세계로 확장됐다. 뉴욕증권거래소는 2007년 유럽의 유로넥스트(Euronext)와 합병했다. 암스테르담·브뤼셀·파리의 주식거래소가 한데 통합되고, 여기에 런던에 자리잡은 파생상품거래소 리페(Liffe)와 포르투갈 거래소시장이 뉴욕증권거래소와 통합됐다. 무려 8000개의 글로벌 기업이 'NYSE 유로넥스트' 깃발을 단 시장에 상장되어 있고, 전 세계 현금주식거래의 약 40%가 여기서 이뤄진다. 가장 유동성이 좋은 시장으로 평가받는다.

3월 말 기준으로 NYSE 유로넥스트에 상장된 증권의 시가총액은 14조7000억달러에 이르고, 매일 856억달러어치가 거래된다. 시가 총액이 합쳐서 약 2조1000억에 이르는 상위 50개 기업은 미국과 유럽에 동시에 상장되어 있기도 하다.

세계금융의 풍향계 구실을 하는 NYSE 유로넥스트는 어쩔 수 없이 경제위기의 여파를 받고 있다. 금융거래가 위축되면서 거래량이 줄고, 특히 파생상품 트레이드는 눈에 띄게 줄었다. 지난 1분기 파생상품거래에 따른 소득은 전년 동기에 비해 31%나 감소했고, 달러 강세와 유럽시장 약세로 전체 순소득이 21% 줄었다.

하지만 시장 통합과 전산화의 가속은 NYSE 유로넥스트의 비용을 빠르게 떨어뜨리고 있다. 거래의 플랫폼을 통일하고, 데이터센터와 네트워크의 통합이 가져오는 기술적 시너지 효과를 통해 NYSE 유로넥스트는 내년까지 2억5000만달러의 비용을 절약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기술적 시너지를 제외한 일반 비용 절감 효과는 이미 가시화돼 지난 1분기 말 영업고정비용을 약 2500만달러 절감했다.

거래소 시장을 통합하고, 전산화를 통한 단일 플랫폼을 구축해 규모의 경제를 누리려는 시도는 경제위기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NYSE 유로넥스트는 지난 2월 상하이증권거래소와 상장지수펀드(ETF)거래에 대해 협력하는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중동 자본 유치를 위해 카타르증권거래소에 2억4000만달러를 투자해 30%의 지분을 인수했다. 또 기술적으로 대량 주식거래를 용이하게 하는 블록트레이드 상품을 유럽에선 스마트풀, 미국에선 뉴욕블록거래라는 이름으로 출시하고, 지난 2007년 인수한 아메리칸증권거래소(Amex) 옵션 거래장을 뉴욕증권거래소로 이동해 새로 개장했다.

지리적, 기술적으로 통합된 시장은 증권거래를 하는 고객들의 요구에 부합한다. 가령 메릴린치 등 큰 투자은행은 주식, 옵션, 선물, 채권 등 다양한 금융상품을 거래한다. 그런데 각각 상품마다 거래소가 달라 옵션거래를 위해서는 필라델피아, 파생상품 거래를 위해서는 시카고로 이동해야 했다. 거래소마다 규제 수수료를 따로 지불하고, 각 상품을 거래하기 위한 기술 수수료도 따로 지급했다. 이 번거롭고 비용이 많이 드는 규제와 기술 플랫폼을 하나로 통합, 원스톱으로 거래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또 글로벌하게 존재감을 넓혀가고 있는 거래소에 상장하면 기업의 인지도가 늘어나 자본 조달을 쉽게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거래소를 통합하고, 단일한 기술표준을 선점하려는 노력은 NYSE 유로넥스트뿐만 아니라 세계 거래소를 관통하는 흐름이다. 미국시장에서 NYSE의 뒤를 쫓고 있는 나스닥이 스웨덴 및 필라델피아 거래소를 인수하고, 런던증권거래소가 이탈리아거래소를 인수하고, 다시 런던증권거래소와 나스닥이 통합 논의를 벌였다. 아직 상대적으로 규제가 많이 남아 있는 중국, 일본, 싱가포르 등 아시아 국가들과 중동 이슬람 국가들도 이런 흐름에 동참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물밑에서 벌어지는 거래소 간 합종연횡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을 상대로 거래소의 존재감을 알리려는 마케팅 경쟁도 치열하다. 이날 기자가 뉴욕증권거래소를 방문해 설명을 듣는 도중 오전 9시 반이 되자 '땡 땡 땡 땡' 요란한 벨소리가 울렸다. 눈을 들어보니 거래소 상단에 인기 TV 드라마 '종합병원'의 여주인공 린 헤링(Herring)이 '오프닝 벨'을 누르고 있었다. 유명 기업인과 정치인, 연예인에게 개장 벨과 폐장 벨을 누르게 하는 퍼포먼스를 통해 일반인들의 눈길을 끌려는 NYSE 유로넥스트의 마케팅 노력의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