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혁명 전야

    입력 : 2009.06.30 03:09

    선우정 도쿄특파원
    28일 도쿄 남쪽 요코스카(橫須賀) 시장 선거에서 33세 시의원이 당선됐다. 요코스카의 정치스타 고이즈미 전 총리와 여·야당 응원을 한꺼번에 받은 64세 현역 시장을 이긴 이변이었다. 일본에서 '지방 분권'을 앞세운 30대 초반의 시장 당선은 올 들어서만 4번째. 지난 14일 지바(千葉) 시장 자리를 31세 정치 신인이 가져갔고, 3월과 2월에는 각각 야나이(柳井) 시장과 마쓰사카(松阪) 시장에 34세와 33세 정치인이 선출됐다.

    이런 이변은 최근 일본에서 일어나는 '거대한 변화'의 일부에 불과하다.

    하시모토 도오루(橋下徹) 오사카(大阪) 지사. 나이 마흔에 3남4녀를 둔 이 다산(多産) 가장을 주목하지 않으면, 일본의 근(近)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잘생긴 얼굴에 야무진 말솜씨, TV 법률상담을 통해 인기를 모은 과정은 한국의 서울시장과 비슷하지만, 지지율 80%를 기반으로 한 정치적 폭발력은 차원이 한참 다르다.

    지금 하시모토가 일본 정치판을 뒤흔들고 있다. 24일 그는 새 정치그룹을 결성해 9월 이전에 실시될 중의원 선거에서 지방 분권을 약속하는 정당을 지지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자민당 지지로 당선됐지만 그의 '지방 분권론(分權論)'은 민주당이 간판 공약으로 들고 나온 '관료정치 해체'에 가깝다. 하시모토와 함께 분권론 바람을 일으키는 요코하마(橫濱) 시장 역시 무당파(無黨派) 색채가 강한 44세 정치인이다.

    하시모토의 '분권론'은 정권 교체와 맞물리면서 일본의 미래를 끌고가는 핵심 키워드로 자리 잡을 듯하다. 훗날 역사는 자민당 정권이 무너지는 정치적 사변을 '중앙집권 시대의 혁명적 종말'로 기록할 수도 있다. 혁명 전야의 일본은 본질적으로 '자민당 대 민주당'이 아니라 '중앙 대 지방' 구도로 권력 투쟁이 전개되는 것이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구심력보다 원심력이 강한 나라다. '태평(泰平)시대'로 불리는 에도시대(江戶·1603~1867년)조차 270개 소국(小國)의 긴장과 균형 속에 유지됐다. "지방에 가면 일본이 선진국이란 사실을 실감한다"는 평판은 260여년 동안 270개국 영주들이 알뜰하게 지역을 가꾼 지방분권의 산물이다.

    역사적 특수성까지 들 것도 없다. 다원화된 현대사회엔 중앙집권보다 분권이 적합하다는 것은 보편적 상식에 속한다. 위정자의 과욕, 중앙 기득권의 저항, 지방의 무기력이 상식을 받아들이는 인식의 통로를 차단하고 있을 뿐이다.

    일본의 변화는 시사점이 많다. 외국에서 보면 한국만큼 중앙집권 폐해에 찌든 나라도 없다. 세상 권력은 중앙정부에, 중앙정부 권력은 대통령에 쏠려 있다. 대통령이 면장의 권력까지 독점하고 있으니 시골에서 해결할 갈등까지 몽땅 서울로 올라가 광장에서 폭발한다.

    핵 문제에서 소매점 허가, 학원 영업시간까지 대통령이 고민하는 나라에서 소통을 한들 무슨 해법이 나올까. '권력을 털어내야 갈등도 털어낼 수 있다'는 분권의 원리를 무시한 채 "국민이 유별나다"고 한탄만 한다. 유별난 것은 국민이 아니라 비대한 권력을 틀어쥐고 아무 일도 못하는 중앙정치권 전체다.

    하시모토가 한국의 지사였다면 지금 당장 중앙 권력을 향해 표범처럼 달려들 것이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에 반기(反旗)를 들어야 할 주체는 한물간 좌파나 민주당이 아니라 지방이다. 지방이 아니면 누구도 뇌졸중 직전의 서울을 구제할 수 없다. 나라를 정상화시킬 해법도 제시할 수 없다. 지방이 분노해야 할 역사적 타이밍이 우리 곁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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