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세계 유산' 조선 왕릉

조선일보
  • 김태익 논설위원
  • 김도원
    입력 2009.06.30 03:10 | 수정 2009.07.02 10:20

    '나이 일흔에 능참봉 되니 거동이 한 달에 스물아홉 번'이란 속담이 있다. 능참봉은 조선시대 왕족 능묘(陵墓)를 관리하던 벼슬로, 종9품 미관말직이다. 그것도 벼슬이라고 하나 맡았더니 생기는 건 없고 바쁘기만 하다는 뜻이다. 어찌하다 능 주변의 큰 나무 하나라도 손상시키면 3년 유배를 가야 했다니 몸이 얼마나 고달팠을지 짐작이 간다.

    ▶조선조 22대 정조 임금은 비운에 간 아버지에 대한 효성으로 경기도 화성에 있는 사도세자 능을 자주 찾았다. 어느 날 큰비가 쏟아지자 아버지 능이 걱정돼 "지키라고 둔 관헌 놈은 방에서 편히 잠이나 자고 있으렷다" 하며 실상을 파악해 조치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평소 정조의 효심을 알고 있던 능참봉은 "봉분이 떠내려갈까 봐 걱정돼서"라며 빗속에 능을 붙잡고 울고 있는 것이었다. 능참봉에게는 큰 상금과 더 높은 벼슬이 내려졌다. 조선의 왕들이 선왕(先王)의 능 관리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보여주는 얘기들이다.

    ▶조선왕실은 27대 국왕, 500여년 동안 119개의 능묘를 남겼다. 왕과 왕비의 무덤을 능(陵), 왕세자와 세자빈의 무덤이 있는 곳을 원(園), 기타 왕족의 무덤을 묘(墓)라고 한다. 이 중 왕릉은 42기가 남아 있는데 한 왕조의 왕릉 전체가 이처럼 온전하게 보존된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 드문 일이다. 유교국가인 조선에선 국장을 치르고 왕릉을 조성하는 모든 과정이 예(禮)를 실천하고 가르치는 통치행위였다. 왕릉은 당대 최고 장인(匠人)들이 동원돼 만든 조선 건축·사상·미의식의 결정체였다.

    ▶왕릉이 보존된 데는 과학적 조성방법이 한몫했다. 조선 왕릉은 서울 삼성동의 선·정릉을 제외하곤 도굴된 적이 없다. 석회와 황토, 모래를 섞어 만든 특제 혼합물로 관(棺)과 석실 사이를 두텁게 채웠기 때문이다. 봉분 주변엔 떡갈나무를 심어 산불을 예방했고, 지대가 낮은 홍살문 주변엔 습지에 강한 오리나무를 심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27일 남한의 조선 왕릉 40기를 일괄해 '세계유산'에 등재토록 했다. 조선 왕릉은 지금도 매년 200만명의 시민이 찾고, 해마다 기일에 맞춰 옛 방식 그대로 제사의식이 거행되는 '살아 있는 역사'라는 점에서 더욱 뜻깊다. 조선 왕릉이 밀집된 곳은 고양·파주·양주·남양주·화성·김포 등 하나같이 개발 압력이 높은 수도권 일원이다. '세계 유산' 지정을 기뻐하는 한편, 어떻게 하면 왕릉의 역사와 자연환경을 개발위협으로부터 지켜나갈지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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