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7사단 시찰 미스터리'

입력 2009.06.29 03:10 | 수정 2009.06.29 08:03

"6월14일 공개된 사진은 4월 851부대 방문 재탕"
정보 당국 결론… 건강 다시 악화됐을 가능성
"6월에 방한복이라니… 김정일 동향 체크 중"

정보 당국은 북한이 지난 14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7보병사단 시찰 장면이라며 공개한 사진이, 지난 4월 25일 851부대를 방문했을 때 사진의 '재탕'일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28일 알려졌다. 정보 당국은 이 같은 판단을 최근 청와대에 보고했으며 청와대는 김 위원장의 건강이 다시 악화됐을 가능성을 포함해 북한의 정세 변화 여부를 면밀히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4월 25일 군 창설 77주년을 맞아 "김 위원장이 851부대를 방문했다"며 김 위원장과 김영춘(차수) 인민무력부장, 김정각(대장) 총정치국 제1부국장 등이 단체로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지난 14일에는 시찰 날짜를 밝히지 않은 채 "김 위원장이 동부전선에 있는 7보병사단을 방문했다"고 보도하면서 조선중앙TV를 통해 단체사진을 내보냈다. 김 위원장의 현지시찰 1~3일 뒤에 관련 내용과 사진을 보도하는 게 북한의 관행이다.

그러나 북한이 공개한 4월 사진과 본지가 단독 입수한 6월 사진을 비교한 결과 첫 줄 양끝에 서 있는 5~6명을 제외하면 사진 속 인물 배치가 사실상 똑같은 것으로 분석됐다. 본지 입수 사진은 북한 TV화면을 촬영한 것이어서 해상도는 상대적으로 떨어지지만 4월 사진과 실내 천장 조명, 뒤편에 걸린 글귀 등이 모두 일치해 같은 장소에서 찍었을 것이란 판단을 뒷받침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851부대를 시찰해 찍은 것이라며 북한 매체들이 4월 25일 보도한 사진(위-조선중앙통신)과, 김 위원장이 7보병사단을 찾아 찍은 것이라며 북한 TV가 지난 14일 공개한 사진(아래). 위 사진 맨 아래 줄 좌·우 인물 10여명이 아래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을 뿐(흰색 실선 표시) 두 사진 속 인물 배치와 실내 천장 조명, 배경 글귀가 모두 일치한다. / 조선중앙TV
두 사진 모두 김 위원장의 오른쪽(사진 왼쪽) 세 번째에 김영춘 부장이 있는 것도 6월 사진의 진위(眞僞) 여부에 대한 의심을 키운다. 김 부장은 지난 13일쯤 중국을 방문했던 것으로 확인돼 14일 공개된 사진에 그가 등장한 것은 시간상 맞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북한이 14일 김 위원장의 7보병사단 시찰 사진을 보도하면서 수행자 명단을 공개했으나 김 위원장의 왼쪽(사진 오른쪽) 세 번째에 서 있는 김정각 부국장을 빼놓은 것도 눈길을 끈다. 당시 북한 매체들은 "현철해·이명수 대장이 수행했다"고만 전했다.

김 부국장 정도의 고위급 인사는 수행자 명단 발표에 항상 포함시키는 게 북한의 보도 관행이다.

특히 14일 공개된 사진 속 김 위원장이 겨울용 방한복을 입고 있는 것은 "매우 이상하다"(청와대 당국자)는 분석이다. 정보 당국에 따르면 2000년 이후 공개된 김 위원장의 사진 중 5월 초가 지났는데도 방한복을 입은 장면은 한 컷도 없다고 한다. 더구나 북한이 지난 5월 24일 김 위원장의 함북 연사지구 혁명유적지 시찰 장면이라며 공개한 사진에서 김 위원장은 목이 팬 긴팔 인민복만 입고 있다. 6월 사진에 비해 위도상이나 계절적으로 더 추웠을 가능성이 큰 지역(함경북도)과 시기인데도 김 위원장이 오히려 더 얇은 옷을 입고 있는 5월 사진은 "6월 사진이 4월 사진의 재탕일 가능성을 높여주는 대목"(정부 관계자)이란 설명이다.

북한이 5월 24일 보도한 위쪽 사진 속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춘추복을 입고 있으나 지난 14일 내보낸 아래 사진 속의 김 위원 장은 계절적으로 더 따뜻할 가능성이 큰데도 겨울용 방한복을 입고 있다./조선중앙통신·조선중앙TV

정보 소식통은 "김 위원장이 6월에 갔다는 7보병사단과 4월에 갔다는 851부대(포병부대로 추정)는 모두 강원도 안변군에 주둔한 부대들"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이 두 부대를 비슷한 시기에 방문해 같은 장소에서 다른 사진을 찍은 뒤 보도 날짜만 달리했거나, 아예 6월에는 가지도 않고서 간 것처럼 보도하면서 4월 사진을 증거로 '조작', 사용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다른 관계자는 "정보 당국의 다른 라인에서는 이들 사진의 조작 여부에 회의적인 반응도 나오고 있다"며 "김 위원장의 추가 동향을 정밀하게 체크해 본 뒤 최종 판단을 내릴 것"이라고 했다.

정보 당국은 최근 김 위원장이 강원도 원산의 해안 특각(별장)에 비교적 오래 머물렀던 것으로 판단한다. 북한이 보도한 김 위원장의 6월 동선(動線)도 원산에서 멀지 않은 함남 단천, 함남 함주, 강원 고산 등이다. 탈북자 출신의 국책연구소 연구원은 "김정일은 더위에 약한 체질로 알려져 있다"며 "작년 8월 쓰러진 것도 6~7월 무리했던 것과 관련 있는 만큼 올여름에는 최대한 쉬려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통일부는 김 위원장의 올해 현지지도 횟수가 77회로 작년 같은 기간의 50회보다 늘었다고 밝혔다. 남주홍 경기대 교수는 "북한이 김 위원장의 건재를 과시하기 위해 과거 사진을 재탕할 정도라면 그만큼 체재가 불안하다는 증거인 셈"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북·미 간 긴장이 고조될 때 전방부대를 찾아 '대미 항전의지'를 밝히곤 했다. 이번에도 북한이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에 맞서 "우라늄 농축 착수"를 발표했던 지난 14일 "7사단은 미제를 비롯한 제국주의 연합 세력을 물리치는 조국해방전선(6·25전쟁)의 승리로 기개를 떨친 부대"라고 했다. 그래서 "사진 재탕은 긴장 분위기 조성을 위한 고육책"(대북 소식통)이란 견해도 나온다. 정부 핵심당국자는 "김 위원장 건강에 다시 이상이 생겼다는 정보는 없다"며 "그러나 고령에다 뇌혈관에 문제가 생겼었던 만큼 항상 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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