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은 '휙 한 바퀴 돈 뒤 기념사진 찍는' 우리 식의 관광을 하기에 아주 편리하다. 성(聖)소피아 성당, 톱카프 궁전, 블루모스크(술탄 아흐멧 자미) 등 여행가이드북에 등재된 관광명소들이 도심의 한곳에 밀집돼 있기 때문이다. 어슬렁어슬렁 걸어도 불과 며칠이면 볼거리를 다 보고, '오래된 죽은' 건축물들 앞에서 관광객들은 충분히 입이 벌어진다.
이슬람·기독 문명의 충돌 현장
하지만 이 도시에서 한때 벌어진 기독교문명과 이슬람문명 간의 대격돌을 실감하려면, 약간의 '역사 지식'을 미리 챙길 필요가 있다. 그럴 경우 눈의 즐거움 말고 다른 차원의 즐거움도 얻을 것이다. 이 도시야말로 과거를 아는 만큼 현재가 보이고 지적(知的) 감흥이 배가된다.
이스탄불행(行)을 택한 이들의 취향은 제각기 다를 것이다. 이런 코스를 권하고 싶다. 먼저 '파노라마(panorama) 박물관'을 가보는 것이 좋다. 작년 말 완공된 이 박물관은 바깥에서 보면 별로 특징이 없다. 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가, 그 안에서 전율을 느낀다. 거대한 돔 형태의 입체공간 화면에 오스만제국이 동로마제국을 멸망시키는 장면(1453년 3~5월)을 '파노라마'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박물관 안에는 550년 전의 병사들이 다시 살아나온 것처럼 수레를 끌고 대포에 탄약을 장착한다. 장군은 말 등에서 지휘하고, 병졸들은 성 위에서 쇳물을 붓는다.
8만의 병력으로 이 도시(콘스탄티노플 혹은 비잔틴으로 명명)를 침공한 오스만 군대. 이에 맞선 동로마(기독교 연합)군대는 4만5천명. 하지만 바다를 양쪽에 낀 이 도시의 지형은 수적 불리를 상쇄했다. 더욱이 '바다의 용병(傭兵)' 제노바와 베네치아군 선단(船團)이 보스포루스 해협을 방어하고 있다. 배가 산으로 간다? 오스만 군대는 육지에서 80척의 배를 레일로 이동시켜 해상방어선을 피해 인접 항구에 정박시킨다….
이 전투로 당시 유럽의 상징인 동로마제국은 멸망했다. 이슬람은 기독교의 땅에 교두보를 만들었다. 세계지도에서 보듯이 이스탄불은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객관적 입장에서 이 박물관을 감상하지만 유럽 관광객들은 과연 어떻게 느낄까.
당시 오스만제국은 기독교제국을 함락시키고 이슬람화하려고 했지만, 지금 터키는 유럽연합(EU)의 일원이 되기 위해 염원하고 있는 중이다. 이번 여행도 '2010년 유럽문화도시'로 선정된 이스탄불시(市)의 초청으로 이뤄진 것이다. 터키는 유럽일까, 중동 아시아일까?
동로마제국을 멸망시킨 오스만 제국의 왕은 메흐멧(Mehmet) 2세, 당시 21세였다. 그는 '파티(Fatih:정복자)'라는 애칭을 받았다. 그는 불가리아 등도 정복했고, 49세로 숨졌다. 도심을 걸으면 골목이나 건축물 이름에 'Fatih'라는 단어를 많이 볼 수 있다. 메흐멧 2세는 이스탄불을 함락시킨 뒤 제일 먼저 성소피아 성당으로 갔다고 한다. 소피아 성당은 기독교의 심벌이었다. 메흐멧 2세는 그 성당을 파괴하지 않고 용도를 이슬람 사원으로 바꿔놓았다. 기독교 성당에서 이슬람 의식이 행해졌다는 뜻이다. 성당 옆에 이슬람 사원에 부속되는 첨탑 4개를 세워 그 취지를 확실히 했다.
산으로 배 끌고가 비잔틴 함락
소피아 성당은 우여곡절이 많은 건축물이다. 처음 지어진 게 360년이었지만, 불에 타서 다시 짓고 무너져서 다시 짓는 과정을 거쳤다. 소피아 성당은 이슬람의 손에 넘어갔을 때보다, 1204년 십자군에 의해 점령됐을 때 약탈과 훼손이 더 심했다고 한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블루모스크(술탄 아흐멧 자미)는 성 소피아 성당 바로 앞에 있다. 이 모스크는 오스만 제국의 자존심으로, 소피아 성당을 능가하겠다며 건축된 것이다. 하지만 이방인이 밤중에 이곳을 산책하면 어느 쪽이 소피아 성당이고 블루모스크인지 혼동된다. 첨탑의 수로 구별하면 쉽다. 통상 이슬람 사원의 첨탑은 4개인데, 여기는 6개다. 일설에는 술탄이 첨탑을 '금(알튼)'으로 만들라고 명령했는데, '여섯(알트)'으로 잘못 알아듣고 지었다고 한다. 1609년에 착공돼 1616년 완공됐다.
이 부근에 있는 고대로마의 취수장인 '예레바탄 사르느즈', 술탄들이 쭉 거처했던 톱카프 궁전, 터키 전역에서 발굴된 고대 그리스와 로마 유적을 볼 수 있는 고고학박물관도 꼭 한 번 들를 만하다.
마지막으로 이스탄불 도심 깊숙이 들어오는 바닷물길인 골든호른과 보스포루스 해협을 다니는 유람선을 탔다. 뱃전에 서 보면 한때 문명사적 전투가 벌어졌던 이 해상의 물살이 얼마나 거칠고 센지 알 수 있다. 탑승시간은 하루 종일도 있지만 체력을 생각한다면 1시간30분(90리라=약 8000원)이 적당하다.
'고등어 케밥' 안 먹어보면 후회
골든호른을 가로지르는 갈라타 다리 부근은 도심에서 가장 붐비는 곳이다. 특히 다리 위에는 사람들이 일렬횡대로 선 것처럼 줄을 서서 바다 아래로 낚싯줄을 떨어뜨리는 진풍경을 연출한다. 다리 아래에는 생선구이 레스토랑들이 연기를 피운다. 길거리에서 맛볼 음식으로는 '터키식 햄버거'인 케밥 중 구운 고등어 한쪽을 빵에 끼워주는 '고등어 케밥'을 추천하고 싶다.
나는 이렇게 한 바퀴 관광을 한 뒤로 남은 일정은 해변에 앉아 한가롭게 바다를 구경했다. 햇살이 내리쬐는 바다를 보고 있으면, 국가든 인간이든 흥망성쇠는 역사책의 활자만으로 다 전해지지 못한다는 것을 문득 깨닫게 된다. 끝으로 이 해변에는 '자유를 찾아 집을 나온' 고양이들이 많았다. 무심코 대했던 이 고양이들도 이스탄불의 명물이었다. 기념품 가게에는 흙으로 빚은 형형색색의 고양이들이 앉아 있었다. 문의 터키관광청 한국홍보사무소 (02) 336-3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