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칼럼] 인간을 깨우친 존엄사

입력 2009.06.26 21:45 | 수정 2009.06.26 23:28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의사

위(胃) 수술만 20여 년간 해온 유명 대학병원의 외과 K교수에게 들은 얘기다. 한번은 위암으로 진단된 환자가 진료실에 왔단다. 환자는 60대 초반의 가장이었다. K교수는 환자의 암이 얼마나 퍼졌나 CT도 찍고 초음파 검사도 했다. 그 결과, 암 덩어리가 제법 크지만 다른 곳으로 전이된 흔적이 없어 수술을 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정작 수술실에서 환자의 배를 열어보니, 좁쌀만한 암 조각들이 배 안 곳곳에 퍼져 있었다. 크기가 작아서 CT에서는 감지되지 않았던 것이다.

암이 다 퍼진 상태에서는 수술을 해도 소용 없기에 K교수는 연 배를 다시 꿰매고 수술을 마쳤다. 그리고는 환자 부인을 불러서 손쓸 수 없는 상태니 집에 모시고 가서 여생을 편히 보내게 하라고 말했다. 이후 K교수는 이 환자를 잊고 지냈다. 그러다 6개월 뒤, K교수의 진료실로 환자가 웃으면서 들어왔다. "교수님이 잘 치료해준 덕분에 제가 이렇게 건강하게 지내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아뿔싸!

환자의 부인에게 자초지종을 물어봤다. 부인은 퇴원을 하면서 남편에게 말기 암 상태라는 사실을 숨기고 수술이 잘 됐으니 집에 가서 푹 쉬면 된다고 했단다. 그런데 남편의 몸 상태가 하루가 다르게 좋아지면서 괜찮아졌다는 것이다. 최근 동네 병원에서 초음파 검사를 받아보니 암이 안 보인다는 얘기를 듣고 감사 인사차 들렀다는 얘기다. 진료가 끝나고 K교수가 외국 논문을 뒤져보니 극히 드물게 암이 자연 치유되는 사례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사람 몸이라는 게 알다가도 모를 일이야~"라며 본의 아니게 '명의(名醫)'가 된 사연을 기자에게 전했다.

이번엔 기자가 대학병원에 있을 때 겪은 일이다. 나이 지긋한 시골 노인이 속이 안 좋아 검사를 받으러 왔는데, 자신은 1970년대 간암에 걸렸었다고 했다. 암 덩어리가 너무 커서 병원에서 포기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멀쩡하게 잘살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검사를 해보니 간에는 15㎝ 크기의 커다란 종양이 불쑥 나와 있었다. 정밀검사를 해보니 치료가 필요 없는, 그냥 놔둬도 되는 혈관종이었다. 아마도 당시 의학 수준으로는 정확한 진단이 불가능했기에 '불치의 간암'으로 진단받았을 것이다.

경험이 많은 의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분명히 살 사람이 죽을 때가 있고, 반대로 죽을 사람이 살 때도 꽤 많다고 한다. 그만큼 인간의 몸은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변수가 많다는 것이다. 물론 개중에는 '간암 노인'처럼 진단이 정확하지 않아서 그렇게 착각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런 변수들은 훗날 의학이 더 발달해서 명쾌하게 설명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동안 막연히 체질 탓으로 여겼던 것들이 요즘 유전자 의학의 발달로 개인 유전자 특성 차이로 분류되듯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의학 수준에서는 여전히 모르는 것이 많다. 심장수술만 수천 건을 해서 '최고'라고 자부했던 어느 흉부외과의사는 모든 환자의 심장이 나름대로 특이한 모양을 하면서 오묘하게 박동하는 것을 경험하고는 "하나님~, 제가 졌습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인간의 몸은 신비롭지만 의료는 아직 거기에 모자란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법원의 판결로 '존엄사'를 시행한 김 할머니(77)가 인공호흡기 없이도 꿋꿋하게 생명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다. 많은 사람들은 의학은 수학과 같은 것이어서 예측 가능하고 자로 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길 바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런 기대에 못 미치는 게 인간의 의학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몸의 움직임이 있고 그것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 새삼 인간 생명의 존귀함이 느껴진다. 그렇기에 인간을 다루는 법과 제도가 더 겸손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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