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시대라고 한다. 하루에 수십통의 휴대폰 문자를 주고받고, 컴퓨터 메신저와 이메일 없이는 불안하며, 포털 사이트의 토론방은 갑론을박으로 뜨겁다. 말의 물꼬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지고 있지만 양적 성장이 질적 도약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다변(多辯)과 고성(高聲)이 불통(不通)을 빚어내는 형국이다.
그런 면에서 KBS 전직 아나운서인 유정아(41)씨의 《유정아의 서울대 말하기 강의》(문학동네)는 시의적절하다. 호감을 얻고 상대를 설득하는 '기술'이 아닌, '타인과 소통하기'라는 말하기의 본령을 고민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유씨가 2004년부터 5년간 모교이기도 한 서울대에서 말하기 강의를 진행했던 현장 경험을 기반으로 했다.
"수강 신청이 열리면 10초 만에 30명 정원이 꽉 찼어요. 무서운 기세로 수강 신청을 해오는 학생들을 보면서 제대로 된 말하기에 대한 욕구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했죠."
말을 잘하지 못하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는 것이 유씨의 설명이다. 평소 여러 주제에 대해 생각해 본 경험이 없거나, 상대의 말을 건성으로 듣고 감정이입(感情移入)을 못해도 대화는 겉돈다. 창의력 없는 진부한 말 역시 소통을 막는다. 듣는 쪽의 마음을 열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씨는 "자신의 문제를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말하기에 대한 막연한 공포는 극복할 수 있다"고 했다.
말에서 더 이상의 전문가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유씨의 경력은 화려하다. 1989년 KBS 아나운서로 입사해 9시 뉴스와 '열린 음악회' 등을 진행했고, 1997년 퇴사한 후 지금까지 프리랜서로 다수의 방송진행을 맡고 있다. 세련된 외모, 단어 하나 허투루 쓰일까 조심하는 이 전직 아나운서도 일대일 대화만큼은 여전히 어렵다.
"욱하는 성격 때문이죠. 내 딴엔 바른말이라고 해놓고 후회하거든요. 어릴 때는 '사람이 꼭 말을 해야 아나'는 식이었어요. 혼자 있는 시간이 더 좋았고, 조잘조잘 떠드는 애들을 이해하지 못했죠. 그러다 방송을 하면서 말하기를 통해 나 자신이 열렸어요. 말을 잘 못하는 사람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저 자신이 잘 알기 때문에 이런 책도 쓸 수 있는 겁니다."
그는 말하기에서 100% 만족할 수 있는 상황은 없다고 했다. 남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를 의식하기보다, 상대와 무엇을 나눌 수 있을지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절반 이상은 성공이다. 정교한 논리, 정확한 발음보다 중요한 것은 상대와의 교감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에 출마했을 때,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과 토론을 벌였죠. 김 의원은 젊고 달변가였지만, 토론은 이 대통령의 압도적인 승리였어요. 어눌하고 목소리도 갈라졌는데 말이죠. 부족한 듯 낮은 모습에 대중이 매혹된 겁니다. 그때와 비교해보면 지금 이 대통령은 자신감에 넘쳐 상대의 말을 잘 듣는 것 같지 않아요. 교감이 없는 리더의 말은 허공을 맴돌 뿐이죠."
책은 연설·대화·토론·발표 등 다양한 상황에서의 말하기 방법을 소개한다. 누구나 대화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공통점, 1분 안에 나를 기억하게 하는 방법 등은 실전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유정아만의 비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