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금'과 'JSA'가 만났네 '선덕여왕'이 활짝 웃었네

조선일보
  • 최승현 기자
    입력 2009.06.26 03:41

    여의도 작업실에서 공동 집필중인 작가 김영현·박상연씨

    방송 10회 만에 30%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 중인 MBC TV 사극 '선덕여왕'. 여걸 미실(고현정)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궁중 내 정치적 암투, 잔혹한 만큼 현실적인 전쟁 장면, 흥미로운 화랑들의 생활상 등이 짜임새 있게 펼쳐지고 있다. 어디까지가 사실이냐는 논란도 뜨겁게 이어지고 있는 상태.

    신라시대 여성 영웅 중심의 이 드라마는 조선 시대 의녀 장금이의 성공기를 다룬 '대장금'을 쓴 김영현 작가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끌고 있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화려한 휴가'의 시나리오 작가 박상연씨가 공동 집필자. 서울 여의도 KBS 신관 앞 아파트에 작업실을 차린 채 대본을 쓰고 있는 이들을 23일 오후 만났다.

    ‘선덕여왕’을 함께 쓰고 있는 김영현(왼쪽), 박상연 작가. 김 작가는 “‘대장금’을 쓸 때도 상연씨가 일주일에 한 번 8시간씩 하는 회의에 참석해 숱한 아이디어를 제공했다”며 “잘 나가던 시나리오 작가가 돈도 안 받고 그런 도움을 줘서 고마웠다”고 말했다./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초반부터 시청률 상승세가 무섭다. 기분이 어떤가?

    "고현정씨의 힘이 컸던 것 같다. 캐릭터를 잘 구축해줬다. 그런데 어제(22일)가 성인이 등장하는 첫 회였는데 시청률이 조금 떨어져서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정말 엄태웅(김유신)씨가 아역 배우와 잘 연결이 안 되나?"(김)

    ―극 초반, 미실의 카리스마는 대단하다. 혹시 미실이라는 인물을 먼저 염두에 두고 드라마를 기획했던 건 아닌가?

    "그렇지 않다. 김별아씨의 소설 '미실'의 판권을 사려다 실패했다는 말도 있던데 전혀 그런 일이 없다. 선덕여왕을 공부하다 미실이라는 걸출한 인물을 알게 됐을 뿐이다."(김)

    ―진위논란이 있는 '화랑세기' 필사본에서 미실은 성(性)을 활용해 권력자가 된 여인이다. 그 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줄 생각은 없었나?

    "드라마에는 표현의 수위가 있지 않나? 극 초반 말로 설명하는 수준으로 마무리했다. 시청자들이 다처다부제나 근친혼 등의 설정에 혼란스러워할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김) "우리는 다른 차원에서 미실이 신라를 좌지우지하는 힘의 원천이 무엇인지 보여줄 것이다. 지금도 드라마 속 미실은 외교·행정·군사를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지 않나?"(박)

    ―미실은 어떤 인물이라고 생각하나?

    "강해 보이지만 사실은 가련하고 슬픈 인물. 미실은 어떤 면에서는 선덕여왕보다 더 뛰어난 머리, 인맥, 권력을 갖고 있었지만 왕을 꿈꿔 본 적이 없다. 왕후만을 바랐을 뿐이다. 시대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선덕은 최초의 여성 왕이 됨으로써 역사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버리지 않았나? 미실은 권력욕보다 여자로서 사랑받고 싶은 욕망이 더 강했던 건 아닐까?"(박) "미실이 유일하게 갖고 있지 못했던 것은 바로 골품이다. 신분적 한계가 그녀의 발목을 잡았던 측면도 있다. 뒤에 나오겠지만 자신이 외면한 아들 비담과의 관계에서도 비극적 상황이 연출된다."(김)

    MBC ‘선덕여왕’
    ―'화랑세기' 필사본이 위작이라면 미실이라는 인물은 실존의 근거가 사라진다.

    "논란이 커질수록 드라마로서는 도움이 된다. 하하. 하인리히 슐리만이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읽고 트로이 등 고대 유적을 발견했듯, 이 드라마에 감명 받은 어린 시청자가 훗날 '화랑세기' 진본을 찾아낸다면 또 얼마나 뜻 깊은 일이겠는가? 이건 한 인터넷 기사에서 본 내용인데 내 마음이 딱 그렇다."(김)

    ―왜 신라인가. 고대 사극의 트렌드는 꽤 오랫동안 고구려였는데….

    "맞다. 고구려 사극 3종 세트까지 나오지 않았나? '대조영', '주몽', '연개소문'. 그 과정에서 어느덧 신라는 고구려를 무너뜨린 나쁜 나라가 돼 있었다. 많이 고민했다. 하지만 신라가 진흥왕 때부터 100여년간 삼국통일을 준비해왔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강한 메시지를 줬다. 그 강성했던 나라 고구려는 왜 삼국통일을 이루지 못했을까? 그들은 아마도 신라처럼 꿈을 꾸지 않았기 때문 아닐까?"(박) "그렇다. 선덕여왕은 불가능해 보였던 신라의 꿈, 삼국통일을 이루는 데 핵심이 됐던 김춘추, 김유신 두 인재를 길러낸 왕이다. 사람을 키워내는 지도자로서 선덕여왕의 힘을 보여주고 싶다. 우리나라도 신라처럼 좀 긴 안목으로 뭔가를 준비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고."

    "'대장금'이 어떤 의미냐"고 김 작가에게 묻자 "명예이자 멍에"라는 답이 왔다. "자다가도 웃음이 나오지만, 너무 잘 된 자식의 그늘 때문에 다른 자식들이 가리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다"는 것이다. 박 작가는 "최근 전쟁영화 시나리오 한 편을 썼는데 워낙 급하다 보니 영화 속 전쟁 장면 구성을 거의 그대로 드라마에 가져다 쓰기도 했다"며 "그래도 매회 시청자, 배우들과 교감하면서 대본을 쓴다는 일이 아주 흥미롭다"고 했다. 두 작가는 매일 오후 7시에 작업실에 출근해 다음 날 아침 7시에 퇴근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10년 지기인 두 사람은 최근 예민해져 부쩍 다투는 경우가 많아졌다. 일을 시작하면서 김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제 서로에게 위로를 해 줄 수 없으니까 친구가 될 수는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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