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에게] 존엄사 논의, 이제부터다

조선일보
  • 이경권 분당서울대병원 법무전담 교수·변호사
    입력 2009.06.24 23:50

    이경권 분당서울대병원 법무전담 교수·변호사

    나폴레옹에 대한 농담이 한때 유행했다. 알프스를 오르던 나폴레옹이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나를 따르라! (한참 후 혼잣말로) 어, 이 산이 아닌가?"

    '첫 존엄사 집행'이라며 온 국민의 관심이 쏠린 가운데 김 할머니의 호흡기를 제거했으나, 여전히 그의 생명이 이어지자(24일자 A1·12면), 모두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김 할머니 가족측은 자기결정권을, 의료계는 회복 가능성이 없음을 근거로, 그리고 대법원은 그 두 가지를 종합하여 호흡기 제거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했다. 특히 대법원은 의식 회복 불가, 중요한 생체 기능의 상실, 짧은 시간 내에 사망할 것이라는 조건이 충족되어 김 할머니의 경우가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짧은 시간'이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의 시간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이 사건과 관련된 거의 모든 사람이 서너 시간, 길어야 24시간 이내에 사망할 것으로 생각한 듯하다. 병원에서는 임종예배를 진행하고 부검을 준비하였으며, 환자의 가족들도 검은색 정장을 입고 눈물을 흘리며 할머니께 "천국으로 가시라" 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김 할머니는 법률적으로도 명백히 살아 있다. 법원의 판결에 따라 호흡기를 제거한 이상, 돌아가시지 않는다고 하여 수액이나 영양액 공급을 중단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환자측이 의도했던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죽을 권리"는 진정으로 실현된 것은 아니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 사회가 수많은 공청회, 토론회, 입법안 마련, 여론조사와 같은 사회적 에너지를 쏟아 부어 진행해 온 일이 미수에 그친 것 아닌가. 의학의 불완전성, 대법원 판결의 허점, 호흡기를 제거해도 생존 가능성이 꽤 있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밝히는 언론 등에 대하여 잘잘못을 따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꽤 오래된 논란거리인 안락사나 존엄사와 같은 '인간다운 죽음'에 대해 이번 기회에 제대로 논의를 해야 한다. 사회적 합의와 해결책을 이끌어 내야 한다. 지금처럼 대다수의 사회 구성원이 '죽음의 방식'이라는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는 기회가 다시 오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서두의 나폴레옹처럼 독단으로 군대 전체를 잘못된 길로 이끄는 우(愚)를 범하지 않으려면 전체 구성원의 합의가 필요하다. 죽음에 관한 문제는 입법이나 정책 또는 의료·법조계의 판단만으론 결정될 수 없다. 설사 결정된다 하더라도 사회 다수 구성원의 동의를 얻지 못할 경우 실효를 거둘 수 없기 때문이다. 대한의사협회나 대한의학회가 이전에 제시한 가이드라인이 제대로 작용하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존엄사'에 대한 진정한 논의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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