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 & 피플] 자원 부국 아제르바이잔, 한국에 손짓하는 까닭은

입력 2009.06.23 02:56 | 수정 2009.06.23 03:15

'자원에 의존, 제조업 쇠퇴' 현상
"석유는 목표 도달 위한 도구" IT·교육 등에 과감한 재투자

바쿠(아제르바이잔)=김연주 기자
아제르바이잔 경제 전망을 묻자 카말라딘 헤이다로브(Heydarov) 비상대책부 장관은 대뜸 수도인 바쿠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자신의 집무실 통유리창의 커튼을 활짝 열어젖혔다. 유리 너머에는 수십개의 크레인이 움직이고 있었다. "밖을 보면 알겠죠? 우리는 불황을 몰라요. 앞으로도 무제한 성장할 것입니다."

지난 12일, 바쿠는 도시 전체가 건설현장 같았다. 시내 곳곳에 들어선 분수와 울창한 수풀이 우거진 공원들 옆으로 고층빌딩들이 계속 올라서고 있었고, 카스피해 연안에서는 밤늦게까지 공사 소리가 들렸다.

아제르바이잔의 이런 부(富)는 석유와 천연가스, 그리고 이 에너지를 서방과 연결하는 파이프라인들에서 흘러나온다. 4년 전 카스피해의 석유를 지중해로 운송하는 'BTC 파이프라인'이 놓인 이후 아제르바이잔은 돈방석에 올라앉았다. 2005년 5월 완공된 BTC 라인은 바쿠(Baku)~그루지야 트빌리시(Tbilisi)~터키 세이한(Ceyhan) 3국을 잇는 길이 1768㎞의 석유관이다. 아제르바이잔엔 모두 7개의 석유·가스관이 지난다. '제2의 중동'으로 불리는 카스피해에서 생산되는 석유와 가스는 이 파이프라인들을 통해 서방 등으로 배달된다. 미국과 유럽, 러시아 등은 지금도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파이프라인을 놓기 위해, 카스피해 지역에서 총성(銃聲) 없는 전쟁을 벌인다. 그 한복판에 아제르바이잔이 있다.

1일 100만배럴을 수송하는 BTC 라인이 서방에 주는 최대 이점은 중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러시아 땅을 지나지 않는 석유관이라는 점이다. 러시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얘기다. 아제르바이잔 국영석유회사인 소카르(SOCAR)의 엘샤드 나시로브(Nassirov) 부사장은 "중앙아시아의 석유는 아제르바이잔·이란·러시아를 지나는 파이프라인으로 운송될 수밖에 없는데, 미국은 이란·러시아와 협조하길 원치 않는다. 아제르바이잔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여기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최대 160만배럴까지 수송량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 남쪽 55㎞ 지점의 ‘상가찰 오일·가스 터미널’. 카스피해 연안에서 채굴한 석유와 가스를 파이프라인을 통해 내보내는 곳으로, BTC 파이프라인의 출발점이다./소카르(SOCAR·아제르바이잔 국영석유기업)제공
아제르바이잔 정부는 BTC 파이프라인의 지분 25%를 소유한다. 30.1%를 차지한 BP에 이어 두 번째 대주주다. BTC·BTE(바쿠~트빌리시~터키 에르주룸) 가스관 등 7개 파이프라인으로부터 정부가 벌어들이는 수입은 연간 수십억달러에 달한다.

덕분에 아제르바이잔은 2000년대 초부터 높은 경제성장을 거듭했다. 글로벌 경기침체 속에서도, 작년에 10% 성장했다. 그러나 갑자기 국부(國富)가 늘면서, 아제르바이잔의 고민도 함께 시작됐다. 자칫하면 지하자원에만 의존해 제조업이 쇠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내부에선 '네덜란드 병(病·Dutch disease)' '자원의 저주'를 경계하는 목소리가 높다. 네덜란드 병은 1959년 북해(北海)의 천연가스전이 발견된 이래, 네덜란드 경제가 폐쇄적으로 바뀌고 제조업이 경쟁력을 상실했던 현상을 일컬어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만든 조어(造語)다.

일함 알리예프(Aliyev)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이 "석유는 우리의 '목표'가 아니라,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라고 강조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아제르바이잔외국어대 한국어학과 최호 교수는 "수년 전부터 이곳 언론에선 '네덜란드 병을 조심해야 한다'는 보도가 많다"며, "그게 마치 국가의 모토(motto)로 보일 정도"라고 말했다.

이 탓에 아제르바이잔은 수년 전부터 '사업 다각화(多角化)'에 전력을 쏟고 있다. 석유 수입을 건설·농업·IT·교육·관광 등 비(非)석유 분야에 재투자해 '제2의 성장동력(動力)'을 찾겠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은 박티야 학웨르디(Hagverdi)는 "점점 더 많은 아제르바이잔 젊은이들이 한국의 문화와 경제 발전을 배우기 위해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으로 유학을 간다"며 "다양한 선진 학문을 배운 학생들이 앞으로 아제르바이잔의 여러 분야를 이끌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사업 다각화의 결과로, 올해 1분기 석유 분야가 4.3% 성장한 데 비해, 비(非)석유 분야는 13.7% 성장했다. 중점 분야 중 하나인 관광의 경우는 2007년 100만명에 그쳤던 관광객이 작년 150만 명으로 늘었다.

아제르바이잔은 석유 수입을 관리하기 위해 1999년 국가 석유 기금인 '스테이트오일펀드(SOFAR)'를 설립하고, 2003년 구(舊)소련 국가 중 가장 먼저 '채굴산업투명성기구(EITI)'에 가입했다. EITI 가입국은 매년 자원 개발과 관련한 수입 등을 담은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중앙아시아의 자원 부국인 카자흐스탄도 2007년에야 EITI에 가입했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아제르바이잔과 카자흐스탄은 EITI에 가입함으로써 석유 수입의 투명한 경영 부문에서 큰 진전을 이뤘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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