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실업 많다는데… 못믿을 대학 취업률

입력 2009.06.15 02:38 | 수정 2009.06.15 09:08

정부지원금 받고 신입생 유치위해
일용직 아르바이트도취업자로 '뻥튀기'

올 2월 경기도 소재 A전문대학(2008년 취업률 70%대)을 졸업한 신모(25)씨는 얼마 전 모교 학과 사무실에서 '황당한' 전화를 받았다.

"전체 학과 중 우리 과 취업률이 꼴등이니 혹시 학교에서 전화가 오면 ○○회사에 취업했다고 말해달라"는 것이었다. 귀찮은 마음에 신씨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며칠 후 학교에서 취업 여부를 묻는 전화가 왔고 신씨는 취업했다고 말했다. 졸업 후 아르바이트조차 한 번 해본 적이 없는 그는 전화 한 통화에 졸지에 '취업자'가 됐다.

청년 실업 한파 속에 일부 대학들의 '취업률 부풀리기'가 심각하다. 대학들이 국고지원금과 신입생 유치를 위해 졸업생 취업률을 억지로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해 12월부터 '대학알리미'(www.academyinfo.go.kr) 홈페이지를 통해 대학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각 대학이 입력한 내용을 기초로 공개된 자료이다. 지난해 첫 정보공개 후 "엉터리 취업률이 많다"는 비판이 일자, 정부는 올해부터 취업률 통계를 철저히 검증해 공개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일선 학교에서는 정부의 눈을 피해 여전히 '취업률 뻥튀기'를 다양하게 시도하고 있다.

◆실업자 울리는 '모교(母校)의 전화'

인천 B전문대(지난해 취업률 90%대) 졸업생 유모(25)씨는 현재 취업 준비 중이다. 졸업 직후 한 인테리어 회사에 비정규직으로 취업했던 유씨는 낮은 봉급(월급 70만원)과 의료보험 가입혜택조차 없는 직장에 실망했고, 취업 일주일 만에 회사를 그만뒀다.

그런데 지난달 말 모교에서 취업 여부를 묻는 전화가 유씨에게 걸려왔다. "회사를 그만뒀다"고 유씨가 대답하자, 학과 조교는 "아직 다니는 것처럼 재직 증명서를 떼서 보내달라"고 했다. 재직증명서를 첨부해서 취업률을 높이려는 것이었다.

그 후 2주 동안 유씨는 모교에서 걸려오는 전화에 시달려야 했다. 유씨는 "안 그래도 재취업이 안 돼 고민인데 기억하기도 싫은 직장의 재직증명서를 요구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4년제 대학 졸업생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2월 지방 C대학(2008년 취업률 70%대)을 졸업한 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김모(여·24)씨도 최근 학교에서 전화를 받았다. 학과 조교가 "학교 취업률이 너무 낮게 나오는데 취업자로 입력해도 되겠느냐"고 물어온 것이다. 김씨는 "주변에 취업 안 된 친구들도 대부분 학교에서 비슷한 전화를 받았다"고 전했다.

비(非)수도권의 한 대학에서 학생들이 취업특강 안내문이 붙은 게시판 옆을 지나가고 있다. 지난해 교과부 공시 자료에선 4년제 대학의 절반 이상이 졸업생 취업률 70%를 넘겼지만, 적지 않은 대학‘취업률 부풀리기’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민봉기 기자 bong85@chosun.com

조직적으로 이뤄지는 '취업률 조작'

경기도 D전문대 조교 조모씨는 '취업률 부풀리기'가 실제 학교단위에서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학교에서 과별로 80%대 취업률을 목표로 정하면 통계 기준 시점(4월 1일)을 기준으로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권장하는 방법으로 취업률을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또 교수가 인맥을 이용해 잘 아는 기업체에 졸업생 명의의 재직 증명서를 요구하고, 해당 학생과 조교·교수가 입을 맞춰 서류상 취업자를 '양산(量産)'하기도 한다.

교내 창업보육센터를 이용하기도 한다. 충남의 4년제 E대학은 졸업생들을 교내 창업보육센터에 입주한 기업에 '위장 취업'시켜 취업률을 높이고 있다. 이 대학 조교 서모씨는 "다른 학교들도 이런 식으로 취업률을 높인다"며 "전체 취업자 중 5% 정도는 이렇게 취업자로 분류된다"고 밝혔다.

◆정부 지원금 확보경쟁 때문

대학들이 이렇게 취업률을 허위로 높이려 하는 이유는 '돈' 때문이다. 한 해 50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교과부의 '대학· 전문대학 교육역량 강화사업'에서 정부 지원금을 많이 받으려면 졸업생 취업률이 높아야 한다. 평가 항목 중 취업률 지표가 25%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신입생 유치 때문. 입학생을 정원의 50%도 채우지 못하는 학교가 속출하는 상황에서, '취업률 ○○%'라는 홍보문구는 신입생을 끌어들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학들은 '취업률 부풀리기'를 위해 취업률 산출방식의 허점을 이용한다.

교육과학기술부는 매년 전국 400여개 대학(전문대 포함) 졸업자에 대해 정규직 취업자와 비정규직 취업자·자영업자·진학자 등으로 분류해 공개한다. 여기서 취업자란 '주 18시간 일하고 일정한 보수를 받는 자'이며, 조사 기준일은 4월1일이다.

때문에 대학들은 4월1일이 속한 주에 18시간 일을 하고 일정한 보수를 받는 졸업생을 최대한 많이 나오도록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한다. 이 기간에 졸업생이 아르바이트를 하도록 하든지, 교수가 아는 회사에 위장 취업을 시켜 재직증명서를 발급받도록 하는 식이다.

"샘플링 전화 체크하겠다"

지난해 말 공개된 대학 취업률 통계의 신뢰도가 문제 되자, 정부는 올해부터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해 각 대학 졸업생의 정규직 취업 여부를 검증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건강보험공단에서 파악되지 않는 업체에서 일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졸업생들에 대해서는 취업여부를 검증할 방법이 별로 없다.

교과부 관계자는 "취업자와 회사를 대상으로 (취업여부) 샘플링 전화조사를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검증과정을 거쳐도 대학의 취업률 부풀리기를 원천적으로 막기는 힘들 것이라는 게 대학과 교과부의 공통된 예측이다. 올해 대학별 취업률은 오는 9월 공개된다.

청년 실업 한파 속에 일부 대학들의 '취업률 부풀리기'가 심각하다. 대학들이 국고지원금과 신입생 유치를 위해 졸업생 취업률을 억지로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대학생과 대학 관계자를 인터뷰 했다. / 사진부 민봉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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