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탓만 한 인생… 이젠 행복의 노래 불러야죠"

조선일보
  • 송혜진 기자
    입력 2009.06.15 02:46

    데뷔 30주년 맞아 콘서트 여는 가수 심수봉

    "그래서 사랑을 찾으셨나요…?"

    가수 심수봉(54)은 희미하게 웃었다. "글쎄요. 아직 사람에게선 찾지 못한 것 같네요. 그래서 제가 아직 노래를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죠." 일렁임 없는 호수처럼 평온하고 잔잔한 목소리. 그녀는 "평생 사랑을 찾아 헤맸고, 그만큼 상처도 많이 받았지만 정작 사랑을 주는 법은 몰랐던 것 같다"고 했다.

    가수 심수봉이 데뷔 30주년을 맞아 새 앨범 '뷰티풀 러브(Beautiful Love)'를 내고 17~1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기념 공연을 연다. 지금까지 전국 5개 도시를 돌며 공연했다. 작년부터 다시 배우기 시작한 드럼을 직접 연주하며 노래하고 있다. 북한 가요, 이스라엘 노래도 번안해 부른다. 심수봉의 표현을 빌리면, "데뷔 30년을 맞아서야 진짜 변화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심수봉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서러운 기억을 떠올리지 않고, 피해의식 한 점 없이 맑은 마음으로 노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신중하게 단어를 골랐고, 말 한마디 한마디에 힘을 주어 또박또박 발음했다. 자신이 하는 말이 오해되고 곡해될까 두려워하는 사람처럼.

    지난 25주년 기념 공연을 가질 당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난 지금껏 한 번도 무대 한가운데 서 본 적이 없다"고 심경을 토로했던 그다. 1980년대는 10·26 때문에, 1990년대엔 사생활(이혼)문제 때문에 제대로 활동하지 못했다는 설명이었다. 심수봉은 "25주년 때까지만 해도 마음이 많이 불안했었다"고 말했다.

    "아주 최근에서야 깨달았어요. 난 슬퍼할 필요가 없었다는 걸. 날 괴롭히던 사건, 사람들, 권력 집단 때문에 늘 분노하고 남의 탓만 하고 살았어요. 한데 돌아보니 난 이런 약점을 모두 덮고도 남을 만큼 대중에게 사랑받고 있었어요. 내가 도망치려 하고 숨을 때조차 사람들은 내 노래를 부르고 있었죠." 말을 마친 입가엔 조용한 미소가 걸렸다.

    “사람들이 요즘 저보고 얼굴이 달라졌대요. 맘이 편해지면서 얼굴도 환해졌다는 거죠.”17~1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30주년 기념 공연을 여는 가수 심수봉. 그는 “최근에야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날을 맞게 됐다”며 가만히 미소 지었다./정경렬 기자 krchung@chosun.com

    1978년 '그때 그 사람'을 부르며 데뷔, 우리나라 가요사에서 최초의 여자 트로트 싱어송라이터 기록을 갖고 있는 그녀다.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자랐지만 재능은 숨길 수가 없었다. 네 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고 10살 이후엔 아코디언·색소폰 연주법도 혼자 터득했다.

    심수봉은 "어릴 땐 난 이렇게 재능이 많은 데 왜 제대로 된 기회를 얻지 못하는 걸까 고민을 참 많이 했다"며 "학창 시절 또래 친구들은 선생님을 짝사랑하거나 남학생과 연애를 하면서 가슴앓이 할 때, 난 스님들을 찾아다니고 경전을 읽으면서 답답증을 달랬다"고 말했다.

    가수가 된 이후에도 삶은 거짓말처럼 그녀를 종종 배반했다. 방송국에서 만나는 남자들은 그녀를 '술시중 상대'로만 취급할 때가 많았다. 10·26을 겪고 난 뒤엔 인터뷰도 안 했는데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PD나 연주자에게 "내 노래를 대충 편곡하지 말고 제대로 연주해달라"고 항의하다 "건방지다"고 얻어맞는 일도 간혹 있었다. 심수봉은 "그런 시절을 견딘 덕에 내 음악이 지금도 생명력을 잃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데뷔 30년 만에 처음으로 매니저와 함께 일하면서 가수 대접을 제대로 받고 있다는 그녀는 이제 편곡과 연주에도 욕심을 내는 중이다. 공연 때 반주를 하는 세션맨도 이젠 직접 오디션을 보고 뽑고,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같은 노래는 공연 때마다 다른 장르로 편곡해서 부르고 있다.

    "오래된 팬 중엔 원래 버전 그대로 부르는 게 제일 좋다면서 왜 자꾸 바꿔 부르냐고 아쉬워하는 사람도 많아요. 하지만 전 똑같은 노래를 수십년째 우려먹고 싶진 않아요. 사람도 변하듯이 노래도 변해야 해요. 그게 창작이잖아요?"

    심수봉은 "내가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이젠 다 알 것 같다"며 "모든 건 결국 신께서 내게 주신 소명이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한땐 이민을 가려고도 했고, 몸이 아파 병원에서 오래 치료받다 보니 약물 의존증이 생겨 중독자가 될 뻔한 때도 있었어요. 죽고 싶은 때도 많았죠. 하지만 끝까지 살아남았고, 살길 잘했단 생각이 들어요. 자살하는 사람들 보면 무척 화가 나요. 나도 살았는데… 왜 그렇게 쉽게 죽어, 라고 말하고 싶죠."

    그는 "그동안 내게 노래가 외롭고 쓸쓸한 내 인생에 바치는 일종의 위로 같은 것이었다면 이젠 소리로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줄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내가 스스로를 사랑해야 나도 제대로 사랑받을 수 있다는 걸, 그땐 왜 몰랐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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