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 VIEW] 도심 휘젓고 경찰 때리면서 "대한민국은 독재국가다!"

조선일보
  • 권대열 기자
    입력 2009.06.13 02:51 | 수정 2009.06.13 04:08

    "TV만 켜면 반정부 목소리 나오는데 독재국가냐"

    2009년 대한민국은 '독재국가'인가. 시대 및 현실과 안 맞아도 한참 맞지 않는 이런 허상(虛像)을 놓고 온 나라가 시끄럽다.

    전직 대통령(DJ)이 공개 강연에서 "독재자에게 아부하지 말라. 모두 들고 일어나야 한다"고 하자, 또 다른 전직 대통령(YS)은 12일 그를 향해 "요설로 국민을 선동하는 그 입을 다물라"고 했다. 청와대와 여당과 야당도 때아닌 이 독재 논란에 종일 열을 올리며 싸웠다. 이쯤 되면 보통 국민들로서는 "지금 우리가 독재국가에 산다는 건가"라고 헷갈릴 만도 한 상황이다. 그럼 과연 대한민국은 진짜로 독재국가 상태에 있는 걸까.

    야당과 좌파 단체들은 지난 10일 서울광장에서 수만명이 모이는 집회를 허가도 안 받고 개최했다. 지난 정권에서도 같은 장소에서 벌어진 비슷한 집회들을 똑같이 불법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경찰은 바로 그 똑같은 법에 따라 '불법집회'로 규정하고도 눈뜨고 구경만 했다. 아니 오히려 시위 참가자들이 경찰에게 고함치고 삿대질하고, 경찰은 눈치만 살폈다. 방송사들은 경찰이 방패만 들면 달려와서 '감시'의 카메라를 경찰 쪽으로 들이댔다. 야권 논리라면 '독재국가'에서는 경찰들이 이렇게 일을 한다는 얘기다.

    또 정부가 사실상 인사권을 갖고 있는 한 공중파 방송사는 그날 메인 뉴스에서 "민주주의 후퇴를 성토하는 국민들 10만여명이 광장에 모였다"고 경찰 추산 2만여명 대신 시위 주최측 집회 규모를 소개하면서 정부 비판 논조의 기사 6꼭지를 잇달아 보도했다. 반면 "불법 폭력은 안 된다"는 대통령 발언은 단신으로 짧게 전했다.

    이처럼 공중파와 케이블 TV 뉴스가 반정부 기조의 방송을 종일 송출하고 있다. 80년대 군사독재 시절에는 '땡전뉴스'라는 것을 매일 틀어대던 방송사가 이렇게 맘 놓고 보도를 하고 있지만 야권과 좌파단체는 지금의 대한민국이 여전히 독재국가라는 것이다.

    정치학자인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는 "정치학적으로 '독재정치'는 결국 민주주의의 대척점에 있는 전체주의 상태를 의미하며 그 가장 핵심적 기준은 자유로운 직접선거와 복수(複數) 정당 제도가 보장되는가 여부"라며 "그런 기준에서 보자면 지금 우리나라는 독재는커녕 그 전 단계인 '권위주의'라고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실제 현상도 그래 보인다. 집권당인 한나라당은 170석의 절대 과반수를 갖고 있다. 과거처럼 체육관 선거로 얻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여야 합의로 만든 국회법이 규정하는 임시국회 개원 날짜가 12일이나 지난 이날도 야당에 "제발 국회로 돌아와 달라"며 호소만 할 뿐 개원할 엄두도 못 냈다.

    거기다 최근 재·보선에서는 5대0으로 지고 다가오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에서도 전패(全敗)를 걱정하며 전전긍긍하고 있다. 선거를 통해 정권을 심판할 수 있는 민주주의 장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또 여당 의원들은 '독재자'를 향해 아무렇지 않게 "오만과 독선의 대통령"이라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학문적 기준으로 보면 참 보기 드문 '독재정당'인 셈이다.

    어쨌든 야권에선 현 정부를 독재로 규정하고 반(反)독재 투쟁과 정권 퇴진 운동으로까지 이어가려 하고 있다. 좌파 단체는 이명박 대통령 탄핵 서명을 시작했고,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는 "이 정권은 종자가 틀려먹었다. 밭을 갈아엎어야 한다"고 했다. 제1야당의 대표적 법률가인 천정배 의원은 "이미 국민은 저항권을 행사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하지만 헌법학자인 허영 헌법재판연구소 이사장은 "헌법학적으로 볼 때 저항권이란 4·19 때처럼 다른 모든 방법으로는 도저히 정권 교체가 불가능할 때 동원되는 '최후 수단성'과 '보충성'을 가져야 한다"며 "지금은 정상적으로 선거가 치러지고 여·야가 수시로 바뀌는데 이런 상황에 저항권 논리를 끌어들이는 것은 견강부회이고 억지"라고 말했다.

    김수한 전 국회의장은 "독재 운운은 코멘트할 가치도 없는 문제"라며 "시청 앞을 시위대가 점령하고 TV만 틀면 반정부 목소리가 나오는데 독재는 무슨 독재냐. 결국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민중봉기를 선동하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87년 6·10항쟁 당시 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를 지낸 김명윤 전 의원도 "나도 야당 오래했지만 야당이 정권을 교체할 능력을 갖출 생각을 해야지, 이런 식의 반정부 투쟁 선동 정치는 곤란하다"며 "여당이 국회를 막고 있는 것도 아닌데 왜 국회 놔두고 서울광장에서 저러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야권의 행동에) 정치적 의도가 없다고 볼 수는 없다"며 "결국 진보세력이 결집해서 이 정부에 저항하라고 하는 것인데, 자꾸 이러면 지역주의와 이념 갈등만 더 커진다"고 했다.

    과거 군사독재 정권에서는 '북한의 도발'이나 '빨갱이' 같은 가공의 위협을 만들어 놓고 국민들을 선동해서 결집시켰다. 상황으로도 이론으로도 맞지 않는 '독재'라는 허상을 세워놓고 국민을 겁주며 선동하는 것 역시 그 같은 군사독재 수법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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