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와인은 포도로만?… 감·사과·양파·오디와인도 있다

  • 김성민
  • 박국희

    입력 : 2009.06.13 03:12 | 수정 : 2009.06.13 18:34

    김성민·박국희 기자'국산 와인'을 찾아서

    나는 포도입니다. 제가 이 땅에서 재배된 것은 1906년 8월부터입니다. 당시 농공상부가 서울 뚝섬에 원예모범장을 설립한 것입니다. 100년 넘는 세월, 사람들은 저를 달게 빨았지요. 제 몸에는 최대 19브릭스(Brix·물 100g에 녹아있는 당분의 g수)까지 나오는 당도(糖度)가 들어있거든요. 2000년대 제 자존심이 꺾였습니다. 수입 와인 열풍이 불면서 집 앞 할인마트에도, 삼겹살집에도 와인이 파고들며 너도나도 외국산 포도로 만든 와인만 마셨거든요. 왜 한국인들은 이탈리아, 프랑스, 칠레 등 물 건너온 포도만을 좋아하는지. 그런데 제 마음을 달래주는 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리저리 저를 으깨 효모를 넣고 발효시켜 제게도 '국산 와인'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셨네요. 얼마 전부터는 감, 사과, 머루, 오디, 양파 같은 동지(同志)들도 생겨났습니다. 외국 포도들과 한 판 붙어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분들을 소개할게요.
    “우리 입맛엔 우리 와인이 최고죠.”국산 와인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감, 사과, 오디 같은 국내 특산물로 만든 와인이 식탁을 점령할 날도 멀지 않았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청도 감 와인 대통령 취임식 건배주로… 와인터널 10만병 보관

    경북 청도군 화양면 송금리에 이상한 터널이 있다. 터널은 1904년부터 33년간 경부선 열차가 지나던 곳이다. 1015m 터널 안으로 들어가자 단내가 코를 찔렀다. 하상오(48·河相五·사진) ㈜청도감와인 대표는 "사계절 내내 섭씨 15도를 유지하는 곳으로, 와인 숙성의 최적지"라고 했다.

    하 대표는 엿기름을 규격화해 대량생산에 성공한 중소기업 사장이었다. 그가 생산한 엿기름은 식혜로 유명한 비락에 납품됐다. 하씨는 식혜를 캔에 담는 방법을 고안해 대박을 쳤다. 당시 매출액이 연 65억원이었다. 1998년 IMF가 찾아왔고 비락이 자체 공장을 만들자 그의 사업이 기울기 시작했다.

    그는 새 아이템을 찾기 시작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게 청도 특산물 감이었다. 하씨는 감으로 술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증류주를 만들겠다고 하니 주위 사람들이 다 실패할 거라고 했어요. 전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죠.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 확신했는지…."

    감 증류주는 만들기가 쉽지 않았다. 같이 사업하던 파트너들이 하나둘씩 곁을 떠났다. 주위의 핀잔은 늘어만 갔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증류주 대신 감 와인으로 목표를 바꿨다. 그는 "우리도 찾고 외국인도 찾으려면 술을 와인 잔에 담아야 된다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와인에 문외한이었던 그는 전문가를 찾았다. 하씨는 "양손에 음료수를 들고 무작정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며 "의지와 열정만 있다면 도움 주기를 꺼리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그는 전문적인 지식을 쌓기 위해 경북대 대학원 식품공학과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연구원들과 함께 효모와 발효기술을 개발했고 2003년에 첫 와인을 만들었다. 하씨는 "마시는 순간 이 정도면 가능성이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그가 개발한 감 와인은 맛과 향을 인정받아 2008년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 건배주로 선정되기도 했다.

    힘들게 만들었지만 그는 어떻게 팔아야 할지 몰랐다. 하씨는 외국에서 와인을 지하실이나 굴 속에 저장하는 것을 떠올렸다. 수소문 끝에 찾은 게 지금의 터널이었다. "나무 우거진 곳에 있는 터널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이런 곳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죠. 제대로 건졌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이 터널에는 하씨가 만든 감와인 10만병이 보관돼 있다. 와인터널에는 하루에도 수백명의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하씨는 "프랑스에서는 와인이 생활문화"라며 "우리도 우리만의 와인 문화를 만들기 위해 와인터널을 적극 활용할 것"이라고 했다.

    하씨는 우리 국산 와인의 미래가 밝다고 했다. 그는 "외국산 와인이 입에 맞지 않지만 좋다니까 그냥 먹는 사람이 많다"며 "어머니가 해 주는 밥이 제일 맛있듯 우리도 우리 입맛에 맞는 와인을 먹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하씨는 "9년 동안 와인을 만들다 보니 와인이 예술이라는 말이 이해된다"고 했다.


    예산 사과 와인 장인은 재배, 사위는 양조… '사과축제'도 7년째

    충남 예산군 고덕면 은성농원. 1만평 밭에 4000그루의 사과나무가 있다. 2층 주택에는 대표 서정학(65·사진 오른쪽)씨와 아내, 사위 정재민(43·사진 왼쪽)씨가 산다. 장인과 사위는 2002년부터 예산 사과로 '애플 아이스 와인'을 만들었다. 소주에 사과를 담근 게 아니라 효모로 발효시킨 엄연한 와인이다.

    정씨의 아내는 1년 전 자녀와 함께 캐나다로 '와인 유학'을 떠났다. 정씨는 "사과 와인에 어울리는 요리를 개발해 오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와인은 패밀리 비즈니스"라며 "장인은 원료를 재배하고 나는 양조, 아내는 안주를 책임질 것"이라고 했다. 평생을 소주와 막걸리만 마신 서씨가 와인 농장 대표가 된 것은 사위 탓이 컸다. 사위 정씨는 국민대 기계과 86학번으로 총학생회장 출신이다. 장인 서씨는 "데모질 하다가 캐나다로 도망갔다 오더니 와인이란 걸 만들겠다고 하더라"고 했다.

    정씨는 1989년 7개월의 감옥살이를 끝내고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그들이 집에서 와인을 만들어 먹는 것을 보고 와인 만드는 법을 배웠다. 서점을 운영하던 기계과 출신의 정씨는 와인 전문가가 됐다. 2000년 귀국한 뒤 와인 동호회를 만들었다. 현재 회원이 1만4000명이다.

    "와인은 양조용 포도로 만드는데 국내에서는 재배하거나 구하기가 쉽지 않아요. 다른 과일은 어떨까 하다가 사과를 떠올렸죠. 당분이 알코올로 변하면 와인이 되니까 사과도 될 거라 생각했어요."

    정씨는 와인을 '문화 상품'으로 만들기로 했다. 판매부터 한 게 아니라 축제부터 연 것이다. 그는 "외국은 아름다운 포도밭과 와이너리에 레스토랑이 곁들여져 와인 문화 자체를 판다"며 "매년 2000여병 정도 만들어온 사과 와인은 모두 무상으로 제공됐다"고 했다.

    '예산 사과 축제'는 올해로 7회째다. 사과를 따고 와인을 직접 만든다. 파이와 잼도 만든다. 작년에는 정씨가 캐나다 이민 생활 중 친분을 쌓은 가수 JK김동욱씨를 초대하기도 했다. 장인 서씨는 "예산 장날보다 우리 집에 오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했다. 작년 축제가 치러진 9일 동안 1만여명이 다녀갔다.

    은성농원의 사과 와인이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작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미 대사관에서 200병을 주문했다.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대사가 공식 선물용으로 쓴다는 것이었다. 서씨는 "대사가 젊은 시절 영어 교사로 있던 예산여중을 찾았는데 식사 자리에 나간 우리 와인을 좋게 봐준 것 같다"고 했다.

    그러던 중 작년 11월 공장에 불이 났다. 정씨는 "2002년부터의 '역사'와 '이야기'가 사라진 게 아쉽다"고 했다. 새 와이너리가 완공되면 50t의 1년 사과 재배량 중 30%까지 와인으로 가공할 생각이다. 알코올 도수 13도의 아이스 와인(375㎖) 한 종뿐인 현재의 와인 종류도 늘리고 사과 브랜디도 만들 계획이다. 


    부안 오디 와인 뽕나무 열매로 만든 '뽕주'… 천연 강장제 효능

    8일 전북 부안군 부안읍 '부안 강산명주'. 직원이 7명인 이 회사는 뽕나무 열매인 오디로 와인을 만든다. 오디는 5월~6월이 수확기다. 지금이 한창 바쁠 때다. 오남진(45·사진) 사장은 "1년에 80~100t 정도 오디를 150여개 농가에서 사들인다"며 "오디 와인으로 지역 농가에 기여하는 면이 크다"고 했다.

    강산명주는 2007년부터 오디로 술을 만들었다. 부안군의 지원이 컸다. 뽕으로 유명한 부안은 700여 농가가 전국 생산량의 20%인 2000여t의 오디를 생산한다. 부안군은 뽕 재배 농가를 돕고 오디를 소비시키기 위해 힘썼다. 오디 와인 개발도 그 중 하나다. 강산명주 외에 2개 업체가 더 있다.

    오씨는 "뽕에 대한 이미지 개선이 제일 아쉽다"고 했다. 오디로 처음 만든 술은 알코올 도수 13도의 '뽕주(375㎖)'다. 오디 원액과 주정(酒精)을 배합한 과실주다. 오씨는 "'뽕주 마셔볼래?'라고 물으면 '사람을 뭘로 보느냐'는 답이 돌아왔다"며 "뽕 하면 에로영화 이미지만 생각하더라"고 했다.

    오디 자체를 모르는 것도 큰 문제였다. 직원 장웅수(34)씨는 "뽕잎으로 술을 만드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며 "'오디 열매로 만든다'고 하면 '뽕나무에 열매도 있었냐'고 물어올 정도"라고 했다. 이듬해 용량만 줄여 '오디뽕'이라는 새 라벨을 붙였다. 뽕나무의 열매인 오디를 알리기 위한 이름이었다.

    2008년 오디 원액 비율을 높이고 숙성기간을 최소 1년 이상으로 늘린 오디 와인(750㎖)을 개발했다. 'Mulberry(오디) Wine'이라고 이름 붙였다. 성분명도 'Champpong(참뽕)'이라고 썼다. 라벨에는 한글이 한 글자도 없다. 업체는 "오디의 낮은 인지도를 고려한 고육책"이라고 했다.

    직원들이 와인을 직접 들고 민속주 대리점 같은 거래처를 돌아다녔다. "좀 달았으면 좋겠다" "더 부드러워야겠다"는 소비자 반응을 일일이 체크했다. 김도식(63) 공장장은 "직접 따라주고 반응을 들으며 개발했다"고 했다. 이 술은 명절 때 선물세트로 인기를 끌고 있으며 음식점 주문도 많다.

    오디와인은 지난 해에만 3만병 정도가 팔렸다. 4월에는 부안군청을 통해 400병이 청와대 만찬용으로 들어갔다. 오 사장은 "마셔보면 괜찮은데 마시기까지가 힘들다"고 했다. 김 공장장은 "영국인 사돈이 와인을 가져가 맛보고는 반응이 좋다고 가져다 팔 수 없느냐고 물어온다"고 했다.

    업체는 오디의 효능을 광고하고 있다. 오디의 인지도가 낮고 '스토리'가 없는 점이 아쉬워서다. 오씨는 "복분자 같은 경우는 '요강을 엎을 정도로 정력에 좋은 술'이라는 스토리로 인기 아니냐"며 "오디는 백발을 검게 하고 노화 방지를 돕는다고 동의보감에 나와 있다"고 했다. 정력뿐만 아니라 오장육부 전체에 이로운 천연 강장제라는 것이다.


    대부도 포도 와인 국산포도로 아이스 와인부터 스파클링 와인까지

    "큰 언덕 와인'이라고 이름 붙였으면 지금쯤 전 망했습니다."

    김지원(44·사진) '그린영농조합' 대표는 대부도(大阜島)산 포도로 '그랑꼬또' 와인을 만든다. 프랑스어로 '큰 언덕(grand coteau)' 이라는 뜻이다. 그는 "상표를 모를 때는 잘 마시다가도 국산이라면 무시한다"며 "외국에서 와인 문화까지 그대로 들여오는 바람에 국내 와인이 설 자리가 없다"고 했다.

    김씨가 도수 12도짜리 아이스 와인(750㎖)을 내놓았다. 한해 1900병만 생산되는 것이다. 화이트 와인도 적포도로 만든다. 국내산 식용 포도의 70%를 차지하는 '캠벨얼리' 품종으로 만든 화이트 와인은 황금빛이었다. 식용 포도로 와인을 만들지 않는 게 상식이지만 그는 "우리만의 독특한 와인이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 포도로 국산 와인을 만드는 업체는 20여곳. 시장 점유율은 5% 정도다. 김씨는 2000년 59개 대부도 포도 농가 조합의 대표가 됐다. 당시에는 포도즙만 만들었지만 그가 와인으로 방향을 바꿨다. 농대 졸업 후 8년 동안 농협에서 근무했던 김씨는 매년 수차례 유럽의 유명 와이너리에 견학을 간다.

    함께 갔던 사람들이 와인을 마시고 있을 때 그는 공장 곳곳을 기웃거렸다. 담배 한 갑을 청소부에게 쥐여주며 '안내'를 부탁했다. 버려진 기계를 보고 왜 버려졌는지, 지금은 뭘로 바뀌었는지, 와인 맛은 어떻게 변했는지 물었다.

    2003년에는 농협에 다니던 아내 박영화(41)씨까지 끌어들였다. 박씨는 "혼자 고생하는 남편이 얼마나 딱했으면 멀쩡한 직장을 그만뒀겠느냐"며 "그 해 한달 매출이 300만~500만원으로 직원 3명 월급은커녕 빚을 져야 할 판이었다"고 했다. 땅 1800여㎡(550평)도 잡혔다.

    김씨는 젊은 여성을 공략했다. 무겁고 떫은 서양 와인과 달리 디저트용으로 먹을 수 있는 가벼운 와인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와인을 만들기 위해 수백번 와인을 담갔다. 그는 23L짜리 스테인리스 통에 조금씩 와인을 담아 숙성시켰다. 다른 업체가 10t짜리 탱크에 대량 생산하고 있을 때였다. "와인 농사 10년 했다고 하면 1년에 한 차례씩 10번밖에 기회가 없는 거예요. 일부러 조금씩 조건을 달리하면서 여러 와인을 만들어 보려 했습니다."

    그렇게 만든 와인을 들고 사람 모이는 곳이라면 무작정 찾아갔다. 김씨는 "반응을 직접 보고 들은 뒤 자신이 생겼다"고 했다. "우리 와인 단골 중 한명은 외국 와인을 맛본 뒤 '썩었다'고 하더군요. 당도가 높은 대부도 포도로 만든 와인이 그만큼 달콤해서겠죠."

    6년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김씨는 지난달 소믈리에 자격증도 땄다. 요즘에는 스파클링 와인을 만드는 데 여념이 없다. 1000L짜리 탱크 10개로 시작한 사업이 지금은 10t짜리 10개, 5t짜리 2개로 늘었다. 한해 생산량이 올 7만병에서 내년에는 15만병으로 늘어난다.


    창원 양파 와인 양파 20%에 찹쌀·전분 발효시킨 '한국전통와인'

    "제가 만든 술에 대해 냉정한 편인데도 양파와인은 해볼 만해요."

    경남 창원시 귀산동 ㈜맑은내일 박중협(36·朴重俠·사진) 부사장의 얼굴에 자신감이 비쳤다. 그가 만든 양파와인 '우포의 아침'은 작년 4월 람사르총회 공식 기념품으로 선정됐다.

    양파와인은 엄밀히 말해 전통약주다. 포도와인처럼 과실 100%가 아니라 양파 20%에 찹쌀과 전분을 넣어 발효시켰다. 박씨는 "와인은 본래 포도주를 의미하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술 전체를 지칭한다"며 "양파와인의 영문 표기는 한국 전통 와인(Korean Traditional Wine)"이라고 했다. 양파와인은 그의 집념과 양파 특산지인 경남 창녕군의 의지가 빚어낸 술이다. 몇 년째 양파와인 개발에 실패한 창녕군이 2007년에 개발자 공고를 낸 것이다. 박씨는 1년간의 연구 끝에 양파와인을 개발했다. 그는 "양파 향이 안 나, 누가 말하기 전에는 양파와인인지 모를 것"이라고 했다.

    박씨는 고려대 대학원에서 천연 화합물을 전공했다. 2000년에는 국순당 중앙연구소에 입사해 백세주와 증류식 소주 개발에 참여했다. 그 후 대전 바이오 벤처 연구단지를 거쳐 소주업체 ㈜무학에서 국화주를 개발하고 최연소 공장장을 지내기도 했다.

    박씨는 술 제조업자의 피를 타고 났다. 할아버지가 전통주를 담갔으며 아버지가 가업을 이어받았다. 박씨도 그 피를 이어받았다.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아버지와 함께 2003년 '예주가'라는 전통주 제조회사를 차린 것이다. 그는 "잊혀져 가는 입맛에 맞게 복원하고 싶었다"고 했다. 박씨의 회사는 2007년 12월 발효주 침전물 제거방법으로 특허를 출원했으며 2008년에는 양파와인을 개발했다. "방법은 단순했어요. 생물학적으로 식물도 자기에게 해를 가하려 하면 안 좋은 성분을 내보내죠. 양파를 자르면 향이 더 심하게 나는데 통째로 넣더니 웬걸, 냄새가 안 났어요."

    박씨가 개발한 양파와인은 지방간 증상 완화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양파와인을 나쁘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양파라는 데 신경 쓰지만 않으면 품질은 보장한다"고 했다.

    박씨는 "국산와인과 전통주에 대한 관심이 농촌을 살리는 길"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 전통주와 국산 와인은 단순히 기업의 이익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농민들과 함께 상생하는 것"이라며 "경쟁력 있는 상품을 만들어 농민들과 함께 이익을 나눌 수 있다"고 했다.

    박씨의 꿈은 전통주의 세계화다. 그는 "김치가 세계화됐듯 전통주, 국산와인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박씨는 전통주 제조 과정을 관광상품화하겠다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 올 7월부터 시작하는 '우리 술 빚기 체험'도 그 일환이다. 박씨는 "우리 전통주, 국산와인도 충분히 외국산 와인을 능가할 수 있다"며 "상표 떼고 한번 붙어보자"고 했다.


    함양 산머루 와인
    산머루 100% 발효… 국제와인대회에서 동상

    "외국산 와인과 동등하게 맞붙을 기회가 없어요. 이길 자신 있는데."

    지리산 자락 ㈜두레마을에서 만난 이상인(53·李相仁·사진)씨가 말했다. 그는 2005년 산머루 와인을 개발해 연 15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그 중 '하미앙 스페셜'은 2007년 서울 국제 와인대회에서 동상을 받았다. 그는 "수준을 알아보려 출품했는데 결과에 우리도 놀랐다"고 했다.

    이씨는 1985년 서울 생활을 접고 경남 함양으로 귀농했다. 3000평의 논에 벼농사를 짓고 채소와 양파를 재배했지만 10년 만에 빚이 3억원이 됐다. "외국산 농산물에 휘둘리는 농촌의 현실을 체험한 거죠. 경쟁력 있는 과수를 찾아 재배해야 살겠다 싶더군요."

    그는 어릴 때 산에서 따먹던 산머루를 떠올린 뒤 인생을 걸기로 했다. "이번에 실패하면 인생 끝"이라는 각오를 다진 그는 산머루를 3년간 재배한 뒤 98년 함양군에 50평짜리 공장을 세웠다. 이씨는 "아내가 'IMF 때 왜 공장을 세우냐'며 '공장을 할거면 도망가겠다'고 말했다"고 했다. 이씨는 미친 듯이 일했다. 밤새우며 혼자 산머루 즙과 주스를 생산했다. 그는 "잘못 시작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수도 없이 들었지만 끝을 보자는 심정으로 일했다"고 했다. 노력은 결실을 보아 99년 1억원의 매출로 돌아왔다. 산머루 즙과 주스는 농림부 전통식품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사람들이 '머루주는 없냐'며 찾는 거예요. 인위적으로 설탕과 소주를 넣어 만드는 과실주로는 비전이 없다고 보고 와인을 생각했어요. 포도의 조상인 산머루를 100% 발효해 훌륭한 와인을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그는 2002년 경북과학대 첨단발효학과에 진학했다. 그곳에서 발효기술을 배웠다. 몇 번이나 포기할까 궁리하던 이씨는 2004년 처음 산머루 와인을 성공했을 때 울었다. 산머루 와인은 몸에 좋은 폴리페놀 성분이 많이 들어 있고 칼슘 및 각종 무기질과 영양도 풍부하다고 한다. 2006년에는 직접 미국 LA 한인타운을 돌아다니며 수출 물꼬를 텄고 2007년 마침내 빚을 다 갚았다. 미국과 유럽, 국내의 유명한 소믈리에들이 세계 유명 와인 500여개를 평가하는 국제와인대회에서 동상을 받기도 했다. 이씨는 "국산와인의 가능성을 본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평가는 좋았지만 소비자들에게 인정받기는 쉽지 않았다. 이씨는 "국산 와인이라고 매장에서 수입산 저가 와인들과 같은 분류로 묶여 판매된 적도 많다"며 "질 낮은 국산와인인데 왜 2만5000원이나 하냐는 항의도 많았다"고 했다.

    이씨는 "수백년 역사를 가진 유럽에 비해 우리의 제조 기술은 10년 정도 뒤처졌지만 포도 외의 매력적인 과실을 이용한 와인이 많다"며 "장인정신을 가지고 장기적 안목에서 와인을 개발해 나간다면 소비자들이 국내산을 더 선호할 날이 올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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