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도심(都心) 점거 투쟁에 더 이상 민주(民主)란 말 붙이지 말라

조선일보
입력 2009.06.08 23:29

민주·민노·진보신당·창조한국당 등 4개 야당과 진보연대를 비롯한 수백 개 시민사회단체가 오는 10일 전국에서 '6월 민주항쟁 계승 및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6·10 범국민대회'를 열기로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국민 문화제'도 함께 진행한다는 것이다.

집회를 추진하는 사람들은 "국민은 다시 22년 전의 6월, 그 뜨거웠던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의 함성을 그리워하고 있다"고 했다. 지금 상황을 1987년 6월과 비슷하게 본다는 것은 너무 심한 얘기다. 22년 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것은 박종철군 고문치사(致死) 사건이다. 경찰은 그 해 1월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이던 박군을 남영동 대공분실로 연행해 시국사건 수배자 행방을 밝히라며 욕조 속에 얼굴을 밀어넣고 물고문하다 죽게 만들었다. 5월엔 고문 가담 경찰관 5명을 2명으로 축소조작한 사실이 밝혀졌다. 앞서 4월 13일엔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기존 헌법에 따라 대통령 선거인단의 간접선거로 다음 대통령을 뽑겠다는 이른바 '4·13 호헌(護憲) 발표'가 있었다. 그 후 전국에서 '고문치사 조작 규탄'과 '호헌 철폐' 시위가 눈사태처럼 이어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돌발적인 죽음이 국민적 추모 분위기를 불러온 건 사실이다. 검찰이 전직 대통령에게 자백을 강요하는 듯 밀어붙인 절제 잃은 수사와 언론 브리핑에 분명 문제가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노 전 대통령 가족이 기업인에게서 640만달러를 받았다는 사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전직 대통령의 투신은 굉장히 불행한 일이고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 겪었을 인간적 고뇌의 무게는 형언하기 어렵다. 하지만 국가 공권력이 대학생을 고문해 죽게 만들고 사건을 조작하려 했던 일과는 성격이 많이 다르다. 더구나 1987년엔 '체육관 선거'를 직선제로 바꾸자는 국민의 민주화 열망이 강렬했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얘기다. 야당도 현행 헌법 아래서 10년간 집권 경험이 있다. 그때도 반대 정파가 있었고 정권을 좋아하지 않는 국민이 많았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작년 6월 10일에도 서울 광화문 일대엔 8만명이 모였다. 서울 도심은 완전 마비됐고 흥분한 시위대는 "청와대로 가자"고 외쳐댔다. 그로부터 두 달여 서울 중심가는 경찰관이 옷 벗긴 채 두들겨맞고 인민재판 당하고 쇠파이프가 난무하고 새총을 쏘아대는 무법(無法)천지가 됐다.

지금 정부 하는 일이 못 봐주겠다면 민주적 절차를 밟아서 국민을 설득하고 자기 편으로 끌어들일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 꼭 이렇게 수만명을 도심 한복판으로 모아 도로 통행을 막고 제지하는 경찰을 향해 공격적 행위를 해야 하는 것인가. 그런 행동에 '민주 회복'이라는 말을 갖다붙이는 것은 위선(僞善)이다. "22년 전 함성을 그리워한다"는 말은 듣기에 따라선 국민의 입이 정권에 의해 틀어막혔던 1987년의 상황으로 되돌아가도 좋으니 자기들이 박수받는 세상만 오면 된다는 말로 들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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