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소설 안중근 불멸] [113]

    입력 : 2009.06.02 03:05

    제10장 망국(亡國)의 전야

    1903년 정월 절정으로 치달은 해서교안(海西敎案)은 그 뒤로도 일년 가까이나 천주교 조선교구와 해주 관찰부, 대한제국 외부와 불란서 공사관의 분쟁거리가 되어 밀고 밀리다가 그 해 말 불란서 공사 플랑시가 귀국할 무렵에야 제주교안 등과 더불어 일괄 타결된다.

    중근도 때로는 포군(砲軍)을 이끌고 때로는 천주교 신도 모임의 총대(總代)로서 해서교안에 여러모로 관련되었으나 아버지 안태훈이나 숙부 안태건처럼 몸을 피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그런 아버지나 숙부의 그늘에 묻혀 관부에 쫓기는 일 없이 청계동을 지켰다.

    1903년 여름부터 몸을 피한 안태훈은 이듬해 봄이 되어서야 청계동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때 안태훈은 건강이 몹시 나빠져 있었는데 중근은 뒷날에 쓴 자서전에서 그 까닭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황해도에서 천주교인들의 행패로 인해 행정 사법을 제대로 운영할 수 없다고 하여 조정이 사핵사 이응익을 특파하였다. 해주부에 이른 이응익은 순검과 병사들을 각 고을에 보내 천주교의 우두머리 되는 이들이면 옳고 그르고를 가리지 않고 모두 잡아 올리는 바람에 교회 안이 크게 어지러워졌다. 내 아버님도 잡아가려고 순검과 병사들이 두세 차례 청계동으로 왔지만, 아버님께서 끝내 항거하셔서 잡아가지 못했다.

    일러스트 김지혁
    뒤에 아버님도 하는 수 없이 다른 곳으로 피신하셨는데, 탐관오리들의 악행을 통분하게 여기면서도 그저 탄식하실 뿐, 겉으로 드러내놓고 말씀하시지 못하고 밤낮으로 술만 들이켜셨다. 그러다 보니 마음속의 울화가 병이 되어 나중에는 큰 병이 되고 말았다. 여러 달 뒤 고향집으로 돌아와 병을 다스려 보려고 하셨으나, 의원을 불러도 효험이 없었다….'

    그 글로 미루어 중근은 뒷날까지도 해서교안의 성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거기다가 아버지 안태훈의 피신 생활이 어떠했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사핵사 이응익의 조사 뒤로 안태훈이 관부에 쫓기는 중죄인이 된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 쫓기는 상태는 중근이 상상한 것과는 많이 달랐다.

    안태훈은 그때까지도 포군 우두머리로 거느리고 있던 한재호 등과 의논한 끝에 청계동에서 멀리 떨어진 교우 집에 피신했는데, 거기서 보낸 나날은 마음 졸인 피신이라기보다는 유람이라 해도 좋을 만큼 유유자적한 것이었다. 어떤 기록에는 매주 일요일 미사가 끝나면 인근의 유생들을 모아 시회(詩會)도 열고 성리에 대한 강구(講究)와 담론을 나누기도 했다고 한다. 병이 난 것은 마음속의 울화가 아니라, 젊은 나이에 주독(酒毒)으로 코끝이 빨개지도록 마신 술 탓이라고 보는 편이 옳았다.

    어쨌든 그때 이미 안태훈의 병은 깊어, 어디 용한 의원이 있다면 멀고 가까운 것을 가리지 않고 찾아보는 지경이 되어 있었다. 그 해 4월 하순 중근이 무슨 일로 멀리 볼일을 보러 갔다가 안악읍을 지날 무렵 아버지가 그곳에 사는 친구 이창순의 집에 와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이창순의 아버지는 안태훈과 교분이 있었다. 중근이 한걸음에 이창순의 집으로 달려가니 아버지는 이미 집으로 돌아가신 뒤였다.

    이창순이 술상을 내와 중근의 아쉬움을 달래주며 함께 마시다가 뭔가 머뭇거리는 눈치로 말했다.

    "실은 이번에 자네 아버님께서 공교롭게도 큰 욕을 당하고 돌아가셨다네."

    그 말에 중근이 깜짝 놀라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린가? 아버님께서 큰 욕을 당하셨다니?"

    "자네 아버님께서 이번에 신병을 치료하러 우리 집에 오셨다가 우리 아버지와 함께 안악읍에 있는 청국 의사 서가(徐哥)를 찾아가 진맥을 받았다네. 그런데 진맥이 끝난 뒤에 세 사람이 함께 술을 마시다가 그 청국 의사 놈이 갑자기 자네 아버님의 가슴과 배를 발로 차서 상처를 입혔다는구먼. 마침 따라간 우리 하인들이 그걸 보고 덤벼들어 서가 놈을 붙잡고 때리려 했다네. 하지만 자네 아버님이 오히려 하인들을 말리고 타이르셨다는군. 오늘 우리가 여기 온 것은 병을 고치러 의사를 찾아온 것인데, 그런 환자가 의사를 때린다면 시비야 어떠하건 남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는가, 고 말이네. 이름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참으라고 하시기에 모두가 분함을 억누르고 돌아왔다고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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