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前대통령 서거] “담배 있나” “없습니다” “됐다”… 갑자기 투신

입력 2009.05.23 22:02

경호원에 "부엉이바위에 요즘도 부엉이 사나?"
3일전부터 식사 제대로 못해… 전화도 안받아
어제 새벽 5시21분 유서 작성, 컴퓨터에 저장

23일 오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사저 뒷산인 봉화산(해발 140m) 바위에서 몸을 던진 것은, 사저를 나선 지 55분쯤 후였다. 함께 있던 경호원이 급히 병원으로 옮겼지만 머리를 크게 다쳐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처음 병원에 도착한 지 2시간 30분 뒤 노 전 대통령은 숨을 거뒀고, 사저 컴퓨터에서는 미리 작성해 둔 유서가 나왔다. 경찰·병원의 발표와 관계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노 전 대통령의 서거 당일 상황을 재구성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살던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의 사저(왼쪽 아래)와, 23일 오전 노 전 대통령이 투신한 봉화산 부엉이바위(오른쪽 위)의 모습. 두 장소의 직선거리는 약 200m이다. /김용우 기자 yw—kim@chosun.com

노 전 대통령이 봉화산을 향해 사저를 출발한 것은 오전 5시45분이었다. 동행한 이는 이병춘 경호과장 단 한 사람뿐이었다. 이 과장은 평소에도 노 전 대통령이 마을 안에서 이동할 때 혼자 수행해왔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은 사흘 전부터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할 만큼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었다고 측근들은 전했다.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고, 지지자들이 격려 전화를 걸어와도 받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은 최후의 산책을 나서기 전 유서를 써놓았다. 문장 14개로 이뤄진 짧은 글은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로 시작했고,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는 부탁을 남겼다. 유서가 컴퓨터에 마지막으로 저장된 시각은 오전 5시21분이었고, 노 대통령은 유서 파일을 화면에 그대로 열어 둔 채 집을 나섰다. 새벽 일찍 유서를 저장한 것으로 미뤄, 노 전 대통령은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노 전 대통령은 자주 다니던 길을 따라 산을 올라, 사저에서 직선거리로 200m, 걷는 거리로 400m쯤 떨어진 봉화산 7부 능선 가파른 언덕 위에 놓인 높이 30m의 '부엉이바위'에 도착했다. 부엉이들이 자주 앉아 있어 오래전부터 부엉이 바위라고 불려온 바위로, 평소 사저에서 자주 바라보던 곳이었다고 한다. 이 과장은 "노 전 대통령이 부엉이바위에 20분 정도 앉아 있었다"고 진술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다 "담배 있느냐"고 물었고, 이 과장이 "없습니다. 가져올까요"하자 "됐다"고 답했다. 노 전 대통령은 "여기 부엉이바위에 요즘도 부엉이가 사는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마을 쪽 도로에 사람 한 명이 걸어가는 것을 보고 "누구지? 기자인가?"라고 했고, 이 과장이 그곳으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 아래로 뛰어내렸다. 오전 6시40분의 일이었다.


이 과장은 "노 전 대통령과 1~2m 떨어져 있었고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아무 조치도 취할 수 없었다. 경호동 직원에게 즉시 전화를 건 뒤 노 전 대통령을 업고 산을 뛰어 내려왔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경찰은 부엉이바위 아래에서 왼쪽 등산화 한 짝과 피 묻은 상의를 발견했다.

이 과장은 현장에 도착한 경호원들과 바위 아래 떨어진 노 전 대통령을 김해시 진영읍 세영병원으로 급히 옮겼다. 오전 7시쯤 사저에서 3㎞쯤 떨어진 세영병원에 도착했다. 이 병원 손창배(32) 내과과장과 김두란(여·47) 간호과장은 의식을 잃은 노 전 대통령을 침대에 반듯이 눕히고 30분간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상급병원으로 후송하기로 결정했다. 손 과장은 "노 전 대통령이 머리에 심한 상처를 입은 채 의식불명 상태로 도착했다"며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으나 호전될 기미가 없어 머리에 붕대를 감는 등 응급 조치를 한 뒤 병원 구급차에 태워 경남 양산시 부산대병원으로 후송했다"고 설명했다.

오전 7시35분 노 전 대통령을 태운 구급차가 세영병원을 떠나 부산대병원으로 출발했다. 손 과장과 김 과장, 차화정(여·26) 응급구조사가 동승해 심폐소생술을 계속하는 동안, 구급차는 남해고속도로를 지나 38분 뒤인 오전 8시13분 부산대병원 응급센터에 도착했다. 응급센터에선 긴급 연락을 받고 달려온 백승완 양산 부산대병원장과 노 전 대통령의 봉하마을 사저 주치의 조몽 진료처장이 대기 중이었다. 의료진은 심폐소생술을 재차 했지만 회복할 기미가 없자 결국 오전 9시30분 이를 중단했다. 백 병원장은 "도착 당시 의식이 없었고 자발호흡도 없었으며, 심전도 모니터상 박동도 없는 상태였다"고 말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소생 가능성이 희박했다는 것이다.

권양숙 여사는 서거가 공식 확인되기 직전인 오전 9시25분 부산대병원에 도착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심폐소생술이 중단된 것을 알게 된 권 여사는 오열하며 실신했다. 의료진이 실신한 권 여사에게 응급 조치를 하고,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휠체어에 태워 11층 VIP 병실로 옮겼다. 오전 11시쯤 안정을 되찾은 권 여사는 문재인 전 비서실장 등 일부 측근들과 함께 노 전 대통령의 유서 내용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전 11시 부산대병원 강당에서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공식 브리핑이 열렸다.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노 전 대통령이) 오전 9시30분쯤 양산 부산대 병원에서 운명하셨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오늘 오전 5시45분쯤 경남 김해 사저를 나서서 봉화산 등산 중 오전 6시40분쯤에 봉화산 바위 위에서 뛰어내렸습니다"고 말했다. 백 병원장은 "노 전 대통령의 두정부(머리 꼭대기 부분)에서 11㎝ 정도의 열상이 발견됐다"며 "직접 사인은 두부 외상"이라고 밝혔다. 뛰어 내려 바닥에 부딪히면서 머리 부분에 받은 심한 충격으로 인한 손상이 직접 사인이 됐다는 의학적 소견이다. 이 밖에 추락 당시 입은 늑골골절, 혈흉(늑막 내부에 혈액이 고인 증상), 척추와 오른쪽 발목 등의 다발성 골절이 확인됐다.

노 전 대통령 시신은 오전 10시50분쯤 양산 부산대 병원 부속건물 지하 1층 장례식장 영안실로 안치됐다. 12시20분쯤 정재성 변호사와 허기영 부산대 법의학 교수, 검찰 3명, 경찰관 5명이 입회한 상태에서 검시가 시작됐다. 검시결과, 사인은 두개골 골절 및 다발성 장기 손상으로 확인됐다.

노 대통령의 시신은 운구 차량에 실려 오후 5시38분 부산대병원을 떠나 오후 6시30분쯤 빈소가 마련된 봉하마을 마을회관 안에 안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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