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가 최악의 국면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달러가 없어 허우적거리던 외환 시장의 가쁜 숨소리는 가라앉고, 주식 시장의 웃음소리는 커졌다. 벌써 버블이 타오르는 증상마저 나타난다. 신도시·재개발 지역의 부동산, 그린 뉴딜 분야의 주식 값이 폭등하고 있다.
태양광 버블, 풍력 버블, 바이오 디젤 버블, 4대강 버블, 대운하 버블, 인천 송도·청라 버블…. 이명박 정부가 투자를 부추겨온 분야다. 묵은 버블을 다 청소하기도 전에 신형 버블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과 경제 장관들은 아직 위기가 끝나지 않았다고 경고한다. 넉넉하게 풀린 돈을 회수하거나 금리를 올릴 계획이 없다고 하고, 투기를 단속할 움직임도 없다. 막 피어오른 희망의 싹을 죽이지 않기 위해 잔챙이 미니 버블쯤은 못 본 척하겠다는 말이다. 투자자들은 헷갈린다. 현장의 투기 조짐과 정부의 신중 모드 중 어느 쪽이 맞는 것일까. 이 시점에서 굳이 내기를 건다면 버블 세력 쪽에 더 많은 돈을 거는 편이 현명하다.
위험을 무릅쓰고 선행(先行) 투자를 감행하는 투기꾼들의 경기 예측이 언제나 정부보다 앞섰고 정확했다. 이것이 한국 경제사의 서글픈 물줄기다. 투기꾼이 훑고 간 뒤 합리적인 투자 집단이 들어가고, 이어 '묻지 마 개미 세력'이 가세하면 그때서야 깜짝 놀라 정부가 소방차를 출동시켰다.
한숨 돌리고 나니 벌써 정부 타박이 시작되느냐고 섭섭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이번 위기에서 이명박 경제팀은 점수를 잃고 말았다. 경제 대통령이라거나 경제 전문가라던 장관들의 능력이 의심받는 일이 잦았고, 정책 불신은 더 높게 쌓였다.
이 정부는 애당초 경기 흐름 판단부터 잘못했다. 많은 사람은 작년 9월 리먼 몰락 이후 돌연 경기가 나빠졌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지표를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국내 경기는 그보다 1년 전 2007년 3분기나 4분기부터 하강하기 시작했다. 리먼 사태는 하강하던 곡선에 공포의 충격을 더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노무현 정권 동안의 성장 실적(4.2%)에 '보너스 샷'을 얹어 7%의 고도성장을 할 수 있다고 현혹했다. 큰 흐름을 잘못 짚었던 책임을 덮으려고 불황의 원인을 리먼 쇼크나 미국의 버블 붕괴 탓으로만 둘러댈 수는 없으리라.
경기 사이클을 잘못 읽다 보니 대응도 주저주저하며 찔끔거리는 식이었다. 가장 나쁜 사례가 부동산 정책이다. 이번 정부는 달마다 한 번꼴로 부동산 거래 완화책을 발표했으나 미분양 아파트 골칫거리는 여전히 남아 있다.
한두 번에 걸쳐 과감하게 풀었어야 할 조치를 생선회 칼질하듯 감질나게 분산시키는 바람에 약발이 도무지 듣지 않았다. 부동산 경기가 대세 하락기에 접어들었건만 대운하 같은 토목 사업을 전개하면 부동산이 달아오를 것이라고 오판했다.
게다가 관료들의 전형적인 '쪼개 풀기' 전술을 그대로 채택했다. 대통령은 경제 관료들의 그런 기법이 투기가 발생하면 책임지지 않으려는 면피용인 줄 모른 채, 신중하고도 사려 깊은 행정 노하우라고 착각했는지 모른다.
입만 열면 '신속하고 대담하게'라고 했으면서도, 중국처럼 깜짝 놀랄 만한 초대형 재정 지출을 일찌감치 실행하지 못한 것도 실수였다. 정부는 작년 말 11조4000억원, 올해 4월 28조4000억원의 불황 극복용 추경 예산을 편성했으나, 12월 추경과 4월 추경은 규모 면에서 거꾸로 했어야 옳았다.
위기의식이 극도로 높았던 작년 말, 좀 더 대담한 구상을 내놓으라는 경제계와 야당의 주문을 무시했다. 뒤늦게 담대하게 편성된 4월 추경 예산이 만약 경기회복 추세와 잘못 맞물리면 투기를 더 부추기는 휘발유 역할을 할지 조마조마해진다.
이명박 경제에 대한 불신을 누적시킨 최악의 실책은 외환시장에서 발생했다. 원화 가치가 50%까지 뚝 떨어졌고, 2000억달러 넘는 외환보유고를 갖고서도 '이러다가 또 국가 부도 위기인가'라고 걱정하는 선까지 가고 말았다.
침몰 직전 163억5000만달러의 구제 금융을 실은 구명보트에 겨우 올라타서야 한숨 돌렸다. 다만 11년 전과는 달리 구명보트 이름은 IMF(국제통화기금)호에서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호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명박 경제팀에 대한 신용 평가 점수가 이렇게 계속 추락해 가면 설혹 경기가 회복 추세로 돌아서더라도 내부 분열과 갈등은 가속화할 조짐이다.
한쪽에서는 녹색 버블, 토목 버블이 달아올라 '버블주(酒)'에 취해 들뜰 것이고, 다른 편에서는 불황의 오물통 속에서 허우적대는 탈락자 집단이 별 실적을 내놓지 못하는 경제 대통령을 원망하는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승자(勝者) 소수, 패자(敗者) 다수'의 게임은 벌써 개막됐다.
입력 2009.05.22. 20:48업데이트 2009.05.26.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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