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소설 안중근 불멸] [103]

    입력 : 2009.05.19 03:03

    제9장 저들을 지켜 주리라

    옹진의 관속들이 김응호 가브리엘의 죄상을 낱낱이 파헤쳐 잡아 가두고, 그를 비호한 김문옥 신부까지 고발했다. 김응호는 천주교인이 되기 전에 다른 사람과 공모하여 사람을 죽게 한 적이 있을 뿐만 아니라, 교인이 된 뒤에 저지른 죄악도 그동안 고발되었던 것 이상이었다. 곧 장사꾼들과 농민들에게서 돈을 빼앗은 외에도 빌렘 신부의 복사(服事) 최형규 시몬과 더불어 궁장토(宮庄土) 개간을 위해 파견된 궁내부 관원을 위협하여 1만 냥을 빼앗은 적도 있었다.

    그렇게 되자 황해도의 천주교회는 일시에 궁지로 몰리게 되었다. 김문옥 신부가 뮈텔 주교에게 글을 내어 위급을 알리고 빌렘 신부도 불란서 공관에 직접 사태의 엄중함을 알렸다. 황해도의 관찰사와 군수가 나서 천주교인들을 박해하고 신부를 잡아 가두려 한다는 보고를 받자 뮈텔 주교와 불란서 공관이 아울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 빌렘 신부가 다시 비상한 방법을 써서 불란서 공사 르페브르가 직접 나서 대한제국의 조정을 들쑤시게 만들었다.

    빌렘은 스스로 관찰사를 찾아가 김응호를 도운 죄로 갇혀 있는 복사 최형규를 놓아주게 했다. 자신이 최형규 대신 감옥에 갇혀 있겠다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관찰사는 차마 빌렘 신부를 가두지 못하고 최형규만 놓아주었다. 그래도 빌렘은 이런저런 핑계로 관찰부에 머물면서 르페브르 공사에게 자신이 해주의 감옥에 갇혔다는 전보를 치게 했다.

    조선 조정이 천주교를 박해한 역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르페브르 공사는 또다시 자기 나라 신부가 옥에 갇혔다는 말을 듣자 몹시 놀랐다. 뮈텔 신부에게 옹진사건을 해결하는 데 적극적으로 관여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그날부터 대한제국의 법부(法部)와 외부(外部)를 가릴 것 없이 휘젓고 다녔다. 그러나 그때 이미 빌렘 신부는 관찰부를 나온 뒤였다. 빌렘 신부는 복사 김문옥을 빼내고 또 불란서 공관을 자극하기 위해 자신이 감옥에 갇힌 것처럼 연출한 것이었다.

    일러스트 김지혁
    안태훈은 신도 회장인 아우 안태건과 더불어 그 모든 과정에서 빌렘의 충실한 손발이 되어 주었다. 적절한 때에 포군이나 청계동의 교인들을 동원하는 일은 말할 것도 없고, 해서 지방과 서울에 있는 정치적 연줄을 빌리는 데도 힘을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 신천의 채표회사는 중근에게 맡겨두고 그 무렵은 둘러보는 일조차 없었는데, 그 안태훈이 갑자기 채표회사로 찾아왔다. 중근이 허봉을 대접해 보내고 다시 다음 출표식(出票式)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이번 출표식 때 큰 소동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일이 난감하게 되었더구나."

    안태훈이 중근과 마주 앉자마자 그 말부터 꺼냈다. 안태훈의 정색한 말을 나무람으로 들은 중근이 변명처럼 받았다.

    "예, 하필 그때 출표기가 고장 나는 바람에……. 하지만 잘 고쳐 일없이 출표식을 마쳤습니다.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안태훈의 다음 말이 너무 뜻밖이었다.

    "앞일은 걱정할 거 없다. 이제 이 채표회사는 그만 닫자."

    그때로서는 엄청난 이권인 만인계였다. 그걸 운용하는 채표회사를 그만둔다는 말을 무슨 난전 싸말 듯 여기는 안태훈의 말투에 중근이 어리둥절해 물었다.

    "예?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만 닫자니요?"

    "곰곰 헤아려보니 우리가 너무 오래 뻗댔다. 지난 연말 신천군수가 이 채표회사 일로 감봉처분을 당할 때 그만두었어야 했다."

    지난해 말 신천군수는 이미 전국에 금지한 만인계를 안태훈 일가에게 허용한 까닭에 징계를 받아 몇 달 감봉처분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 말을 듣자 중근도 아버지가 불쑥 해본 말이 아님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 채표회사는 우리 포군들을 기르고 우리를 위해 나서줄 사람들을 돌보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재원(財源) 아닙니까?"

    "지난번 출표식 때의 소동을 듣고 깨달았다. 우리가 돌보아야 할 사람들은 이제 포군이나 청계동 교우들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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