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은 나의 든든한 지원군"

입력 2009.05.18 03:25 | 수정 2009.05.18 13:50

카이스트 김대식의 음악이야기

지난 4월 15일 저녁, 미국 뉴욕 카네기홀. '유튜브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관객들을 아름다운 선율로 이끌었다. 이들은 세계 최대 동영상 공유사이트인 '유튜브'에서 전 세계인들이 직접 인터넷 투표로 뽑은 실력자들이다. 벽안의 수많은 이들이 지켜보는 현장에 한국인이 있었다.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2학년 김대식(20)씨. 그는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최종 90명에 뽑혀 바이올린 연주 단원이 됐다. 함께 선발된 한국인 8명 중 최연소이자, 유일한 음악 비전공자였다. 한국과학영재학교를 졸업한 뛰어난 공학도가 어떻게 음악적 재능까지 갖추게 된 것일까.

음악을 통해 학습 효과 높여

대식씨는 네살 때 바이올린을 접했다. 두살 위인 누나가 바이올린 켜는 것을 보고 이끌렸다고 한다. 일년을 졸라 다섯살 때부터 레슨을 받았다. 어머니 박순영(49)씨는 "좋은 것을 보면 그저 따라 하려는 철부지 행동으로 여겼다"며 "이른 나이라는 것이 걸렸지만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았다"고 말했다.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어머니의 예상은 빗나갔다. 당시 대식씨는 어렸지만 집중력은 어른 못지않았다. 싫증은커녕 날이 갈수록 음악에 대한 열정이 더해졌다.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11년간 레슨을 거르거나 연습을 게을리 한 적이 없을 정도였다.

수학을 좋아해 과학고에 뜻을 두고 입시 준비에 한창일 때도 바이올린을 놓지 않았다. 경쟁자인 친구들이 보습학원에 가느라 바쁠 때도 그는 활을 켰다. 한국과학영재학교 재학시절, 오케스트라 동아리에 가입했고 카이스트에 진학한 뒤에는 카이스트 오케스트라 멤버로 활동 중이다.

" '그냥 좋다'는 말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어요. 연주할 때만큼은 어떤 것에도 방해받지 않고 몰입할 수 있어서 좋아요."

그렇다고 절대적인 시간을 할애하면서까지 음악에만 몰두한 것은 아니다. 본업인 공부도 잊지 않았다. 음악은 열정적으로 즐길 수 있는 취미생활로 여겼다. 그는 "공연이 임박해서가 아니고선 따로 시간을 정하지 않고 마음 내킬 때만 연습을 했다"며 "음악을 통해 뭔가를 이뤄야겠다는 욕심을 부렸다면 오히려 음악이 스트레스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연한 기회에 바이올린 연주 동영상을 유튜브사이트(www.youtube.com)에 올려 유명인이 된 카이스트 2학년 김대식씨./이구희 기자 poto92@chosun.com
대식씨의 부모는 한번도 자녀의 음악 활동을 반대하지 않았다. 서울대 서어서문학과에 재학 중인 누나 역시 학창 시절 내내 바이올린을 켰다. 현재 그녀는 서울대 오케스트라 동아리에서 활동 중이다.

여느 부모 같았으면 "입시에 별도움 안 되는 바이올린을 켜느니 공부나 하라"며 면박을 줬겠지만 대식씨 부모는 달랐다. 흔한 잔소리도 하지 않았다. 박씨는 "수학 몇 문제 더 푸는 것보다 아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겼다"고 말했다.

대식씨는 음악이 한 번도 공부에 방해된 적이 없다고 했다. 오히려 음악이 있었기에 공부를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단다. "전국의 내로라하는 인재들이 몰린 한국과학영재학교에서 열등감에 빠지지 않고 최선을 다할 수 있었던 것은 바이올린 덕분"이라며 "음악이라는 든든한 지원군 때문에 슬럼프 없이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다"고 했다.

또한 그는 음악과 수학이 서로 연관관계가 있다고도 했다. "음악 구조가 수학적인 기호로 돼 있잖아요. 일정한 규칙으로 움직인다는 것이 공통점이지요. 일찍부터 음악 구조를 체득한 덕분에 수학을 친숙하게 받아들였고 남들보다 수학을 더 잘할 수 있었던 비결이 된 것 같아요."

선택과 집중으로 공부하기

대식씨가 수학을 좋아하게 된 배경에는 음악 이외에 대덕연구단지 연구원인 아버지 김홍수(52)씨의 영향이 컸다. 그는 아들이 어렸을 때 생각하게끔 하는 질문을 많이 던졌고 창의적인 대답이 나오도록 유도했다. 수학이나 과학 이론도 친절히 설명해줬다. 아들이 궁금해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원리부터 응용까지 자세히 일러줬다. "아버지 덕분에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대식씨는 수학 공부를 할 때 늘 자신만의 풀이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모범 답안을 쫓아가거나 정형화된 풀이 방식을 따르지 않았다. 또한 좀 더 어려운 문제에 도전하는 것 자체를 즐겼다. 전혀 색다른 유형의 문제를 접할 때면 마치 재미난 놀잇감을 만난 것처럼 흥분했다. 어머니 박씨는 "초등학교 때 수학 심화반에 뽑혔는데 아이가 그 시간을 가장 행복해했다"고 말했다.

이런 그의 능력은 한국과학영재학교 입시 전형 때 빛을 발했다. 창의적 문제해결력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얻은 덕분에 상대적으로 내신 성적이 낮았음에도 당당히 합격할 수 있었다. 그는 "정답을 맞히는 데 급급하기보다는 출제된 수학 문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최대한 창의적으로 접근해 풀었다"고 말했다.

중학교 재학 시절 대식씨의 내신 성적은 중상위권이었다. 수학, 과학, 음악은 늘 뛰어났지만, 문제는 암기과목이었다. 외우는 것을 지독하게 싫어해 암기과목은 늘 등한시했다. 사회를 비롯해 기술, 가정 등 암기과목이 늘 평균점수를 깎는 걸림돌로 작용했다. "싫어하는 것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기보다는 잘하는 것에 더 집중해 뛰어난 실력을 쌓는 것이 낫다고 여겼다"고 했다. 어머니 박씨 역시 재능을 살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과목별 편차가 심한 그를 나무라거나 암기과목 공부를 강요하기보다는 수학과 음악에 열중하도록 지지했다. 종합반 학원이 아닌 수학 올림피아드 학원만 보낸 것도 이런 판단 때문이었다. 그는 "공부는 본인의 의지에 따라 즐기면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 사전에는 벼락치기가 없어요. 매일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해요. 천재도 열심히 하지 않으면 결국은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있잖아요. 수없이 바이올린을 켜야 원하는 소리가 나오는 것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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