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9.05.11 23:20 | 수정 : 2009.05.12 03:09

    앤드루 새먼 영국 더 타임스지(紙)서울 특파원

    한국 역사의 이정표가 되는 중요한 날짜가 다가오고 있다. 내년 이맘때쯤엔 한국인들이 88서울올림픽, 2002년 한일월드컵, 2005년 APEC 정상회의 때만큼 이날을 준비하고 있기를 나는 희망한다. 왁자지껄 떠들썩한 파티를 열자는 게 아니다. 이 기념식은 숭고한 기품을 유지해야 한다.

    나는 행사를 준비하는 한국군 장교들을 만나봤다. 그들도 애를 쓰고 있긴 하지만, 한국 정부가 정부 차원에서 과연 얼마나 많은 국가자원을 기념식에 투입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국제적인 체육대회나 엑스포 유치에는 막대한 자금이 소비된다. 수백만이 죽어간 비극을 기념하는 일도 그만큼 중요하지 않은가?

    훌륭한 전례들이 있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200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 60주년 기념식을 멋지게 치러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은 물론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도 참석했다(과거의 적을 초대한 것은 아주 센스 있는 제스처였다). 매년 네덜란드 아른험(Arnhem)에서는 1944년 당시 연합군 복장을 입은 주민들이 연합군 공수부대의 침투 장면을 재현한다. 어린이들은 참전용사 묘역에서 꽃다운 젊은이들의 무덤을 돌본다. 또 영국은 2005년 36개국 함대가 참가한 가운데 트라팔가 해전 200주년 기념 관함식(觀艦式)을 성대하게 치렀다.

    내가 한국에서 보고 싶은 것은 외교·군사·학술·기술 등 다양한 각도에서 6·25에 접근하는 모습이다. 2010년 6·25 기념식 날, 이명박 대통령이 유엔 참전국 고관들을 주요 전투의 현장으로 초대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아마도 인천이 좋을 듯하다. 각국의 대통령과 국왕이 참석한 가운데 주인공은 한국인이다. 1950년에 한국을 구해준 장본인, 유엔의 수장이 상석에 자리할 것인데 그는 바로 한국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다.

    나는 이날 국제 함대의 축하 의식을 보고 싶다. 한국 해병대가 참전용사들과 함께 인천 상륙 장면을 재현하는 행사를 보고 싶다. 유엔 참전국들의 군악대가 참석해 '에딘버러 군사축제'와 같은 대규모 축제를 여는 모습도 그려본다. 각국 최고 명예 훈장을 받은 참전용사들이 직접 참가하는 '영웅들의 행진'도 빼놓을 수 없다. 용사들의 사연을 쓴 책도 나와야 한다.

    하지만 6·25 기념식이 6월 25일 하루로 끝나서는 안 된다. 뭔가 영속하는 유산을 남기려면 기념식은 휴전 60주년 기념일인 2013년 7월 27일까지 이어져야 한다. 정부나 재계는 세계 유수 대학의 학자들이 6·25를 연구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도움을 줘야 한다. 6·25에 관한 TV 프로그램과 영화가 끊기지 않도록 자금을 대주고, 전국에 산재한 전투 현장에 기념관과 박물관을 건립해야 한다.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한국의 게임 업계에서도 할 일이 있다. 6·25를 주제로 전투 시뮬레이션 게임을 만들어서, 온라인상에 인천 앞바다, 초신 저수지, 지평리, 임진강, 백마고지 등 주요 전장을 재창조한다. 화면 곳곳에는 클릭 가능한 링크를 걸어놓고 해당 전투에 관한 역사, 실제 사진, 생존자의 증언 등을 둘러볼 수 있게 한다. 세계 어디서든 인터넷에 접속만 하면 벽력 같은 포성(砲聲)을 들으면서 전쟁 당시의 지형, 진지, 전투상황, 병사들의 모습을 보고 가상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한국은 국제적으로 새로운 척도를 세울 것이다.

    6·25는 너무 오랫동안 잊혀 있었다. 2010년부터 2013년까지 한국 정부와 사회는 6·25가 다시는 잊히지 않도록 긴밀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