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소설 안중근 불멸] [97]

조선일보
    입력 2009.05.11 03:15

    제8장 복사(服事) 안다묵

    자신이 보기에는 귀때기 새파란 야소꾼이 씨알도 먹지 않는 수작을 부린다 싶어 얕보고 욕질하던 주가는 갑자기 목 줄기에 시퍼런 칼날이 와 닿자 깜짝 놀랐다. 잡힌 손을 빼낼 생각도 못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 어떻게 하자는 거냐?"

    "어서 저것들더러 물러나라 해라. 한 놈이라도 다가드는 놈이 있으면 바로 네놈의 목을 따놓을 테다!"

    그러자 주가가 몰려드는 광꾼들을 보고 소리쳤다.

    "모두 손에 든 것들을 내려놓고 물러나라. 내 말을 어기는 자는 나중에 크게 경을 칠 것이다."

    그 말에 광꾼들이 저마다 몽둥이와 돌을 내려놓으며 주춤주춤 물러났다. 그걸 본 중근은 오른손의 단검으로 주가의 목을 겨눈 채 왼손으로 주가의 오른손을 끌며 광산 사무소 밖으로 빠져나왔다. 광꾼들이 슬금슬금 그런 중근을 따라왔다. 중근이 그들을 보고 소리쳤다.

    "따라오지 마라! 거기서 한 발자국이라도 다가드는 놈이 있으면 이 주가의 목은 없어지는 줄 알아라."

    다급한 주가도 중근을 거들었다.

    "물러나라고 하지 않았느냐? 내 이 사람을 산 아래까지 배웅하고 올 터이니 모두 돌아가 일이나 하여라."

    일러스트=김지혁

    그제야 광꾼들도 더는 따라오지 않았다. 광산을 빠져나온 중근은 거기서 10리나 멀어진 뒤에야 주가를 놓아주며 다시 한번 엄중하게 꾸짖었다.

    "오늘은 내가 야소 기독의 가르침을 어기고 이 단검으로 너를 벌했다만, 네가 기어이 회개하지 않으면 장차 이보다 몇 만 배 무서운 하느님의 징벌이 이를 것이다. 부디 명심하고 자중하여라."

    그런 중근은 종교적 경건함보다는 기지와 무력으로 위기를 벗어난 젊은 협객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길로 청계동에 돌아와 빌렘 신부의 저녁미사를 돕는 중근은 다시 복사 안다묵으로 돌아갔다.

    부패한 지방 관리들과의 싸움에서 잇따라 승리하는 한편 열정적인 전교여행으로 크게 교세를 확장한 빌렘 신부는 청계동 본당으로 옮긴 이듬해부터 성당 뒤뜰에 넓은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다. 구불구불한 소나무나 몇 그루 세워두고 사이사이로 매화나 대나무를 심어 운치를 내는 조선풍의 정원이 아니라, 아름다운 꽃과 더불어 풍성한 과일도 생산해주는 화원과 과수원이 어울린 성당 뒤뜰의 정원이었다. 빌렘 신부는 그곳에 품종이 좋은 버찌나무와 매화나무를 심고 개량된 능금나무와 배나무로 작은 과수원을 일구었다. 그리고 그 한구석에는 역시 개량되어 무성한 줄기와 포도송이를 시렁에 얹은 포도원도 만들어졌다. 이른바 '빌렘 신부의 정원'이었다.

    하지만 이 정원은 조선의 정원처럼 소박한 자연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미학과 생산 욕구에 따라 구석구석 손질되고 간섭받는 정원이었다. 빌렘 신부는 끊임없이 심고 캐고 옮겨 그 꽃과 나무들을 자신이 원하는 곳에 자리 잡게 만들었다. 끊임없이 가지를 자르고 새순을 꺾고 잎을 따내어 자신이 원하는 모양을 만들어 내었고, 심할 때는 일껏 키운 나무를 둥치째 잘라버리거나 이미 아름드리로 자란 것을 커다랗게 분을 떠서 옮겨심기도 하였다. 모두 서양식의 과수 재배법에서 나온 것이지만, 또한 주인의 엄청난 지배욕과 권력의지를 드러내는 손질이기도 하였다.

    빌렘 신부는 그런 지배욕과 권력의지를 전교(傳敎)와 사목(司牧)에서도 그대로 내보였다. 천주교를 전파하는 데도 지켜내는 데도 공격적이었으며, 신도들을 이끄는 것도 권위주의와 억압으로 일관했다. 아무리 신실한 교인이라도 교회와 권위에 저항하면 적대적인 외교도(外敎徒)를 겁주기 위해 만들어둔 성당의 형틀에 서슴없이 매달았고, 대수롭지 않더라도 사제에게 맞서려 들면 누구에게든 들고 다니던 지팡이를 거침없이 휘둘렀다. 그런데 그게 먼저 한창 다져지던 복사 안다묵의 신심과 충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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